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페라다 알베르게 앞에서 아침에 출발하기 전에 대구에서 두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는 부부와 필자가 셀카로 사진을 찍었다.
필자가 어제 잔 방에 침대가 4개로, 2층 침대여서 8명이 잤다. 폰페라다 공립 알베르게는 식당에서 요리해 먹을 수 있는 데다 거실과 한 공간으로 돼 있어 넓었다. 이 알베르게는 특히 젊은 순례자들이 많아 방마다 꽉 차 여분의 침대가 없었다.
자정까지 식당에서 젊은 순례자들이 술을 마시면서 떠들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게다가 필자의 침대 2층에 산적(?)같이 덩치 큰 외국 젊은이가 자정 넘어 들어왔다. 술에 취한 그는 잠든 순례자들이 코를 골거나 이를 갈면서 소리를 내면 큰 소리로 욕을 하고 침대를 손으로 쾅쾅 치거나 발로 찼다. 또 뒤척일 때마다 침대가 무너질 것 같아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또 편두통이 심하게 와 참다가 결국 새벽에 두통약을 먹었다. 필자는 이번 산티아고 순례 초반부터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아 편두통이 심해 두통약을 계속 먹었다.
폰페라다 알베르게 앞 카페에서 필자가 주문한 밀크커피와 크로아상. 사진= 조해훈
필자는 어제 오후에 이곳 알베르게에 일찍 도착해 식당 테이블에 앉아 계속 노트북으로 이런저런 글을 썼다. 저녁에 대구에서 온 부부의 아내가 라면수프에 삶은 달걀을 넣어 끓인 요리를 주어 감사 인사를 한 후 먹었다. 그런 후 그 아내는 “드릴 게 이것밖에 없습니다.”며 필자에게 길쭉한 라면수프를 한 개 주셨다.
아침에 일어나도 편두통이 가시지 않아 두통약을 한 개 더 먹었다. 아침 8시쯤 알베르게에서 나왔다. 같은 방에 잤던 대구에서 온 부부도 밖으로 나오셨다. 50대로 보이는 남편께서 “선생님, 사진 한 장 같이 찍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해 그분이 셀카로 촬영했다. 필자도 “저도 한 장 찍어도 되겠습니까?”라고 허락을 받아 필자의 핸드폰으로 셀카를 찍었다. 그런 후 인사를 하곤 헤어졌다. 좋은 분들이었다.
12세기에 건축되었다는 폰페라다 성. 사진= 조해훈
그리곤 알베르게에서 나가 도로로 올라서니 건너편에 카페가 있어 들어갔다. 밀크커피와 크로와상을 한 개 주문했다. 그리곤 주인아주머니께 “와이파이 있습니까?”라고 물으니 “네, 있습니다.”라며 비밀번호를 가르쳐 주셨다. 이 카페에 와이파이가 되는 줄 모르고 어젯밤에 와이파이 되는 카페와 바(Bar)를 찾아 헤맸다. 결국 한 바에 들어가 커피와 빵이 없어 비싼 술안주를 시켜놓고 원고를 보냈던 것이다. 여하튼 카페에서 커피와 크로와상을 먹으며 한참동안 다른 원고를 썼다. .
폰페라다 성의 도로 건너 교회 옆에 있는 청동상. 사진= 조해훈
카페에서 오전 9시 반쯤 밖으로 나왔다. 1시간 넘게 앉아 있었다. 그리곤 도로를 따라 걸었다. 오전 9시 38분, 도로 한 가운데 십자가 석상이 세워져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모습이다. 거기서 3분 정도 더 걸어 우회전했다. 약간 오르막이다. 오래된 교회 건물이 있다. 교회 옆에 길쭉한 고깔모자를 쓰고 오른손에 종을 잡은 성직자인지, 순례자인지 알 수 없는 형상의 청동상이 있다. 교회를 지나니 바로 폰페라다 성이 왼쪽으로 쭉 연결돼 있다. 이 성은 12세기에 건설됐다고 한다.
