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의 버림을 받은 외로운 몸이(찾아오는 손님을 쫓고) 쑥대로 엮은 디새집에 은거(隱居)하여, 우리 유학(儒學)의 선비와는 사귀어 즐기되, 그 밖의 사람들과는 사귀어 놀지 않노라. 외람되이 천고(千古)의 성현(聖賢)들과 더불어 오경(五經)의 뜻이 같고 다름을 의론하되, 허투로 두서너 소인들과 더불어 자연의 변화를 쫒아 산기슭에 마구 산책하지 않노라. 날로 어부와 농부와 더불어 오호(五湖)의 물가나 푸른 들 가운데서 시를 읊조리고 노래로 화답하되, 날로 한 점 이익을 다투고 한 말(斗) 지위를 영화로 여기는 자와는 염량(炎凉)을 헤아릴 길 없고 날고기에 파리떼가 날아드는 소굴에서 사귀지 않노라. 간혹 염락(濂洛)의 학설을 배우러 오는 자가 있으면 이를 가르쳐 주고, 불교 공부를 하는 자가 있으면 그 몽매(蒙昧)함을 깨우쳐 주되, 함부로 하늘의 모습을 말하고 용을 아로새기는 변론가는 멀리 하였으니, 이렇게 함으로써 족히 내 산중 생활의 기량(技倆)을 다해 왔음이라.
- 逐客孤踪(축객고종) : 손님을 쫓아내고 홀로 걸음. 홀로 자신의 길을 감을 강조함. 踪은 蹤과 동자(同字)로 ‘발자취’ 라는 뜻이다.
- * 逐客을 ‘쫓겨난 나그네’ 로 조정에서 쫓겨난 우공겸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다. 우공겸은 명나라 신종(神宗) 만력(萬曆) 연간에 급제하여 벼슬을 지내다가 조정의 실정을 논하는 상소를 올렸으며 급기야 신종의 미움을 받아 조정에서 쫓겨나 초야에 은거하게 되었던 것이다. 번역문에서 ‘임금의 버림을 받은 외로운 몸이’ 라고 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 屛居蓬舍(병거봉사) : 띠집에 은거하며. 屛居는 隱居(은거), 屛은 ‘退(퇴) 물러나다’ 의 뜻이다. 蓬舍는 ‘쑥대로 엮은 집’ 이니 그냥 ‘초가(草家)-디새집’ 이라 하면 좋을 것이다.
- 方以內人(방이내인) / 方以外人(방이외인) : 같은 범주(세계)에 속하는 사람 / 다른 범주(세계)에 속하는 사람.
- * 여기서 方은 ‘정해진 틀, 테두리, 권역(圈域) / category, boundary’ 을 의미하나 ‘구속’ 의 뜻은 없으며, 사고나 가치가 같은 부류와 다른 부류를 지칭하는 말이다. 즉 자신과 같은 유학자(儒學者)들을 가리켜 方以內人이라 하며 불교(佛敎)를 비롯한 이교도(異敎徒)들을 方以外人이라 칭한 것이다.
- * 일반적으로 ‘方外之士(방외지사)’ 라 하면, ‘세속의 틀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 을 뜻하는 말로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 不羈人(불기인)’ 과 통하는 말이다.
- 妄(망) ~ / 不忘(불망) ~ : ‘망령되이 ~하다 / 망령되이 ~하지는 않다’ 는 대구 형식이다. 그런데 여기서 妄은 겸손(謙遜)의 어사(語辭)로 ‘외람(猥濫)되이 / 함부로’ 의 뜻으로 해석함이 좋겠다.
- 置辯(치변) : 분변(分辨)을 두다, 즉 ‘서로 따져 맞고 틀림을 말하는 것’ 을 뜻함.
- 五經(오경) : 유교의 5가지 경서. 공자(孔子)가 편찬 및 저술에 관계했다고 하여 존중되는 경서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으로서, 일반적으로『역경(易經)』『서경(書經)』『시경(詩經)』『예기(禮記)』『춘추(春秋)』를 가리킨다.
