조송원의 ‘천방지축, 세상을 논하다’ (6)9수 윤석열과 검정 이재명, 그리고 선택의 진실 ①윤석열은 누구인가?

조송원 기자 승인 2021.10.13 15:29 | 최종 수정 2021.10.16 11:11 의견 0

윤석열, 8전9기한 불굴의 한국인으로 상찬할 만하다. 강골 검사로서의 능력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했다. 곧이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수사를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으로 이끈 일등 공신이다.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수사 등을 주도했다. ‘적폐청산의 칼’ 역할을 탁월하게 수행한 것이다. 이리하여 잔존하는 우리 사회의 각종 비리와 부정부패를 뿌리 뽑을 적임자로서의 신망을 한 몸에 받고 검찰총장에 올랐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1. 폴 에어디쉬(Paul Erdös.1913~1996)는 헝가리의 천재 수학자이다. 그는 가방 하나에 옷가지 몇 개와 수학 노트만을 담아 25개국을 떠돌아다니며 평생 1500여 편의 수학논문을 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신발 끈도 제대로 맬 줄 모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 공포를 느끼기도 했다. 수학천재였지만, 정작 주위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2. “정말 똑똑하고 애국하는 사람들은 법대가 아니라 상대나 공대 출신입디다. 나는 법관 생활 20년에 고법 부장판사를 하고 있으니,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출세했고 최고로 똑똑똑하다, 고 내심 자신했어요. 어쩌다 나보다 공부 못한 고등학교 동기들과 술자리를 했어요. 상대 출신들은 하루걸러 외국 출장을 다니면서 세계경제와 정세를 꿰뚫고 있었어요. 또 한양공대 출신들은 중동에서 어마어마한 공사를 해서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이더라고요. 그들의 대화에 나는 낄 수조차 없었어요. 도대체 내가 아는 게 뭐이며 무슨 일을 해왔던가? 부끄러워서 쥐구멍을 찾고 싶었어요. 여러분도 나같이 뒤늦은 후회를 하지 않으려면, 법 좀 안다고, 판검사변호사라고 우쭐대지 말고 제발 세상공부를 게을리 하지 마세요. 법에만 파묻혀 있는 시간만큼 남에게 뒤떨어지는 겁니다.” 30여 년 전 변호사 친구가 연수원 시절, 교수에게 들었다는 강의 내용 중 일부이다.

바둑에서 일가를 이룬 조훈현이 국회의원을 한 사실을 기억하는가? 그가 정치에서 어떤 역할을 했던가? 그냥 자기가 속한 당의 이미지 분식을 위한 얼굴마담 역할 이외는 아무 한 것이 없다. 바둑 천재는 아무 노력 없이 바둑 기술을 타고 났으니 그냥 왕좌에 오르는가. 천만에! 남보다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공부해야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종종 ‘공부의 신’, ‘축구의 신’ 등등 어떤 방면에서 남달리 뛰어나면 ‘신’이란 단어를 남용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다. 神也者不過習者之門(신야자불과습자지문)! 무엇에든 신神의 경지에 이르는 것은 오로지 반복 연습해서 익숙하게 하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사진=조송원]

윤석열의 8전9기에 함축된 의미는 무엇일까? 그 오랜 시간 사법시험에 오로지했으니, 가히 법에 대해서는 ‘신의 경지’에 거의 다다랐을 것이다. 하여 판검사나 변호사의 자격은 충분히 갖춘 법조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무엇을 놓쳤을까? 같은 시간을 두 곳에 동시에 쓸 수 없다. 이 일에 시간을 쓰면, 저 일을 할 시간은 없는 것이다. 하여 오직 사법시험에만 시간을 써서 법에 달통한 만큼, 그 외의 모든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시간을 쓸 여유가 없어, 법외의 분야에 대해서는 빈 깡통이라는 뜻이다.

검사 출신 홍준표 의원이 윤석열에 대해 인물평을 했다. “대통령 직무에서 0.1%도 해당하지 않는 검찰 사무만 본 사람이다” 홍준표다운 적확한 지적이다. 윤석열의 ‘1일 1실언’은 0.1%에 능통하고 나머지 99.9%에 대해 문외한인 ‘전문가 바보’의 당연한 귀결이다. 정치는 고난도 전문직이다. 오랜 기간의 훈련이 필요하다. 무능하고 썩은 정치가도 많지만, 어쨌건 정치 자체는 어떤 직역보다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하여 정치판은 어떤 분야의 특출한 전문가가 짜안~하고 등장할 수 있는 무대가 아니다. 더구나 그 무대가 기초지자체장 정도가 아닌, 대권을 위해 펼쳐진 무대라면 더욱 그렇다.

‘집이 없어 주택청약통장을 만들어보지 못한’ 윤석열의 ‘손바닥 王자’는 그의 사유체계의 현주소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백보 양보해 ‘같은 아파트 주민인 지지자가 손바닥에 적어주신 것’이라고 치자. 군의원 후보자라도 그 손바닥을 대중에게 공표하지 않는다. 상식 있는 무종교자들은 물론 기독교 등 다른 종교인들의 표가 왕창 떨어지는 소리를 미리 듣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동은 의식이나 잠재된 무의식의 발로이다. 왕권신수설은 유럽 절대주의 시대를 뒷받침해 온 정치사상이다. 국왕의 권한은 인간이 아닌 신으로부터 나온다는 정치이론이다. ‘백묘흑묘론白猫黑猫論’처럼 흰고양이든 검은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무슨 상관이랴. 마는, 왕권신수설에 내포된 의미는 대단히 고약하다. 군주는 오로지 신에게만 책임을 지므로 백성이나 신하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하여 백성을 개돼지 같이 다뤄도 왕은 어떤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유교의 천명사상天命思想도 부정적 의미에서는 왕권신수설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낳는다. 신을 천명으로 치환하면 같은 주장이 된다.

신이나 천명의 자리에 국민이 들어앉아 있는 민주주의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더구나 민주주의 지수가 미국까지 넘어서며, ‘완전한 민주국가’(Full Democracy)인 2021년 대한민국에서 손바닥에 王자라니! 민주주의 훈련이나 학습을 전혀 받지 못한, 유신시대의 사고체계에 머물러 있는 시대착오적(혹은 좀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철부지’) 인물임을 방증하는 게 아닐까?

<선임기자, 본지 편집위원 / ouasaint@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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