폰페라다 광장 쪽 교회 앞에 있는 청동 작품. 사진= 조해훈
폰페라다는 로마 제국 시대부터 광업이 발달한 도시였다. 11세기에 도시 기반이 확립됐다고 한다. ‘철로 된 다리’를 뜻하는 라틴어인 ‘폰스 페라타’(Pons Ferrata)에서 도시 이름이 유래됐다고 한다. 자료를 보면 1082년 오스문도(Osmundo) 주교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순례하던 도중에 이 도시에 흐르는 실 강에 다리를 세운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폰페라다 광장. 사진= 조해훈
폰페라다 성을 왼쪽으로 보면서 계속 걷는데 오른 편에 카페가 있다. 어젯밤 필자의 침대 2층에서 잤던 청년이 혼자 앉아 있었다. 인사를 하니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침에 일어나서 짐을 꾸리는데 이 청년도 침대 2층에서 내려왔다. 필자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는데, 인상을 쓰며 쳐다만 보곤 인사를 하지 않았다.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그 누구와도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이 청년이 유일하게 모른 체 했다. 카페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영락없는 산적(?)이었다.
여하튼 산티아고 길은 여기서 도심 안으로 들어간다. 오전 9시 52분, 넓은 광장이다. 카페 문을 연 데도 있지만 알베르게 맞은 편에서 커피를 마신 데다 오늘 걸어야 할 길이 있어 마냥 폰페라다에서 죽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광장에서 걸어온 방향으로 뒤돌아보니 교회 앞에 십자가를 가슴에 안은 청동 인물상과 청동 나무가 세워져 있다. 청동 인물상 왼팔로 왼쪽 어깨 위에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를 올린 채 서 있다. 자세한 건 알 수 없지만 표현이 상세하지 않은 걸로 유추할 때 조각 작품 같기도 하다.
광장 한가운데로 가니 왼쪽에 또 청동 인물상이 있다, 양복을 입은 중년 신사가 앞에 무슨 네모난 큰 통 위에 오른손을 올려놓고 있다. 광장을 통과하니 도심 안으로 가는 길이 있다. 그즈음에 시청사로 보이는 건물이 있다. 아스트로가에서 봤던 시청사와 건물이 닮았다. 아스트로가 시청사처럼 건물 위 양쪽에 첨탑이 대칭으로 서 있다.
순례자는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항상 그렇듯 필자가 가장 꼴찌인 모양이다. 오전 10시, 양쪽으로 주택인 듯한 건물들이 줄지어 있다. 오전 10시 15분, 길 가운데에 로터리가 있고 로터리 안에 청동 인물상 2개가 서로 마주 보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 인근에서 아래 도로로 긴 계단을 통해 내려갔다. 아래 도로에서는 지금까지 왔던 길의 반대 방향으로 간다. 오전 10시 17분, 다리 아래로 강이 흐른다. 산티아고 표지판을 보고 계속 걸었다. 왼쪽 언덕으로 폰페라다 성과 건물들이 보인다. 오른편으로 길을 따라 걸으니 좀 전에 보았던 강 옆이다. 강을 따라 공원을 지나 걷는다. 길에 낙엽이 많다. 오전 10시 24분, 산티아고 길을 알려주는 표지석이 있다.
폰페라다 아래 도로에서 본 강. 사진= 조해훈
오전 10시 38분, 왼쪽에 제법 큰 축구장이 있다. 학생들이 축구 시합을 하고 있다. 학부모인 듯한 사람들이 축구장 펜스 바깥에서 구경하며 응원하고 있다. 거기를 지나니 옛 화력발전소를 박물관으로 바꾼 ‘에너지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건물을 지날 무렵 단체로 박물관을 둘러보러 온 사람들이 안내자의 설명에 따라 박물관 앞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박물관을 지나면 언덕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계단을 올라 도로에 서니 폰페라다 도시가 거의 한눈에 들어온다.
강 옆 축구장에서 학생들이 축구 경기를 하고 있다. 사진= 조해훈
도로에 로터리가 있고, 도로를 건너 12시 방향이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로터리 도로를 건너면 산티아고 순례길 표지판이 있고, 몇 발짝 더 가면 표지석도 있다. 낮 10시 53분이다. 오전 11시 2분, 마치 우리나라의 옛 학교 건물처럼 생긴 길쭉한 2층짜리 건물이 있다. 건물 바깥에 ‘El Bar de Compostilla’라는 간판이 붙은 바(Bar)이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 인지 바 안에 손님들이 많다. 배는 고프지 않아 밀크커피를 한 잔 주문했다. 아르바이트하는 아가씨도 다섯 명이나 된다. 우리나라 사람으로 보이는 청년 순례자가 맞은편 테이블에 다른 젊은 순례자와 함께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 어제 폰페라다 알베르게에서 밤늦게까지 떠들던 우리나라 청년이다. 목소리가 아주 커 기억한다. 바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레스토랑처럼 느껴진다. 실내 장식이나 기물 등이 고급스럽다.
