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작은 서점에서 클라리넷을 주제로 한 책 이야기와 함께 클라리넷연주회가 있었다.
지난 2일 오후 3시 부산 남구 용호로 268-5 골목안 미우서재(대표 강미순)에서 ‘미우서재 의미여행=나의 클라리넷 이야기 북콘서트’가 열렸다.
이날 초대손님은 『나의 클라리넷 이야기』(2023, 좋은땅)를 펴낸 문석환 문클라리넷 원장으로 이날 행사에서는 그의 살아온 이야기와 클라리넷 연주가 이어졌다. ‘문클라리넷이 걸어온 길’이란 부제가 달린 이 책은 클라리네티스트의 길을 걷다 오른 손 통증으로 인해 오케스트라 단원 활동을 그만 두고 서울 반포에서 클라리넷학원을 20년째 운영해온 문석환 작가가 음악생활을 하면서 마음에 품고 살아왔던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다. 이 책이 나온 것은 사막여우라는 필명을 가진 김지영 씨(고려대 정외과 대학원 재학)의 제안으로 이뤄졌으며 김 씨가 이 책을 엮었다.
이날 동네서점인 미우서재에는 빼곡한 책장 사이로 열댓명 청중이 자리를 잡아 서점이 꽉 찼다. 사회를 본 사막여우님이 먼저 미우서재 강 대표에게 인사를 시켰다. 강 대표는 “이제 서점 문을 연지 10개월 정도 밖에 안 되는데 문석환 샘의 책을 계기로 북콘서트를 열게 됐어요.흐린 날씨에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리고 작은 글방이지만 많이 도와주세요. 잘 버티고 있다는 말씀드립니다”라며 인사를 했다.
이날은 문석환 작가가 인사말을 하기보다 먼저 클라리넷 첫곡을 연주했다. 제목은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K.622 2악장’. ‘삐리리리 삐리리리~’. 청아한 곡조가 서점을 가득 채운다. 이곡은 모차르트의 유일한 클라리넷 협주곡으로 특히 영화 ‘쇼생크 탈출’과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주제곡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쇼생크 탈출’에선 죄수들이 노동하다 맥주를 마실 때 나오는 노래로 해방감을 느끼는 장면이 겹친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선 광대한 아프리카 자연 속을 로버트 레드포드와 메릴 스트립이 거닐 때 나오는 웅장한 곡으로 감동을 가져준다.
큰 박수 끝에 문 작가가 인사를 했다. 사회자가 먼저 문 작가에게 책이 나온 전후 달라진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문 작가는 “궂은 날씨에도 이렇게 와주신데 감사드립니다. 지난해 6월 이 책이 나왔는데 처음에는 책 제안을 받고 뭘 써야 할지 몰랐고 자존감도 낮았는데 어쨌든 책이 나오고 나서는 동네학원을 하지만 학생들이 절 보는 태도도 달라졌고 저 스스로도 뿌듯함을 느낍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문 작가는 덕원예고, 한양대 출신으로 덕원예고 때 실내악 콩쿠르 금상 및 기념음악회도 갖고 서울 시립교향악단 협연(1995년)도 했다. 한양대 재학 중엔 실기 우수자 연주회 독주(2001년)를 하기도 했고, 졸업후엔 독일 나드 음악회 출연 독주(2003년), 영화 <외출> OST 참여(2004년), 아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2005), 기독 실내악 단원(2005, 덕원예고 실기강사(2009-2013년), 드라마 <결혼예약> OST 참여(2016년) 등의 활동을 해왔고 2017년부터는 사마르 앙상블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어서 문 작가는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제2번 3악장을 연주했다. 잔잔한 곡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함께 한 독자 겸 관객들은 모두 행복한 표정이다. 손엔 커피와 주스가 한잔씩 쥐어져 있었다.
문 작가는 책에서 자신이 클라리넷을 하게 된 계기가 우연히 다가왔다고 말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방학숙제를 다 해오지 않았다고 반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담임선생에게 심한 구타를 당했고 그 뒤 중학교 때까지 전학과 가출, 학교 부적응아로 전전했고 이를 보다 못한 모친이 아들이 살길은 클라리넷뿐이라고 해서 클라리넷을 사서 안겼다고 한다. 그 뒤 그는 클라리넷으로 덕원예고에 진학했다.
