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엄마 이야기(48) - 사진에 드러나는 사랑과 정겨움
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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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1 19:25 | 최종 수정 2021.03.1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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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어머니들이 자식들을 사랑으로 품듯이 울 엄마도 우리 삼남매를 사랑으로 품으셨다. 사진의 배경으로 보건대 여기는 한양대 앞 반지하 1층 방이었다. 엄마는 2층에서 장사를 하시고 1층에서 잠시 쉬다가 이 사진을 찍은 것 같다. 아마도 사진을 전공하는 내가 찍고 내 방의 암실에서 필름 현상하고 내가 인화한 것 같다. 엄마가 막내딸과 함께하는 정겨운 시간을 잘 포착한 것 같다. 한마디로 사진예술의 거장이며 사진미학의 고수인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 1908~2004)이 말한 ‘결정적 순간’을 잘 잡은 것이다. 별 아무 것도 아닌 모녀의 사진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을 붙여 뻥이 너무 심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엄마의 아들이자 안나의 오빠인 내가 주관적으로 생각하기엔 그렇다.
엄마가 안나 볼에 뽀뽀하는 사진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제일 최고로 존경하는 분인 사진작가 故최민식(崔敏植, 1928~2012) 선생님의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감히 설마 그럴리야 있겠냐만은 사진을 찍은 당사자가 그리 생각한다면 나 혼자 주관적으로 그런 것이다. 모름지기 모든 예술이란 다 그렇다. 물론 남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역시도 그런 것이다. 아무튼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엄마와 막내딸의 자연스러운 정겨움이 잘 담겨 있는 사진이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와 막내딸을 사진으로 찍은 것이 아니라 엄마와 막내딸 간의 정겨움을 사진에 담았다.
막내딸인 안나는 나와 6살 아래인데 엄마는 안나에게 애틋함이 더욱 컸다. 행당동 128번지에서 밥상보를 만드느라 집안이 지저분하고 어수선한데 안나는 아무 불평불만 없이 그 속에서 조용히 숙제를 하곤 했다. 여기 한양대 앞 집에서는 엄마가 중탕보약집 장사를 하는데도 아무 거리낌 없이 친구들을 집으로 오게 해서 같이 놀곤 했다. 그런 점에서 안나는 오빠인 나보다도 더 속이 깊은 자식이었다. 그런 막내딸이 참으로 애틋하며 사랑스러웠을 것이다. 그 사랑이 저 사진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엄마의 뱃속(子宮)에서 태아(胎兒)로 자랐다. 열 달을 살고 뱃속을 나와 탯줄이 끊겨도 엄마의 품속은 세상에서 가장 포근하며 아늑했다. 세상에 태어나 힘없는 아가 입술이었기에 말할 수는 없어도 쉽게 맘마를 옹알댈 수 있었다. 이제 아기들이 먹는 맘마가 밥 먹는 몸 된 지 이미 오래 되었어도 엄마는 늘 여전한 그리움의 바탕이다. 엄마를 부르는 아이적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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