축구장 지나 있는 에너지박물관. 단체로 온 사람들이 박물관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조해훈
오전 11시 42분, 바 바깥을 나왔다. 건물로 들어갔던 반대 방향으로 나왔다. 큰 마당이 있고 전체적인 규모가 커 예전에 학교였거나 병원(?)이었는지 알 수 없다. 그대로 직진하니 자그마한 예배당 같은 교회가 있다. 교회의 뜰에 자연석 큰 바위 위에 성모 마리아가 왼손으로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석상이 세워져 있다.
에너지박물관에서 계단 통해 도로로 올라서 뒤돌아 본 폰페라다 전경. 사진= 조해훈
교회를 지나 표지석을 보고 좌회전해 조금 걷다가 표지석을 보고 우회전한다. 낮 12시 2분, 길가에 여태 보지 못한 독특한 길 표지판이 서 있다. 긴 막대기 위에 금색의 산티아고 문양이 있고 그 아래에 손 모양과 화살표가 있다. 처음 보는 표지판이다. 이어 도로 아래 굴을 지나면 본격적인 흙길이다.
오전 11시 넘어 들어간 바. 예전에 학교나 병원 건물로 쓰였을 것 같다. 사진= 조해훈
낮 12시 11분, 저 앞에 연세 드신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걸어가신다. 필자는 한참 그분들 뒤를 따라갔다. 아, 알고 보니 공동묘지에 왔다가 가시는 걸음이다. 누군가를 기리고 가시는 길이어선지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낮 12시 16분, 길가의 어느 집 창가에 꽃들이 밝게 피어 있다. 이 모습을 본 필자의 마음이 환해졌다.
바를 지나 300m 쯤 있는 예배당 뜰의 자연석 위에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석상. 사진= 조해훈
12시 20분, 본격적인 시골 마을에 접어들었다. 낮 12시 27분, 한 집 벽에 십자가와 중세 순례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집의 벽에 역시 아까 봤던 독특한 표지판이 높게 세워져 있다. 화살표는 직진하라고 돼 있다. 마을을 지나 계속 걷는다. 낮 12시 57분, 푸엔테스 누에바스(Fuentes Nuevas) 마을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인근에 예수님이 못 박혀 있는 돌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마을 들어가는 초입에 산티아고까지 203.9km 남았다는 표지석이 서있다.
이 지역에만 있는 독특한 산티아고 길 안내 표지. 사진= 조해훈
오후 1시 1분, 마을 안에 구멍가게처럼 작은 바가 있다. 바 이름은 ‘Bar La Ermita’이다. 우리나라 말로 굳이 번역하면 ‘예배당처럼 자그마한 바’ 정도가 될까? 커피 한잔과 토스트 한 개 합쳐 3유로 30센트밖에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5천 원 정도이다. 그런데 배가 고프지 않았고, 차(茶)가 있어 차만 한 잔 주문해 천천히 마셨다. 구석 자리에 마을 할아버지 두 분이 맥주를 마시고 계신다. 바의 주인아주머니가 키가 작고 나이가 환갑 넘어 보이나 친절했다. 차 한 잔을 15분간 마시며 앉아 있다 일어섰다.
마을의 어느 집 벽에 십자가와 중세 순례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사진= 조해훈
오늘처럼 순례길에 카페가 군데군데 있으면 마음이 덜 외롭다. 커피 한 잔만 마셔도 마음이 편안하다. 필자는 우리나라에서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전통찻집이나 카페에 가 차나 커피를 마셔 카페 분위기에 아주 익숙해 있다.
오른쪽 건물 붉은색 1층이 아주 작은 바. 필자는 이 바에서 커피 대신 차를 마셨다. 사진= 조해훈
마을 길을 걸으니 폰페라다 외곽이나 전형적인 시골 마을 분위기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돌집이 있는가 하면 아직 영업은 하지 않으나 외관이 멋진 바도 있다. 오후 1시 32분, 마을을 벗어났다.
어느 집 대문 양측 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석상이 올려져 있다. 사진= 조해훈
오후 1시 57분, 광활한 밀밭이다. 아직 밀은 어리지만 다 자라면 초록의 물결이 출렁이리라. 밀밭에서 2분 정도 더 걸으니 작은 집이 있다. 대문 왼쪽 위에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 석상이 앉아 있고, 오른쪽 위에는 돋보기를 끼고 뜨개질을 하시는 할머니 석상이 앉아 있다. 아마 어르신들이 사시는 집이리라.