사회자는 지금 문 작가는 서울 강남에서 20년째 문클라리넷이라는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거기에 자신도 1년 반째 성인반에서 배우고 있다며 0부터 가르친 학생이 어느 정도 되는 지 그리고 학원운영을 하면서 에피소드가 있는지를 물었다.
이에 문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악기구입이나 조립부터 아예 클라리넷을 모르는 0부터 가르친 학생 비율이 70%정도 됩니다. 그 중에 책에 H라는 유명한 영화배우가 순수하게 0부터 클라리넷을 배우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분은 스케줄이 바빠서 1~2년은 못나온 경우는 있어도 지금까지 15년째 배우고 있지요. 재미있는 것은 그분이 ‘군함도’ 영화 주연이신데 원래 대본에는 트럼펫을 불게 돼 있는데 자신에게 익숙한 클라리넷으로 바꿔달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고 해요. 그분이 학원에 오시면 수강생들은 물론 주변 사람들이 사인해달라고 난리였습니다. 그때 참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또 저한테 0부터 배운 제자가 어느덧 독립해 클라리네티스트로 성장해 최근 이대 앞에 클라리넷학원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어요. 저를 모델로 삼은 첫 사례이기도 하죠.”
이어서 3번째 곡으로 미켈레 만가니(Michelle Mangani, 1966~)의 ‘로만차(Romanza)’를 연주했다. 만가니는 이탈리아의 작곡가, 지휘자, 클라리넷 연주자이다. 로만차는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로망스라는 의미이다. 로만차는 폐부를 찌르는 곡으로 흐린 날씨에 듣는 이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사회자는 문 작가를 처음 만난 이야기를 했다. “우연히 모임에서 문 작가님을 만났어요. 클라리넷학원을 운영하신다고 하길래 강남 금수저인가 싶었어요. 근데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정말 어려움을 많이 겪으셨더군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보고 싶다고 했고, 처음에는 매우 주저하셨는데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책이 완성되고 나서 본인도 참 좋아하시는 것 같아 기뻤습니다.”
문 작가는 “저는 2005년부터 클라리넷학원을 시작했는데 그때 대부분 클라리네티스트의 경우 시향이나 대학 강단이 정규코스였지 학원 운영은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지요. 처음에 저 스스로도 사람을 만나는 것부터 두려웠죠. 제 성격이 또 내성적이어서 학원 홍보도 잘 못했고 어려움이 많았어요. 그래도 어쨌든 견디면서 하고 나니 이제는 경쟁에 내몰려 스트레스 받는 연주자가 아니라 클라리넷이라는 악기 자체를 사랑하고 음악을 즐기게 됐다고나 할까요. 참 고마운 일입니다. 요즘에는 오히려 시향에 계시던 분 중에는 은퇴 후 학원을 해볼까 한다며 저한테 조언을 구해오기도 해요. 세상이 좀 바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어서 사회자가 필자에게 하모니카 연주를 부탁했다. 이날 하모니카 연주는 사회자인 사막여우님이 책에 가장 존경하는 여고 때 선생님으로 소개한 배애란 선생이 필자에게 이날 문 작가 연주가 끝나고 한 곡 정도 연주를 부탁했었는데 문 작가의 연주 가운데 필자에게 하모니카 연주를 부탁한 것이었다.
원곡가수 아그네스 발차와 소프라노 조수미가 불러 유명한 ‘기차는 8시에 떠나네’를 트레몰로하모니카 2개로 불렀다. 앵콜까지 받아 러시아 민요로 우리나라에선 드라마 <모래시계> OST로 잘 알려진 ‘백학’을 불렀다.
이어서 문 작가가 4번째 곡 메켈레 만가니의 ‘러브 테마’를 연주했다. 청아한 음색의 이곡은 한 쌍의 고니가 호수 위에 사랑을 속삭이는 느낌이 절로 들 정도였다. 이곡은 안단체 칸타빌레, 즉 ‘노래 부르듯이 천천히’ 곡이 흘러들었다.
그리고 사회자가 문 작가에게 왜 클라리넷이냐고 물었다. 문 작가는 “클라리넷은 사람의 목소리와 비슷한 음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악기라고 하지요. 들으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그리고 클라리넷은 관악기 중에 비교적 입문하기 좋은 악기입니다. 우선 비용 면에서 다른 관악기에 비해 저렴하면서도 소리는 좋거든요.”
전문가용 플루트나 바이얼린의 경우 억대를 호가하기도 하는데 전문가용 클라리넷은 가격이 1천만원 정도 하지만 입문자용 클라리넷은 30만-40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어 초보자가 시작하기에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덧붙였다.
