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697)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14장 송도와 진주여자⑤

이득수 승인 2024.03.03 11:55 의견 0

“뭐 그렇게까지 번거롭게 할 것은 아니고 우선 팩스로 관계자료나 좀 보내주게. 내가 찬찬히 읽어보고 조만간 내려갈 테니 조용히 일할 공간과 성능 좋은 컴퓨터나 하나 준비해주게.”

“예. 알겠습니다. 국장님!”

하고 팩스로 자료를 받아 다소 막연하기는 하나 그런 데로 뭔가 만들 수는 있을 것 같아 이튿날 10까지 지역경제과 사무실로 가기로 하되 구청장은 사업에 대한 감이 어느 정도 잡혀 사업계획보고회를 할 때 만나기로 했다.

14. 송도와 진주여자⑤

이튿날 되도록 밝은 색 티셔츠와 등산복점퍼에 운동화까지 초록색의 화사한 차림으로

“안녕, 후배님들!”

번거로울까 봐 정문을 피해 살그머니 지역경제과가 있는 별관건물의 2층 복도를 한참이나 걸어 가 문을 열며 일부러 커다랗게 소리치니

“아이구, 국장님!”

“국장님!”

김웅렬 과장과 정병진 계장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반색을 해

“동생은 잘 있었나?”

전부터 친한 김웅렬 과장과 악수를 하다

“아차, 그러면 안 된다고 했지. 잘 있었소? 김웅렬 과장님!”

“아이고, 형님도 별말씀을!”

하며 두루 인사를 마치고 과장의 응접세트에서 차를 한잔 마시고 나자

“그저 국장님만 믿습니다!”

과장이 구청장실에 간다며 나가자

“국장님, 담당자 박창훈씹니다.”

아까부터 업무용수첩을 들고 뒤에 섰던 직원을 소개했다. 30대 중반쯤의 훤칠하게 키가 큰 밝은 얼굴이었다.“

“잘 부탁합니다. 박창훈입니다.”

“그래요. 아주 미남이네. 우리 아들처럼 생각할 테니까 친하게 지내요.”

“감사합니다.”

하고는 산화경방용 순찰차를 불러 셋이 구덕령 대신공원으로 향하는데

“국장님, 오랜만입니다. 이렇게 또 모시게 되어 반갑습니다.”

전부터 알던 기사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미처 이름이 생각 안나 머뭇거리는데

“저 강태훈이 아입니까? 주민복지국장으로 계실 때 많이 모시지 않았습니까?”

“맞아. 순찰도 순찰이지만 등산코스를 알뜰히 잘 안내해주던.”

“예. 전보다 많이 건강해지신 것 같네요. 혈색도 좋고요.”

그러고 보니 순찰이 끝나면 당뇨가 심해 한바탕 땀을 흘려야하는 열찬씨를 향해 어디어디로 올라가 어디어디로 내려오라고 하고 종점에서 기다리던 직원이었다.

“그래, 잘 지냈어요? 집안도 다 편하고.”

“예. 감사합니다.”

지금은 <구덕문화공원>으로 불리지만 <구덕수목원>으로 불리며 나무를 베어내고 땅을 다져 건물을 짓고 조경을 하고 교육사료관과 민속생활관, 다용도건물과 온실을 짓기까지 모든 과정을 문화관광과장으로서 기획감사실장으로서 직간접적으로 늘 개입했던 현장, 특히 민간투자자의 임의사업변경으로 공사가 중단되고 의회의 특위가 구성되어 신설된 담당부서 자치생활과장으로 마무리를 지으면서 실컷 고생만 하고 개장식은 이병인 문화관광과장에게 넘겨주고 뒷전에 서서 한숨만 쉬던 날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그리고 그런 열찬씨를 위로하느라 인근 <순애집>에서 막걸리를 사주던 김웅렬 당시 암남동장이 지금 맡은 사업의 과장이 된 것도 재미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다용도건물의 1층 전시실 앞에 길쭉하게 자리 잡은 관리사무실, 그러나 특별히 상주하는 사무원도 없는 사무실의 가운데 칸막이를 하고 조용히 글을 쓸 수 있도록 책상 두개, 컴퓨터 두 대에 소파하나가 장비의 전부였다.
“컴퓨터가 신식이라 좋군. 인터넷도 빨리 뜨고.”

