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북쪽 순례길의 출발선 엉데(프랑스)와 이룬(스페인)
또다시 순례를 시작한다. 그리운 생 장(St. Jean)을 뒤로한 채 바욘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은 크게 세 개의 길이 있다. 프랑스 생 장에서 피레네 산을 넘어가는 '프랑스 길(Camino Frances), 세비야에서 출발해 스페인 남북을 잇는 '은의 길(Via de la Plata), 이룬에서 출발해 스페인 북쪽 해안가를 따라가는 '북쪽 길 (Camino del Norte)이 그 것이다.
바욘(Bayonne)은 생 장과 이룬(Irun)으로 가기 위한 교차지로서, 산티아고 순례길의 실질적인 첫 출발지이다. 여기서 순례자 여권도 구입하고, 순례에 필요한 물품도 준비한다. 바욘은 프랑스 바스크 지방의 중심지 이기도하다. 아두르강과 니브강이 만나 대서양으로 나가는 관문으로서 영국과의 교역 중심지였단다.
도시 곳곳이 찬란한 모습이다. 바욘대성당은 13세기에서 16세기에 지어진 고딕양식으로, 높은 첨탑과 유려한 회랑으로 유명하다. 바스크 박물관도 있다.
르퓌(Le Puy) 순례길의 에오스, 오스타바트, 생 장이 프랑스 바스크 지방으로 전체의 10분의 1 정도이고, 대부분은 스페인 지역이 차지한다. 북쪽길 순례길의 초입 부분 200km가 스페인
바스크 지역인데, 산세바스티안과 빌바오 같은 세계적인 도시도 지난다. 바스크 분리운동과 게르니카 대학살의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북쪽 순례길은 국경의 도시 프랑스 엉데(Hendaye)와 스페인 이룬(Irun)에서 시작한다. 게르니카까지 5일째 120km정도 걷고 있다. 첫 날 도착한 산세바스티안은 세계적인 휴양지라는 명성답게 멋진 해변, 화려하고 고풍스런 건물과 현대적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는 품격 있는 도시다. 특히 찻 길과 분리된 자전거 길과 보행로가 잘 갖춰져 있다. 이어 도착한 싸라우츠(Zarautz), 데바(Deba)는 아름다운 해안마을로 지질공원과 함께 유명한 식당이 많고, 쑤마이아(Zumaia)는 와인병을 높게 들어 따르는 '짜콜라'로 이름난 곳이다.
걸으면서 보는 대서양의 낙조, 해안마을의 붉은 지붕들, 푸른 하늘과 맞닿은 싱그러운 바다... 이것이 북쪽길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산과 들을 지나는 프랑스 르퓌 길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다만 해안지역이라 비바람이 심하고, 우리의 동해안이 그렇듯 한 마을에서 다음 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큰 산을 몇 번이나 넘어야 한다.
오르고 내리기가 여간 쉽지가 않다. 산이 깊기에 골이 깊은 것이다. 어떤 이는, 고난의 여정으로 상징되는 북쪽 순례의 묘미가 다른 순례길보다 오히려 더 있단다.
다시, 첫 출발지인 엉데(Hendaye)와 이룬(Irun)으로 가보자. 두 도시는 강하구에 나란히 자리잡은 프랑스와 스페인의 해안도시다. 국경선은 다리다. 두 도시 간에는 차량과 기차는 물론이고 모든 게 자유롭게 넘나드는 동일 생활권이다. 두 도시를 연결하는 협객열차가 있는데, 5~10분 정도 걸리는 짧은 거리를 운행하고 있다.
사실 우리에게는 국경선이 낯설다. 국경선이 아예 없다. 남북 간에 그어진 휴전선과 군사분계선만 있을 뿐이다. 정치적인 얘기를 떠나 애기해 보자. 지난 4월 남북한 두 정상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오가는 장면은 외신이 뽑은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나는 도보다리에서 양 정상의 대화장면을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고 싶다. 사실 어떤 영화보다도 감동적이었다.
한 젊은 기자(이데일리 김영환)는 이렇게 묘사했다. "새소리가 그득했지만 실제로는 무성영화였다. 김 위원장의 표정에 오롯이 의지해 대화 내용을 추론해야 했다. 환담이었을까, 대담이었을까, 소통이었을까. 노신사의 손짓과 젊은이의 표정, 그리고 새소리로 구성된 30분의 불친절한 영화. 여기에 한반도의 미래가 담겼다. 처음보는 호기심과 경외, 몸을 가만히 둘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우리에게 휴전선은 무엇이고, 군사분계선은 무엇이란 말인가... 언제 그 선을 지울 수 있을까...
갑자기 티시 히노호사(Tish Hinojosa)의 노래 "Donde Voy"가 듣고 싶다.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로 가야 하나. 희망을 찾아 헤매고 있어요~~"
다시 순례를 나서면서 생각해 본다. 우리는 진정 어디로 가는 걸까...
<전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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