다른 집 마당에는 마차를 모는 할아버지와 그 옆에 앉아 뜨개질을 하는 할머니 모습의 장식물이 놓여있다. 사진= 조해훈
오후 2시 15분, 우리나라로 치면 면 소재지 같은 마을에 또 바가 있어 들어갔다. 커피를 한 잔 주문해 마셨다. 와이파이가 돼 1시간 반가량 앉아 노트북으로 글을 썼다. 오후 2시 45분, 바에서 나오니 인근 집 마당에 정겨운 모습의 장식이 있다.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가 마차를 몰고 그 옆에 앉은 할머니는 뜨개질하는 장식물이다. 말도 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표정도 살아 있어 아까 어느 집 대문 양측 위의 석상보다는 좀 더 사실적이다.
어느 호스텔 앞에 놓인 광고판. 순례자의 모습이 평온하게 그려져 있다. 사진= 조해훈
계속 길을 걸었다. 오후 4시 2분, 오랜 건물 앞에 연한 파란색 호스텔 간판이 한 개 땅에 놓여 있는데, 편안하고 낙천적으로 보이는 순례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림을 보니 마음이 편안했다.
오후 4시 반쯤 순례길을 배경으로 필자가 셀카를 찍었다. 사진= 조해훈
오후 4시 31분, 저녁놀이 지평선 위로 눈부시다. 주민들의 통행이 거의 없는 듯한 숲길이다. 오후 4시 48분, 길가 과수나무 위에서 한 할아버지가 가지를 자르고 계시고, 다른 한 할아버지는 그 앞길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신다. 두 분 다 연세가 여든은 넘어 보인다. 필자가 가까이 가니 나무 위의 할아버지께서 “어디에서 오셨어요?”라고 물으신다. 필자가 “한국에서 왔습니다.”라고 대답하자 나무 위의 할아버지는 “이제 산티아고까지 200km 남았어요. 무사히 완주하세요.”라고 격려를 해주셨다. 필자는 “감사합니다. 수고하십시오.”라고 인사를 드리곤 시골길을 걸었다. 거기서 3분 더 걸어가니 앞에 산티아고 198.5km 남았다는 표지석이 있다. 할아버지 말씀이 옳으셨다.
한 할아버지가 오른쪽 나무 위에 올라가 전지작업을 하시면서 앞에 서 있는 다른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신다. 사진= 조해훈
오후 4시 53분, 이제 해가 넘어갈 즈음이다. 석양이 아까보다 더 낮게 빛을 발하고 있다. 길 오른편이 포도밭이다. 오랜만에 포도밭을 본다. 오후 5시 길에 민들레가 진하게 피어 있다. 오후 5시 3분, 저 멀리 지평선 위로 점점 떨어지는 석양이 갈수록 장관이다.
오후 5시가 가까워 오니 석양이 지평선 위로 비친다. 사진= 조해훈
오후 5시 23분, 오늘의 목적지인 ‘카카벨로스’(Cacabelos)까지 3km 남았다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이제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이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오후 5시 30분, 마을 입구다. 3분 더 가니 작은 돌로 쌓은 오랜 교회가 있다. 2층으로 된 마을 주택가를 지난다.
순례길에 민들레가 피어 있다. 사진= 조해훈
오후 5시 38분, 마침내 오늘의 목적지인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알베르게 1층은 바이고 2층은 방이다. 바 이름은 ‘물레방아(El Molino)’이다. 필자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주인아저씨는 좀 우락부락하게 생겼다. 2층 방을 배정받고 짐을 푼 뒤 1층 바에 내려와 커피 한 잔과 저녁 식사를 주문했다. 수프를 먹고 나니 스테이크가 나왔다. 카페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며 한 시간가량 있다 2층 방으로 갔다. 와이파이가 돼 방에서 글을 썼다. 그럭저럭 밤 9시가 돼도 다른 순례객이 오지 않았다. 아마 필자 혼자 잘 모양이다. 밤 10시쯤 자리에 들었다. 다른 손님이 오지 않았다. 필자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처음으로 알베르게에서 방을 혼자 썼다.
오후 5시 38분, 마침내 도착한 '카카벨로스' 알베르게. 왼쪽에 의자 놓인 1층이 바(Bar)고, 2층이 숙소다. 사진= 조해훈
오늘은 ‘폰페라다’에서 ‘카카베로스’(Cacabelos)까지 15.3km를 걸었다. 생장에서는 총 579.1km 걸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