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엄마 이야기(49) - 이제는 엄마에게 충성하시는 아버지
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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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2 17:15 | 최종 수정 2021.03.04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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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은 절대로 사소하지만 않다. 복잡계 이론에서는 이를 나비효과라 한다. 물리세계에서 만이 아니라 사소한 우연이 전체를 운명적으로 좌우 지배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아버지가 엄마를 우연히 운명적으로 만난 시점은 아버지 일생에서 가장 비극적인 고3 때였다. 서울고 졸업앨범에 찍힌 아버지 사진에서는 그런 비극이 안보이지만 아버지 속은 암울 그 자체였을 것이다. 북에서 내려와 부모님을 차례로 잃고 5남매 중 장남으로서 도대체 어찌 살아야 할지 막막할 때였다. 이 절망과 상실, 고통의 시기에 엄마는 수호천사처럼 아버지 앞에 나타났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아버지에게 가장 소중한 반려자이자 배우자가 나타난 대사건이다.
엄마는 주위의 모든 거센 반대를 물리치며 모든 것 다 훌훌 내던져 버리고 오로지 아버지를 위해 희생하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엄마의 인생에서 포근한 행복을 가져다 주는 남편은 아니었다. 조실부모하며 너무 험한 처지를 겪었으니 맺힌 한의 응축된 응어리가 많으셨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술을 드시면 폭음(暴飮)을 하셨다. 술을 사납게 드시는 아버지는 엄마의 인생을 사납게 만들기도 했다. 엄마는 아버지와 살아오시면서 아버지의 잘못된 음주습관 때문에 고통스럽고 불행했었다.
그래도 엄마가 아버지와 팔순을 맞이하며 해로하실 수 있었던 까닭이나 비결은 아버지의 원래 따뜻한 본성 덕분이었다. 술을 드시지 않았을 때 아버지는 더할나위 없이 자상하며 따뜻한 유머러스트이시다. 아버지는 엄마를 지극히 극진히 사랑하신다. 가족 사랑도 대단하시다. 특히 아버지는 미남이시다. 미남의 대명사인 신성일급이시다.
이제 술을 드시지 않으시기에 아버지는 더욱 미남이 되신 것 같다. 정말로 끊기지 않을 것같던 아버지의 고질적 음주습관은 끊어졌다. 아버지는 건강을 위해 그리도 좋아하며 사납게 드셨던 술을 완전히 끊었다. 아울러 그 동안 엄마를 불행하게 했던 잘못에 관한 사죄와 용서를 위하여 엄마에게 거의 충성하며 사신다. 물론 가끔 엄마와 아버지는 언쟁을 벌이기도 하지만 길어야 10분을 넘지 않는다. 두 분 모두 심성이 부드러우셔서 금방 다정한 부부가 된다. 다정하게 지내는 자식들을 내려 보는 것이 부모로서 가장 큰 행복이라지만 다정하게 지내는 부모님을 올려 보는 것도 자식으로서 가장 큰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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