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음후淮陰候 한신韓信은 회음 출신이다. 무명 서민이었을 때는 돈도 없었고 달리 뛰어난 점도 없었다. 그래서 추천을 받거나 선발되어 관리가 될 수 없었다. 또 장사를 해서 생계를 꾸려나갈 재간도 없었다. 하여 항상 남의 집에 얹혀 얻어먹고 지냈다. 따라서 그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싫어했다.
일찍이 남창에 있는 한 정장(亭長. 역원驛院의 우두머리)의 집에 몇 달을 기식했다. 정장의 아내는 한신을 귀찮게 여겼다. 그래서 아침 일찍 밥을 지어 침대 위에서 식사를 마쳤다. 밥 때가 되어 한신이 찾아가면 모른 척했다. 그들의 속내를 짐작한 한신은 마침내 화를 내면서 정장네에 발길을 끊어버렸다.
그 후 한신은 회음에서 나와 놀고 있었다. 어느 때 회수淮水에서 낚시질했다. 때마침 그곳에서 무명 빨래를 하던 부인 중의 한 사람이 한신의 굶주린 꼴을 보다 못해 밥을 나누어 주었다. 무명 빨래는 표백 작업이 끝나기까지 수십 일이 걸렸다. 그동안 그 부인은 하루도 빼지 않고 한신에게 밥을 주었다. 감격한 한신은 그 부인에게 반드시 언젠가 보답하겠다고 인사를 차렸다. 그러자 부인은 벌컥 성을 내며 말했다.
“대장부로 태어나서 자기 힘으로 먹지도 못하는 주제에 무슨 그런 소리를. 나는 당신이 하도 가엾어서 먹여 준 것뿐이오. 보답을 바랄 생각은 조금도 없소.”
한때 회음의 푸줏간 패들 가운데 한 젊은이가 한신을 같잖게 보고 놀려댔다. “네 놈은 덩치는 큼직하게 생겨 가지고 밤낮 칼을 차고 다니지만, 실속은 겁쟁일 게다.” 구경꾼이 모여들자 그는 더욱 신을 냈다. “네놈이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나를 찌르고, 죽음이 두렵거든 내 가랑이 사이로 기어 나가라.”
한신은 그 젊은이를 물그러미 바라보았다. 이윽고 머리를 숙여 그의 가랑이 밑을 기어서 빠져나갔다. 이 일로 해서 온 시장 사람들은 한결같이 한신을 겁쟁이라고 비웃었다.(『사기열전』 「회음후열전」)
‘오늘’과 ‘내일’은 영원히 상봉하지 못한다. 시간 직선상 오늘과 내일은 근접한 연속성 상에 있어 가깝지만, 절대로 만날 수는 없다. 오늘이 옷을 갈아입으면 내일이 되는 것일까? 내일이란 오늘과 별개로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일까?
시간은 조물주다. 인간의 상상과 시간이 결합하면, 무엇이든 만들어 낸다. 그게 해괴망측한 일이건, 아름다운 일이건 불문한다. 또한 과거의 일이건 미래의 일이건 가리지 않는다. 귀신, 유니콘(Unicorn), UFO, 유토피아 혹은 이상향, 신선, 신, 천국과 지옥, 죽음 이후의 삶 등이 예이다. 존재하지 않는다. 줄잡아 말해도 그 존재증명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하여 존재여부를 떠나 실체인 것이다.
쌍계사와 불일폭포 어중간에 환학대喚鶴臺가 있다. 어른 서너 명이 앉을 수 있는 너른 바위이다. 최치원이 학을 불러서 타고 갔다는 전설이 서린 곳이다. 그 학은 아마 ‘푸른 학’, 청학일 게다. 흔히 신선의 자가용이 청학인 까닭이다. 그러므로 이 환학대가 의미하는 바는, 최치원이 신선이 되어 자가용인 청학을 타고 어딘지 모를 신선이 사는 곳으로 날아갔다는 것이다. 전설은 그 내용의 진부眞否와 무관하기에 전설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삶에 영향을 준다. 그런 만큼 실체이다.
최치원은 누구나 아는 역사적 실존인물이다. 그렇다면 최치원의 행적에서 무슨 ‘신선적인’ 풍모나 이력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다. 지극히 ‘인간적’일 뿐이다. 최치원은 조기유학생이었다. 12세 때(868년) “10년을 공부하여 급제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 아니다. 가서 힘써 하라”는 아버지의 독려와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 18세에 빈공과에 장원급제했다. 빈공과는 당나라에서 외국인을 위해 실시한 과거이다. 이 빈공과 합격은 이방인이 당나라 사회에 편입되는 가장 확실한 길이었다. 20세에 종9품으로 당나라 관리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당시 실력자였던 고변의 서기관으로 그 유명한 <토황소격문>을 지어 문명文名을 떨쳤다.
그러나 최치원은 어쩔 수 없는 이방인에 불과했다. 당나라 특정 세력의 도구적 지성으로서의 쓸모밖에 없었다. 권력의 핵심부로 진입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태생적 한계를 지닌 것이다. 이런 ‘현실 인식’에서 이 시가 나온 게 아닐까?
秋風唯苦吟(추풍유고음) 가을 바람에 쓸쓸히 읊조리니
世路少知音(세로소지음)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이 없구나.
窓外三更雨(창외삼경우) 깊은 밤 창밖엔 비는 내리고
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 등불 앞 내 마음 만 리 고향으로 달려가네.
현대 우리 대부분은 객지생활을 한다. 더 나은 삶터, 일터를 찾아서이다. 그러나 세상사 만사는 현불현賢不賢을 막론하고 여의치 않다. 그래서 인지상정으로 1,000년도 훨씬 전의 인물인 최치원의 외로움과 절망감을 충분히 추체험追體驗할 수 있다. 최치원은 결국 외로움과 ‘알아줌 없음’으로 인해 귀국을 하게 된다. 당나라 유학 16면 만이다.(계속)
*한신과 최치원의 길, 뭐가 다르고 같은가? 어떤 게 더 바람직스러울까? 인간적인 길 은? 어떤 사람에게서 교훈을 얻으려면, 그 인생 전체를 보아야 한다. 이 때문에 ‘시 간’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음 편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작가 /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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