이제 북콘서트는 후반으로 가고 있었다. 문 작가는 ‘플라이 투 더 선(Fly to the Sun)’을 연주했다. 1950년대에 만들어진 재즈곡으로 데 프랭크 시나트라의 리메이크 후 대히트를 쳤고 우리나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도 나오는 등 매우 익숙한 곡이다.
이어 독자로 참석한 김옥이 씨가 먼저 느낌을 이야기했다. “연주를 들으니 기분이 참 좋네요. 책을 읽었는데 삶은 통섭이란 생각이 드네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책을 읽다보니 소탈함, 소박한 삶 속에 클라리넷이 있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학원 경영으로 나섰을 때 하대 받는 풍토가 고정관점이라면 이만큼 잘 견뎌냈다는데 공감합니다. 이웃과 마음을 나누는 것에 삶이 녹아나 있다는 걸 작가님을 뵈니 그대로 느껴집니다. 진실은 어눌함 속에 있는 것 같아요. 클라리넷을 사랑하고 더 좋아하는 이유, 마음을 울리는 악기 클라리넷이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고맙습니다.”
임정미 작곡가가 말을 꺼냈다. “저는 문 작가와 음악 동문입니다. 저는 작곡을 주로 하죠. 리즈시절 이야기를 하면 문 작가님은 대학 때 섭외하기 가장 어려운 연주자로 악보를 들고 기다리고 했어요. 제 곡도 2곡을 연주했죠. 저는 지난번 다른 북콘서트에서도 갔었지만 오늘 여기서 들으니 첫음에 울컥했어요. 문 작가님의 소리는 독보적이어요. ‘울컹사운드’가 있어요.”
끝으로 문 작가는 ‘어나더 데이 오브 더 선(Another Day of the Sun)’을 연주했다. 2016년 개봉한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La La Land)>의 오프닝곡으로 젊은 남녀의 꿈과 사랑을 현실적으로 그린 유명한 곡이다.
사회자는 “여러분 혹시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문 작가는 오른 손을 잘 못 쓰게 돼 왼손으로 주로 연주를 합니다. 어려운 곡은 키를 바꿔야 하는데 아직 완치가 안 돼 왼손으로 바꿔 연주하는 경우도 많아요”라고 말했다.
책을 보면 문 작가가 대학 졸업후 2002년 서울심포니 오케스트라에 입단했지만 포기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오른 속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 목디스크를 의심하고 마땅히 치료하기가 힘들어 치료 겸 유학길로 독일에 가서 몇 년 있었는데 그 원인이 초등학교 때 담임으로부터 폭행을 당할 때 깨진 어항 유리파편이 신경을 누르고 있었는데 치료나 수술이 힘든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 작가는 그 뒤 클라리넷 연주가로 가기가 불가능했고 여러 고심 끝에 선택한 것이 학원 경영이었다는 것으며 줄곧 왼손으로 연주할 수 있는 곡을 많이 연습해왔다고 했다.
자리에 함께 한 독자 겸 관객들은 클라리네티스트 문 작가에게 큰 환호와 갈채를 보냈다. 앵콜 요구가 계속됐고 문 작가는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을 연주했고, 거기에 더 요청이 있어 마지막곡으로 ‘문리버(Moon River)’를 연주했다.
이날 마음여행은 멋진 무대에서 연주하는 클라리네티스트를 꿈꾸었지만 힘든 과정을 거쳐 이제는 동네 음악학원 원장으로 클라리넷을 가르치고 스스로 즐기는 음악애호가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자리로 잔잔한 감동이 음악과 함께 흘렀다.
미우서재(995-3995)는 독서모임과 펜드로잉 모임 그리고 매월 북콘서트를 연다. 독서모임은 그림책모임 2개(매월 셋째주 오전 11시・오후 7시), 소설모임(매월 마지막주 오후 7시), 비소설모임(매월 셋째주 금요일 오후 7시), 그리고 펜드로잉모임(매월 2・4주 화요일 오후 7시)이 있다. 매월 마지막 금요일 오후 7시엔 북콘서트 ‘책 사람 책’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6월 문석환 작가의 『나의 클라리넷 이야기』에 이어 7월 26일 오후 7시에는 죽음학 에세이인 『마지막까지 우아하게』 의 원현정 작가(글・그림)를 초대해 ‘작가와의 대화’ 시간을 갖는다.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 본지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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