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호의 산티아고 순례기 (10)순례길을 함께하는 자전거 순례자

오동호 승인 2018.11.26 00:02 | 최종 수정 2018.11.27 20:05 의견 0
자전거 순례
산티아고 순례길을 쉼없이 달리는 자전거 순례자.

야네스를 거쳐 도착한 히혼, 또다시 순례의 갈림길에 서다...

스페인 북쪽 해안순례길(El Norte Camino)의 끝자락에 와 있다. 아스투리아스 지역의 중심항인 히혼(Gijon)에 오면, 두 갈래의 길 중에 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갈리시아 지역의 해안순례길을 계속 걸을 것인지, 아니면 기수를 오비에도(Oviedo)로 돌려 '최초순례길(Camino Primitivo)'로 갈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난 산티아고 순례의 역사에서 산티아고만큼이나 중요한 '프리미티보 순례길'을 보기로 한다. 저녁 늦게 도착한 히혼은 밀물 때라 해안 백사장이 완전히 바닷물에 잠겨 있다. 마치 바다 속의 도시 같다.

장장 스페인 북쪽 해안순례길만 걸어온 게 22일째, 520km정도를 걸었다. 무릇 모든 해안과 항구는 낭만과 허무의 페르소나를 함께 갖고 있다.

사진1..무지개 사진
 스페인 북쪽 해안순례길의 마지막 도시 히혼의 하늘에, 순례자를 격려해주려는 듯 무지개가 떴다. 생 장에 도착한 날에도 무지개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첫 출발지 이룬은 국경선의 페르소나를, 산세바스티안과 산탄데르에서는 휴양지의 낭만을, 산티야나 델 마르와 산 빈센트 마을에서는 순례의 중세시대 흔적을 갖고 있다.

이제, 해안 순례길에 마지막 시간을 많이 보냈던 야네스(Llanes)와 히혼(Gijon)을 끝으로 바다와 이별한다.

야네스는 천연 방파제 언덕으로 둘러싸인 중세의 순례 중심도시이다. 켈트족 복장으로 각종 전통축제가 열리는 아름다운 해안마을이기도 하다. 특히 마을 골프장 언덕을 따라 도시와 바다를 한 눈에 보면서 두세 시간 걷는 순례길은 해안 순례의 백미다.

사진2..히혼의 저녁무렵 해안풍경
저녁 무렵에 도착한 히혼의 해변 풍경.
사진3..야네스의 해안절벽
천연 방파제 역할을 하는 해안절벽과 고산 사이에 자리잡은 야네스 마을풍경.
사진4..도시를 감싸고 걷는 야네스 순례길
도시를 조망하며 걷는 야네스 순례길.

히혼은 우리에게 국제영화제로 더 알려져 있다. 2017년 11월에,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김민희가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스페인 북부 대서양의 화학산업단지이고, 로마시대부터 번성한 군사와 무역의 도시이기도 하다. 지금은 세계적인 해양스포츠 메카이면서 문화예술의 도시다.

로마시대의 유적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시마비야(Cimavilla) 지역은 히혼의 심장부다. 그 때의 공중목욕탕은 뮤지엄으로 변해 있고, 해안과 접한 산페드로(San Pedro)교회의 풍광은 황홀할 정도다.

사진5.히혼의 산 페드로 교회와 해안
저녁 무렵 히혼의 해변과 산페드로교회.
사진6...히혼의 상징물 '수평선의 찬가'사진
시마비야 언덕에 있는 히혼의 상징적 작품 '수평선의 찬가'.
사진7...알제리 디하와의 망중한
알제리 출신으로 지중해 지역인 베니돔에 살고 있는 다하와의 망중한. 해안순례길의 마지막을 함께 한
순례자다.

야네스와 히혼 가는 길은 이런 풍경 말고도 좀 특별한 날이기도 하다.

야네스 가는 순례길에서는 생일을 맞이하기도 하고, 히혼은 북쪽 순례길의 종착지이기도 해서다.

하지만, 꼭 이유가 있어야 특별한 순례는 아니다. 모든 순례는 누구에게나 다 특별한 의미로 다가 온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다 소중하니까...

사진8..순례는 누구에게나 소중
순례는 누구에게나 다 특별하다.

개와 당나귀, 자전거가 함께 가는 산티아고 순례길....

옛날 순례부조그림을 보면 순례자들은 말, 소와 당나귀, 개 등과 같이 순례를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하나가 더해진다면 자전거다. 옛날에 말이 하던 역할을 지금은 자전거가 대신하는 것 같다.

사진9. 그림을 그리는 샤론
당나귀와 함께 순례하면서 5마일마다 순례그림을 그리는 캐나다 출신의 화가 샤론.
사진10.그녀의 당나귀
샤론과 그녀의 순례 동반자 당나귀.
사진11..개와 함께 그레고리
개와 함께 순례하는 독일인 그레고리. 그는 스페인보다 개에게 더 관대한 프랑스 순례길을 높게 평가한다.
사진12.손수 수레를 끌고 보르돈
수레를 끌고 순례하는 이탈리아에서 온 베르니 보르돈.

해마다 자전거 순례객이 증가하고 있고, 이들은 떼를 지어 달리는 멋진 장관을 연출하기도 한다. 한 달 걸리는 순례를 열흘이면 끝낸다. 걷는 것보다 더 많이 갈

수 있고, 더 많이 볼 수 있다는 게 최고의 장점이다.

하지만, 걸으면서 혼자 고요를 느끼고, 가면서 다른 순례자들과 얘기도 나누는 느림의 미학을 공유하지 못하는 치명적 결함은 있다.