자리에 앉은 열찬씨가

“벽에 걸 관내도 큰 것, 암남공원 상세도 큰 것을 준비하고 실무용 A4 크기의 도면도 몇 장 좀 부탁하네. 그리고 각 부서의 송도해수욕장과 암남공원에 대한 자료나 책자, 특별히 스토리텔링에 포함시킬 내용이 있는지도 조사하여 자료를 주고 특히 건설과와 지역경제과의 건설공사와 조경공사의 사업비와 내역의 대강을 알았으면 좋겠네.”

“예.”

하는데

“뭐, 우리 이열찬 국장님, 아니 시인께서 오셨다고?”

저 아래 교육사료관에 촉탁으로 근무하는 수필가 강기홍 선생의 전화가 와서 아래로 내려가 차 한 잔을 하자

“이렇게 만난 김에 점심이나 하지요?”

정 계장의 제의로 꽃마을의 <잠이집>이라는 손부부집에서 막걸리를 곁들인 점심식사를 하고 그날은 바로 귀가하기로 했다.

이튿날부터 <구덕문화공원>으로 출근을 하는데 오랜만에 나서는 출근길이 보통이 아니었다. 충무동의 서구청까지는 주공아파트 바로 앞에서 87번 입석이나 305번 좌석을 타면 단번에 끝났지만 이젠 87번을 타도 자갈치역에서 내려 다시 서대신동역까지 지하철을 하고 거기에서 꽃마을로 가는 마을버스를 타야만 했다. 아무리 서둘러도 한 시간 반 이상이나 걸리는 것이었다. 거기에다 꽃마을 종점에 내려서 또 10분 가까이 걸어야 사무실에 닿을 수 있으니 여간 서둘러도 10시 출근이 어려웠다. 따로 출퇴근시간을 지키지 않아도 좋다고 했지만 그간의 근무경험으로 보아 최소한 실무자나 담당공무원이 쉽게 만날 수 있게 고정근무시간을 오전 10시에서 오후 4시까지로 정하고 그렇게 알라고 했다. 부지런한 박창훈씨가 열찬씨가 요구한 자료 외에도 <암남공원일대 지질조사 용역보고서>같은 유용한 자료도 가져왔다.

“창훈씨, 올해 몇이지?”

“서른다섯입니다.”

“그래? 우리 아들은 갓 서른인데 창훈씨도 우리 아들 할까?”

“예.”

하고는 정말 아들처럼 매사 친절하고 곰살맞게 구는지라 어느 듯

“아들아!”

“예. 아버님!”

하는 정도로 친해져 컴퓨터조작은 물론 휴대폰사용법까지 물러보고 해결해주며 정말 친자식처럼 지내는데

“창훈씨, 대학교전공은 입업인가?”

“예.”

“그럼 학창시절 문학에 관심은 있었던가?”

“이닙니다.”

“시집이나 소설책은 좀 읽었는가?”

“아니요. 대학입시에 매진하느라 꼭 필요한 시인, 소설가와 작품이름만 달달 외었지요.”

“저런? 그래 연애편지는 써봤는가?”

“아니요. 요즘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나요.”

“그래? 그럼 스토리텔링 자체에는 큰 도움이 안 되겠고 사진촬영이나 자료검색과 운전이라도 부지런히 도와주게.”

하고는

“그 동안 혼자 많이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했제? 도대체 스토리텔링이 되기나 하는 건지, 피차 같이 근무해보지도 않은 저 머리가 허연 영감님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대책이 있는지 많이 걱정했을 거야. 자, 이제 내 나름대로 대충 감이 왔으니 들어봐.”

하고 컴퓨터화면을 켜고

“자, 여길 봐. 우선 스토리텔링이 무엇인지 개념을 정리하고 우리 송도해안볼래길과 어떻게 접목시킬 지의 방향설정이 되어야지. 그간 내가 인터넷을 비롯한 여러 자료를 검색해 이렇게 대충 감을 잡았어.