- 浪跡于雲山(낭적우운산) : 구름 덮인 산을 함부로 돌아다님. 浪跡은 ‘발자국을 흘리다’ 즉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의 뜻이다.
- 變幻之麓(변환지록) : (앞에서 말한 구름과 산이) 자주 그 모습이 바뀌는 산기슭. 麓은 ‘산기슭, 숲(園林)’ 을 뜻함.
- 朗吟唱和(낭음창화) : 낭랑하게 읊조리며 부드럽게 노래함.
- 五湖之濱(오호지빈) : 오호의 물가에서. 濱은 ‘물가, 水邊(수변)’.
- * 五胡는 중국의 아름다운 다섯 호수로 파양호(鄱陽湖), 단양호(丹陽湖), 청초호(靑草湖), 동정호(洞庭湖), 태호(太湖)를 가리킴. * 후집 제11장 참조
- 綠野之坳(록야지요) : 푸른 들판의 우묵한 곳. 坳는 ‘팬 곳, 우묵한 곳’ 을 뜻한다. 즉 분지형(盆地形)을 말한다.
- 競刀錐(경도추) : 칼과 송곳을 다툼. 즉 칼날 끝이나 송곳 끝과 같은 작은 이익을 다투는 사람을 지칭함.
- 榮升斗(영승두) : 한 되(升)나 한 말(斗)의 작은 분량을 경영함. 즉 고작 한 말지기의 녹봉을 받는 작은 벼슬로 그 인물(그릇)의 크기가 아주 협량(狹量)한 자를 가리킴.
- 交臂抒情(교비서정) : 서로 정감을 나누며 교유함. 交臂는 ‘친밀한 정을 표하여 서로 손을 맞잡는 것’ 을 뜻하는 말이다.
- 冷熱之場(냉렬지장) : 죽 끓듯 변하는 인정(人情)의 세계.
- 腥羶之窟(성전지굴) : 더럽고 비린내 나는 소굴. 腥은 ‘생선의 비린내’ 이고, 羶은 ‘육고기의 누린내’ 이다.
- 濂洛之說(염락지설) : 濂은 주렴계(周敦頤 1017~1073)를 말하며, 洛은 낙양(洛陽)의 정명도(程顥 1032~1085)와 정이천(程頤 1033~1107)을 가리킨다. 이들은 송대(宋代)의 뛰어난 유학자들로, 소강절(邵雍 1011~1077), 장횡거(張載 1020~1077)와 함께 이른바 주자(朱熹 1130~1200) 이전의 다섯 선생에 해당하니, ‘濂洛之說’ 은 곧 송대의 유학, ‘성리학(性理學)’을 의미한다.
- 牧之(목지) : 이끌어 주다. 之는 대명사로 앞에서 말한 ‘濂洛之說을 배우고자 하는 자’ 를 가리킨다.
- 竺乾之業(축건지업) : 竺乾은 불교(佛敎)를 말하니, ‘불교의 교리’ 를 배우고자 하는 자를 말한다.
- 闢之(벽지) : 깨우쳐 열어 주다. 불교 교리의 잘못된 점을 일러 깨우쳐 준다는 뜻이다. 즉 불교에 미혹(迷惑)된 몽매(蒙昧)함을 깨우쳐 환한 이치를 깨닫게 해준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之는 대명사로 앞에서 말한 ‘竺乾之業을 배우고자 하는 자’ 를 가리킨다.
- 爲譚天雕龍之辯者(위담천조룡지변자) : ‘譚天雕龍의 辯’ 을 말하는 자, ‘譚天雕龍하는 말’ 을 입에 올리는 자. 여기서 爲는 ‘말하다’ 의 뜻으로 ‘謂(말할 위)’ 와 같은 의미이다.