사진 13 자전거 순례단 전형적 모습
스페인 해안 순례길을 따라 달리는 자전거 순례자의 전형적인 모습.
사진14 뱃길에 함께한 자전거 순례단
산탄데르 가는 뱃길에 함께 한 자전거 순례단.

이번 순례 중에 가장 눈여겨보는 것도 자전거 순례이다. 자전거 길이며, 숙박시설 등 자전거 순례의 수용성 문제가 늘 관심사다. 관찰 결과는 모든 게 좋은 것으로 보인다. 자전거 길도 잘 되어 있고, 지트나 알베르게 같은 순례자 숙소에는 별도의 자전거 보관소가 마련돼 있다.

특히 스페인 북쪽 해안순례길은 자전거 순례와는 아주 잘 어울린다. 한적한 해안도로를

쉼 없이 달리는 자전거행렬을 한번 상상해 보시라...

사진15..꿈의 자전거 도로
해안 순례길과 공유하는 빌바오에서 카스트로 우르디알레스 가는 길의 '꿈의 자전거 도로'.
사진16..업힐구간 달리는 자전거 순례단
힘든 업힐 구간을 오르는 자전거 순례자 ... 걷는 순례자와 서로 격려한다.

사실 나도 처음에는, 내년 봄쯤 자전거 순례를 계획했다. 생각보다 좀 일찍 순례를 해야 했기에, 겨울을 감안해서 걷는 순례로 바꿨다. 난 자전거 매니아다. 자전거 타는 것도 좋아하고, 우리나라 자전거 정책의 기틀을 만들었다고 평가도 받는다.

10여 년 전 행정안전부의 지역발전정책국장으로 부임하면서 처음 한 일이 '자전거정책과'를 만든 일이다. 지금 전 국민이 애용하고 있는 한강·낙동강·섬진강

자전거길과 동해안 자전거길, DMZ 자전거평화누리길도 그 때 기획하고 만든 길이다. 단순히 레저로서의 자전거 길이 아니라, 지역을 활성화하고 지역공동체를 살리는데 목적을 두고 추진한 길이다.

사진17..낙동강 자전거길
울산행정부시장 재임시절, 시청 자전거 동호회 회원들과 '낙동강 자전거길 종주'에 나서 한 농로구간을 달리는 필자.

자전거 길은 많은 돈을 들여 생짜배기로 길을 새로 만드는 것만은 아니다. 마을의 농로나 폐도를 잘 연결하면 좋은 자전거 길이 된다. 추억의 경춘선과 중앙선 폐철로 구간을 세계최고의 자전거 길로 복원한 북한강과 남한강 자전거길이 그와 같은 사례다.

기존의 지방도로와 공유해도 좋다. 스페인 북쪽 해안 자전거 순례길은 대다수가 지방도로와 공유한다. 처음부터 자전거를 염두에 두고 갓길을 폭넓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우리도 도입이 필요한 모범사례다.

도심 안에서는 가급적 차는 외곽순환도로로, 차량은 지하로 유도하는 교통정책도 중요하다. 주차장과 공원, 각종 공공시설의 지하는 공용주차장으로 활용하는 주차장 공유정책도 눈여겨 봐야한다.

지금 공유가 대세다. 공유는 자원의 효율적 사용이란 측면에서 탁월한 경제개념이다. 이를 잘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겠다.

야네스 가는 순례길..차도와 자전거길.순례길이공유되고 있다
야네스 가는 순례길. 차도와 자전거길, 순례길이 공유되고 있다.

 

사진19 주차장 공유
히혼의 도시 재창조지역. 옛 공장을 문화공간으로 변신시키고 지하는 공용 주차장으로 활용한다.

자전거는 진보다!

1960년대 미국의 젊은 청춘들은 반전운동의 일환으로, 자전거로 '루트66'을 따라 대륙을 횡단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세계 3대 발명품으로 종이, 컴퓨터와 함께 자전거를 들기도 한다. 오늘날 많은 환경론자들이 자전거를 앞세우고 그들의 정치적 이념을 실현시키기도 한다.

자전거를 문학과 인문학의 경지로 끌어 올린 사람도 있다. 김훈은 일찌기 "자전거 여행"의 글들을 통해, 자전거 기행의 아름다움과 묘미를 간결한 묘사로 섬뜩하게 설파한 바 있다. 그는 그의 자전거를 '풍륜(⾵輪)‘이라 명한다. LS그룹의 구자열 회장은 '보보담(步步談)'이라는 탁월한 잡지를 통해, 자전거와 걷기의 인문학을 널리 전파하고 있다.

한의사 김규만 원장과 최광철 전 원주시 부시장은 자전거로 세계를 종횡무진하면서 몇권의 책도 낸 자전거 여행가다. 모두 다 자전거 매니아이면서 자전거 인문학을 개척하고 있는 선구자들이다. 이들과 함께 전국을, 산티아고 순례길을, 세계를 자전거로 달려보고 싶다.

자전거 순례
산티아고 순례길을 쉼없이 달리는 자전거 순례자 ... 나도 언젠가는 자전거 순례를 하겠지.

아, 오늘로서 스페인 북쪽 해안순례길은 끝이다. 살랑살랑 때로는 험상궂게 불어오던 바닷바람, 끝없이 이어진 백사장,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중세시대

해안마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무엇보다 거기서 만나 동고동락했던 먼 이국의 순례자들을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먼 여정을 떠난 순례자는 막 끝낸 하나의 순례길을 뒤로한 채, 새로운 순례길을 찾아 나선다. 또다시 시작이다.

사진21 또다시 길을 나서는 순례자
또다시 순례길을 나선 필자. 그의 손엔 지도 한 장만 있다.

<전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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