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순례, 로카마듀어로 가는 길!
근 열흘간 동행했던 순례자들과 피작에서의 아쉬운 작별을 뒤로한 채, 이제는 혼자만 남았다. 식사도, 숙소예약도 스스로 해야 한다. 동료 순례자들의 도움이 다소간 홀로서기를 방해했는지도 모른다.
"이제, 다시 혼자다!"라고 외치면서 다음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힘차게 옮긴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내 발자국 소리만 들린다. 지나다 만나는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까지도 반갑다. 이들이 모여 만든 울창한 숲은 지루한 순례자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나무들이 모여 이룬 저 숲은 이처럼 아름다운데, 우리들이 함께하는 이 사회도 이처럼 아름다울까?
세 시간쯤 흘렀을까? 커피를 한 잔하기 위해 잠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중년의 프랑스 여성 애니타가 보인다. 서로 깜짝 놀란다. "아니, 순례길 카작(Carjarc)으로 간다더니 여긴 웬일이냐?" "애니타야말로 웬 일로 여기 온 거냐? 로카마듀어 간다면서?" 서로 간에 동문서답이 오간다. 사연인즉, 내가 길을 잘못 잡아, 애니타가 가는 로카마듀어 길에 들어선 것이다.
두 갈래 길 중 내가 가는 길이 당연히 산티아고 순례길인 줄 알았다. 화이 앤 레드의 GR65표지판도 보이기에 안심했으나, 결과는 완전히 다른 길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단순히 이 길이 가야할 순례길이라고 확신했다. 방향도 잘 못 잡고, 무엇보다 서쪽과 북쪽을 가늠하지 못했으니 준비와 확인이 부족했다. 나중에 찍은 사진을 확인해보니, GR65가 아닌 파생된 GR6로 나와 있다.
아, 이를 어찌할 것인가? "지금 다시 피작으로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한 참이나 지났는데 어떡하지?"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로카마듀어로 가자." 그렇게 해서 당초 계획과 달리 3박4일간의 로카마듀어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길은 아주 잘 정비되어 있다. 일대가 자연보호공원(Parcnatural des Causses du Quercy)이라 산림이 울창하고 수종도 다양하다. 처음 만난 마을부터 나를 흥분케 한다. 카르딜락(Cardaillac)이라는 중세 마을이다. 성당이며 고성이며 가옥들이 중세시대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되고 있다.
카르딜락을 지나 처음 일박한 라카펠라(Lacapelle)마을은 전형적인 산골마을이다. 거대한 곡식저장고가 있는 걸 보니 농토도 꽤 되지 않나 싶다.
둘째 날은 그하마(Gramat)로 간다. 숲 길로 들어서니 새 소리도 들린다. 한라산 국립공원 같다. 돌담길에 말 목장도 보이며, 식생, 기후, 기온이 딱 제주도의 곶자왈길이나 사려니길을 걷는
느낌이다. 늦은 오후에 도착한 그하마마을도 중후한 중세도시다. 기차도 다니고, 이 지역 농축산물의 집산지기도 해 한 3000명 정도가 거주하는 꽤 큰 마을이다.
이날은 순례자협회에서 운영하는 지트를 숙소로 정했다. 지트 운영자는 70세의 오스딸피에(자원봉사자) 도미니끄다. 은퇴 후 순례자를 돕는 일에 인생 2막을 맡긴 분이다. 그는 "현역 때는 왕성하게 활동했어요. 은퇴 후 무엇을 할까 많은 고민을 했지만, '내 마음이 가장 정갈해지는 곳이 나의 길이다'라는 생각 끝에 여기로 온 겁니다"라고 한다. 지금 10년째 오스딸피에로서 순례자를 돕고 있다고 한다.
삶의 관조가 묻어난다. 우리네 달항아리에서 나오는 은은한 향기가 있다. 때로는 풍경보다 아름다운 것이 사람인데, 도미니끄가 그렇다.
셋째 날 로카마듀어로 가는 길은 뭔가가 심상치 않다. 수목은 울창하고, 그랜드캐년 같은 깊은 골짜기로 내려가 10여km 계곡 길을 걸으니 드디어 마을이 나타난다. 마치 프랑스판 페트라의 모습이다. 완벽하게 외부와 단절되어 있는 심산유곡에 거대한 마을이 딱하니 들어서 있다. 중세시대에, 계곡의 낭떠러지 절벽에 바위를 깎아 성당과 수도원을 짓고, 주거지역도 만든 것이다. 11세기 순례의 시대가 전개되면서 수많은 순례자들이 반드시 방문하는 성지(聖地)로 발전했다.
특히 '검은 마돈나'(Black Madonna) 상을 경배코자 모든 순례자들은 216계단을 무릎을 꿇고 올랐다 한다. 지금은 마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고, 몽생 미셀에 이어 프랑스의 제2의 성지다.
뜻하지 않게 간 로카마듀어 순례길은 나에게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해준 보물이었다. 피작으로 돌아오는 길은 기차로, 카오흐로 가는 길은 버스로 환승해 갔다. 피작역에서 깊은 포옹으로 나의 긴 여정을 격려해준 애니타는 또 다른 순례길을 걷고자 홀연히 떠난다.
인생의 길에서의 선택과 삶의 우회로(遇廻路)!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이란 시가 생각난다. 어차피 길은 갈라져 있고, 우리는 그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게 인생이다. 돌이켜 보면, 나의 삶에서도 선택의 순간이 있었다. 공직의 길로 들어선지 4년이 되던 해, 독일의 하이델베르크대학으로 유학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부모님의 만류, 서울대에 이제 갓 입학한 동생 뒷바라지 등 현실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다. 어차피 길라진 길에서 우리는 한 길을 선택해야 한다. 그 결과는 철저히 자신의 몫이다. 순례길을 걷다보니 순례길에는 직진보다는 우회해서 가야만 하는 길이 많다. 직전이다 싶어 갔는데 뻘 밭이고 출구가 막혀 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빠른 것이 빠른게 아니다. 때로는 둘러 가는 것이 빠르기도 하고, 의외의 결과도 만들어낸다. 이번 순례에서 로카마듀어가는 길로 들어서서 대박을 친 것처럼 말이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두 길은 똑같이 매혹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한 길을 택해서 거의 끝까지 걸은 훗날에, 가지 않은 길이 더 좋았는지는 미지로 남을 뿐이다. 다만 두 길을 한꺼번에 갈 수 없는 한 사람의 여행자에 불과한 것, 그것이 우리의 삶이 아닐까.
<전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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