- 譚天雕龍(담천조룡) : ‘하늘을 이야기하고 용을 아로새긴다’ 는 뜻으로, 전(轉)하여 ‘굉장한 수식어로 번지러한 공리공론(空理空論)을 일삼는 것’ 을 말한다.
- 山中之伎倆(산중지기량) : 산중 생활의 기량.
- * 伎倆은 ‘재주와 능력’ 이라는 뜻이나, 여기서는 ‘세상에서 물러나 은일(隱逸)하는 자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자기 원칙을 다해 왔음(畢)을 자부하는 의미’ 로 해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 畢(필) : 다하다, 마치다, 끝내다.
위 문장은 서문을 쓰고 있는 우공겸 자신이 벼슬에서 물러나 은거하고 있는 저간(這間)의 입장을 밝힌 부분에 해당하는데, 몇 개의 대구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樂與~游 / 不樂與~游> <妄與~置辯於~ / 不妄與~浪跡于~> <日與~朗吟唱和於~ / 不日與~交臂抒情於~> 의 대구 형식을 제대로 파악해야 문장의 진의(眞意)를 이해할 수 있다.
마침 나의 벗 중에 홍자성(洪自誠)이란 이가 있어, 이 채근담(菜根譚)을 갖고 와서 나에게 보이면서 그 서문(序文)까지 부탁하는지라, 처음에는 대단찮게 여겨 이를 건성으로 보았을 뿐이었는데, 이윽고 책상 위의 묵은 책들을 치우고 가슴 속 잡념을 없앤 뒤에 손수 이를 읽어보니, 그 성명(性命)을 논함에 현묘(玄妙)한 경지에 이르렀으며, 인정(人情)을 말함에 그 곡진(曲盡)함을 다하였음을 즉각 깨달았으며,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굽어봄에 가슴이 유연(悠然)함을 깨닫고, 속세의 공명(功名)이 티끌과 같아져, 그의 식견과 취미가 사뭇 고매(高邁)함을 알겠도다. 문장의 필치는 녹수청산(綠水靑山) 아닌 바가 없고 입에서 나오는 말마다 연비어약(鳶飛魚躍)의 경지로다. 그가 자득(自得)한 경지가 과연 어떠한지 내 깊이 알지 못하나, 그 말한 바를 살펴보면 모두 세상에 약이 되고 사람을 일깨우는 요긴(要緊)한 것들로 다만 귀로 들어 입으로 말하는 부화(浮華)한 것이 아니로다.
- 適(적) : 마침, 은연중(隱然中)에.
- 丐(개) : 빌다, 요청하다.
- 訑訑然(이이연) :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모양. 訑는 ‘으쓱거리다’ 의 뜻으로 ‘스스로 만족하여 남의 말을 듣지 않는 모양’ 을 뜻한다.
- 시(시) : 視의 옛글자(古字). 시(目+示)
- 旣而(기이) : 이윽고, 시간이 조금 지나서.
- 撤(철) : 치우다, 물리치다, 철거(撤去)하다.
- 陳編(진편) : 옛 책, 고서(古書). 陳은 원래 ‘늘어놓다’ 의 뜻이나 ‘오래되다, 묵다’ 의 뜻도 있다. 陳年茶(진년차 - 묵은 차).
- 屛(병) : 여기서는 ‘가리어 막다’ 의 뜻으로 쓰인 것이다.
- 襍慮(잡려) : 雜念(잡념). 襍은 雜과 같은 글자이다.
- 手(수) : 손수, 스스로.
- 談(담) / 道(도) : 둘 다 ‘말하다, 이야기하다’ 의 뜻이다.
- 巖險(암험) : 바위가 울퉁불퉁함. 즉 ‘사물의 구석구석에 빠짐없이 미침’ 을 뜻함.
- 胸次(흉차) : 가슴속(胸中). 次는 中과 같은 뜻으로 쓰인 것임.