그리고 다음은 스토리텔링을 어떤 방향으로, 대충 몇 개의 스토리로 구성하느냐의 문제인데 내가 도면을 들고 현장을 답사해 송도해수욕장, 해안산책로, 암남공원일주와 공원입구에서 해수욕장까지의 네 개구간으로 설정하고 각 구간마자 15에서 20정도 도합 70개 정도의 스토리로 구성하기로 했네. 그리고 추진일정인데 시간이 촉박해 우선 연말까지 스토리를 작성하는 것을 마치고 회계 법상 원인행위를 마치고 연도폐쇄기 전인 내년 2월말까지는 교정을 비롯한 모든 과정을 끝내고 꽃피는 새봄에 책을 내기로 하지. 어때?”

하고 묻자 화면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창훈씨가

“좋습니다. 저야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요. 그런데 국장님, 언제 이렇게 상세하게 자료를 작성했는지요.”

“뭐, 오랜만에 몸 좀 풀었지. 이래봬도 내가 왕년에 기획계장 출신인데 이정도야 뭐...”

하다 멋쩍은 생각이 들어

“이걸 서너 부 출력해 과, 계장 선까지 나눠주고 아직 청장실엔 자료를 넣지 말게. 사업계획보고는 현장을 좀 더 보고 대표적 스토리 여남은 개가 작성되는 11월초쯤에 하기로 하세.”

하니 신이 난 창훈씨가 출력을 끝내고

“자, 국장님 타시죠.”

지하철 서대신동역까지 바래다주었다.

이튿날 열찬씨 출근시간 10시가 좀 넘자

“국장님!”

정병진 계장이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들어오며

“역시나 입니다. 국장님의 스토리텔링 정의나 구간 설정, 사업추진 일정이 다 완벽합니다. 역시 아직 살아있네요.”

하더니

“오늘부터 우리 창훈씨를 대신해 국장님을 보필할 도우미 아름다운 순미씨를 소개합니다.”

하며 등 뒤에 섰던 아가씨를 소개하는데 스물대여섯 되어 보이는 아주 귀엽고 세련된 얼굴이지만 어딘가 당돌해 보이모습이었다.

“권순밉니다. 잘 부탁합니다.”

고개를 까딱하는데 치렁치렁한 머릿결이 출렁거렸다. 꽤나 미인이라 싶으면서

“그래요. 반가워요. 그런데 남자친구는 있어요?”

“예,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거 물으면 성희롱에 해당된다는 거 모르세요. 그렇지만 우리 아버지또래라 용서하겠어요.”

하며 웃는데 눈빛이 써늘한 게 이게 보통이 아니구나 싶은데

“대학생 현장체험 알바생입니다. 영리하고 부지런해서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고 들고 온 박카스를 하나씩 마시고 내려가 버렸다.

“자,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벽에 붙은 관내도도 살펴보고 각종 자료도 넘겨보고 음악도 들어가며 쉬엄쉬엄 송도의 분위기에 젖어들게. 여기 있는 추진일정에 따라 내가 하나하나 스토리를 작성할 테니까 미스권은 원고교정, 보조자료검색이나 해주면 되겠네.”

하고 빈방에 젊고 아름다운 여자와 둘이 있는 게 어딘지 거북해

“오늘은 이만 퇴근하게. 구덕산의 아름다운 경치나 감상하며 슬슬 내려가게. 나랑 같이 일하려면 먼저 편안한 마음으로 감성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이 필요할 거야.”

하며 돌려보냈다.

이튿날 열시 열찬씨가 출근하자

“안녕하세요? 선생님!”

먼저 출근한 순미씨가 쟁반에 바친 커피 잔을 들고 오는지라

“어디서, 웬 커피를?”

“청소를 하다 전에 근무하던 사람들이 쓰던 것을 찾았어요. 어때요? 커피 맛 좋지요?”

“좋아. 더욱이 미인이랑 같이 마시니 향이 두 배야.”

“아이구, 또. 미인이 아니라 미스권이예요.”

“그래. 그럼 앞으로는 계속 미스권이야.”

하고 열찬씨는 스토리를 작성하고 미스 권은 당분간 각종 자료를 읽어보거나 창훈씨와 동행해 송도해수욕장에서 해안산책로를 거쳐 암남공원을 둘러 이번에는 동물검역소에서 해안도로를 통해 송도해수욕장으로 돌아오는 길을 찬찬히 둘러보며 우선 <송도해안볼래길>의 전체적 윤곽을 이해하고 분위기에 젖어들게 했다.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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