- 夷猶(이유) : 유연(悠然)한 모양, 즉 한가하고 평화로움. 夷는 平, 猶는 悠와 같은 뜻임.
- 筆底(필저) : 붓이 이르는 곳, 즉 ‘붓을 들어 문장을 이룸’ 을 뜻하는 말이다.
- 陶鑄(도주) : 陶는 ‘질그릇을 굽는 것’, 鑄는 ‘쇳물을 틀에 부어 그릇을 만드는 것’ 으로 합하여 ‘어떤 물건을 만들어 완성하는 것’ 을 뜻한다.
- 筆底陶鑄(필저도주) : 문장을 이루는 솜씨나 문체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 化工(화공) : 조화(造化)와 공교(工巧)함.
- 無非(무비) ~ / 盡是(진시) ~ : ~가 아님이 없다 / 모두 ~이다. 盡은 ‘모두, 모조리’ 의 뜻이다.
- 口吻(구문) : 입과 입술, 곧 ‘입에서 나오는 말’ 을 뜻함.
- 鳶飛魚躍(연비어약) :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는’ 경지로, 천지만물이 모두 본성에 맞게 자적(自適)하는 형상을 말한다. 출전(出典)은 『시경(詩經)』 대아편(大雅篇)이다.
- *『채근담』에는 鳶飛魚躍(연비어약) 또는 魚躍鳶飛(어약연비)의 경계(境界)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있다. 전집 제22장, 후집 제66장 참조
- 塵芥(진개) : 먼지(티끌). 芥는 ‘겨자’ 를 말하나 겨자씨가 아주 작아 ‘보잘 것 없는 존재’ 로 비유되어 ‘티끌’ 이라는 뜻도 있다.
- 固(고) : 진실로, 참으로. ‘오로지’ 의 뜻도 있음.
- 擒詞(금사) : 말을 잡음, 곧 ‘말한 것’. 擒은 ‘사로잡다, 생포(生捕)하다’.
- 砭(폄) : 砭은 ‘石鍼(돌로만든 침)’ 으로 병을 고치는 수단, 즉 ‘사람의 성품과 행위를 바로잡아 준다’ 는 의미이다.
- 醒(성) : 깨닫다, 깨우치다. 醒은 원래 ‘술 깰 성’ 자(字)이나 비유적으로 ‘깨닫다, 깨우치다’ 의 뜻으로 惺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 喫緊(끽긴) : 아주 긴요(緊要)함. 이때 喫은 ‘매우 大’ 의 뜻으로 쓰인 것이다.
- 浮華(부화) : 허황하게 화려하기만 한 것.
위 문장은 상당히 긴 장문이다. 말하자면 卽覺(즉시 깨달았다)의 목적어는 최소한으로는 其談性命 ~ 曲盡巖險 까지요, 길게는 그 다음 문장인 俯仰天地 ~ 知識趣之高遠까지 더 나아가 그 다음 문장인 筆底陶鑄 ~ 盡是鳶飛魚躍까지로도 볼 수 있다. (此其自得如何 이하의 문장까지 모두 목적어로 보는 것은 다소 무리이다. ‘그가 도달한 경지를 내가 깊이 알지(믿지) 못한다’ 고 말하면서 이미 논점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앞 문장까지는 모두 卽覺의 목적어절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우공겸은 이 대목에서, 채근담에서 홍자성이 말한 내용들이 세상에 떠도는 듣기 좋은 말들을 모아놓은 잠언집이 아니라 진실로 자신의 체험에서 우러난 일상생활에서 비롯한 말들로 실로 세상에 교훈이 되고 각 개인을 깨우치는 ‘경세(警世)의 잠언(箴言)’ 임을 천명(闡明)하고 있다.
당대(當代)의 명사(名士) 거유(巨儒)였던 우공겸에 비해 저자 홍자성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한미(寒微)한 선비였다. 그러나 우공겸은 ‘그가 자득(自得)한 경지가 과연 어떠한지 내 깊이 알지 못하나 그 말한 바를 살펴보면’ 이라고 말함으로써 이 추천사가 세상에 흔한 ‘주례사 비평’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사실을 엄정하게 따져 말하는 ‘정론 비평’ 임을 밝히고 있다.
이 글을 채근담(菜根譚)으로 이름 지은 것은 진실로 그가 청고(淸苦)하게 단련한 가운데서 나온 것이고, 또한 스스로 물 주고 가꾸는 일상(日常) 속에서 얻어진 것으로 그가 세상의 풍파에 얼마나 시달리고 험난함을 맛보았는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그가 일찍이 말하기를 ‘하늘이 내 몸을 수고롭게 하면 나는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이를 보충하고, 하늘이 내 처지를 곤궁하게 하면 나는 내 도를 높여 이를 트이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그가 얼마나 자신을 경계하며 스스로 노력하였는가를 가히 알 수 있다. 이러한 까닭에 몇 마디 말로써 이를 변호하여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채근담(菜根譚) 중에 참된 맛 - 인생의 참된 의미가 있음을 널리 알게 하고자 하노라.
삼봉주인 우공겸이 쓰다.
- 固(고) : 진실로, 참으로.
- 自(자) : ~로부터. 영어의 전치사 form 에 해당함.
- 淸苦(청고) : 맑은 지조(志操)로 어려움을 견딤.
- 歷練(역련) : 단련을 거침, 겪고 단련함.
- 顚頓(전돈) : 넘어져 뒤집힘.
- 備嘗(비상) : 모두 맛봄, 즉 인생의 쓴맛 단맛을 빠짐없이 겪음.
- 由是(유시) : 이에 따라, 이로 말미암아. ‘이러한 연유(緣由)로’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좋다.
- 俾(비) ~ 知(지) : ~로 하여금 알게 하다. 俾는 ‘使(시키다)’ 의 뜻이다.
- 公(공) : 널리.
- 眞味(진미) : 참맛, 참된 의미.
제사(題詞) 중에서 우공겸이 인용한 홍자성의 말은 전집 제90장에 그대로 나온다. 다만 홍자성의 본문에는 <吾高吾道 - 나는 내 도를 높여> 가 <吾亨吾道 - 나는 내 도를 형통케 하여> 로 달리 되어 있다.
이는 아마 홍자성이 직접 필사(筆寫)하여 우공겸에게 감수를 부탁한 원고, 즉 감수본(監修本)의 본문 글자인 亨을 우공겸이 高로 잘못 읽은 듯하다. 두 글자는 초서(草書)의 흘려 쓴 글자꼴(字形)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물론 亨보다는 亭이 高와 더욱 흡사하다.)
우공겸이 이러한 실수 아닌 실수를 범한 까닭은 앞에 나온 문장과 대구를 생각하여 逸에 대응하는 글자로 高를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逸은 ‘편안하다’ 의 뜻 이외에도 ‘높다’ 의 뜻도 있다. 그러나 逸은 앞에 나온 ‘수고로울 勞’ 와 대를 이루는 것으로 당연히 ‘편안하다’ 의 뜻이며, ‘막힐 阨’ 과 대구를 이루는 글자는 마땅히 ‘형통할 亨’ 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전집 제90장은 일종의 자서(自誓-자신에게 하는 맹서)로서 자신의 인생관을 요약하여 제시한 것으로 그의 이러한 면모는 ‘스스로 최선을 다한다’ 는 그의 호 ‘自誠(자성)’ 속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또 하나 홍자성의 인생관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것으로 나는 전집 제42장이라 생각한다. 전집 제42장을 찾아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추천사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우공겸은 친구 홍자성의 인물됨을 그의 처세관에 해당하는 『채근담』 <전집 제90장> 을 통해 밝히면서 채근담의 참된 맛이 어디에 있는지를 독자들에게 알려주며 이 책 읽기를 권하고 있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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