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34) 독선(獨善)과 아만(我慢)이 내 마음을 해치고 도를 막는 장애물이다
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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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2 18:57 | 최종 수정 2021.02.04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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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 - 독선(獨善)과 아만(我慢)이 내 마음을 해치고 도를 막는 장애물이다
이욕이 모두 마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독단적인 생각(獨善독선)이 바로 마음을 해치는 해충이요
소리(音樂음악)와 색깔(女色여색)이 반드시 도를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총명함이 바로 도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 利欲(이욕) : 이권, 이익에 대한 욕망.
- 未盡(미진) : 모두 ~한 것은 아니다, 전부는 아니다. * ‘ ~하기에 부족하다’.
- * 아래의 未必과 마찬가지로 부분부정에 해당한다.
- 意見(의견) : 독단(獨斷)적인 생각. 정견(正見)이 아닌 사견(邪見)이나 아견(我見, 我執).
- * ‘항상 자신만이 옳다’ 고 생각하는 ‘독선(獨善)’ 으로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
- 乃(내) : 이에 내. 바로 ~이다.
- 蟊賊(모적) : 해충(해충). 蟊는 蝥(해충 모)와 同字로 蟊는 뿌리를 파먹는 벌레요, 賊은 줄기(마디)를 갉아먹는 해충을 뜻한다.
- 聲色(성색) : 아름다운 소리와 고운 빛깔. 애정, 사랑에 대한 욕망을 뜻함. ‘음탕함’ 으로 옮겨도 좋을 것이다.
- 未必(미필) : 반드시(꼭) ~한 것은 아니다.
- 聰明(총명) : 말 그대로 ‘총명함, 똑똑함’ 이다.
- * 원래 聰은 ‘귀가 밝은 것’ 이고 明은 ‘눈이 밝은 것’ 이니, ‘사물을 똑바로 보고 남의 말을 잘 알아듣는 것’ 을 뜻한다. 위 문장에서 말한 총명이란 ‘내가 제일 많이 알고 똑똑하다’ 고 생각하는 ‘아만(我慢)’ 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총명이 도의 걸림돌이라 말한 것이다.
- 藩屛(번병) : 담장, 울타리, 가로막는 장애물. 藩은 덮다, 바자울타리.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은 글
▶불교에서 말하는 아만(我慢)이란
아만(我慢) : 자신을 스스로 높은 양으로 믿고 잘난 체 하는 것. 즉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갖는 것.
언제가 읽은 부처님 말씀 중에, 아만이 강하여 남을 업신여긴 죄업을 지은 사람은 내세에 난장이로 태어난다는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다. 내 개인의 경험으로 보아도 ‘겸손한 난쟁이’ 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신체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누구 앞에서도 당당한 그들의 모습에 감동한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그것이 전생의 버릇 - 습(習) 때문이라 생각하니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차라리 부처님 말씀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었다. 이처럼 남을 업신여기는 죄가 얼마나 큰 것인지 …
불교에서는 흔히 사만(四慢 - 네 가지 교만한 마음이 있다고 하니, 다음이 바로 그것이다.
사만(四慢) - 4가지 교만한 마음
(1) 증상만(增上慢) : 최상의 교법과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서 이미 얻은 것처럼 교만하게 우쭐대는 일
(2) 비하만(卑下慢) : 남보다 훨씬 못한 것을 자기는 조금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
(3) 아만(我慢) : 스스로를 높여서 잘난 체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4) 사만(邪慢) : 덕이 없는 사람이, 덕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다르다 / 틀리다> 를 혼동하는 우리들의 언어장애
우리는 일상의 언어생활 속에서 ‘다르다’ 와 ‘틀리다’ 를 혼동해서 쓰는 경우가 많다.
- 그 사람은 나하고 생각이 틀린 것 같아. ( × 틀린→다른 )
- 그 사람은 생각이 틀려먹었어. 도대체 매사 하는 일이 옳지 않아! ( ○ )
‘틀리다’ 는 ‘맞다’ 의 상대어로 ‘맞지 않다’ ‘옳지 않다’ 의 의미로 한자로는 ‘옳을 是’ 에 대하여 ‘아닐 非’ 에 해당한다. ‘다르다’ 는 ‘같다’ 의 상대어로 ‘같지 않다’ 의 의미로 한자로는 ‘같을 同’ 에 대하여 ‘다를 異’ 에 해당한다.
이처럼 그 의미가 완전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두 말을 혼동하는 것일까? 이 두 말을 혼동하는 잠재의식의 기저(基底)에는 ‘항시 나만 옳다’ 는 독선(獨善)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항시 ‘내가 옳다’ 고 생각하고 있으니, 단지 나와 다를 뿐인데도 불구하고 나와 다른 것은 당연히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독선은 자기중심주의나 이기주의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자기중심주의나 이기주의는 그나마 자신을 되돌아볼 여지가 있지만 독선주의는 자기 자신에 대한 회의(懷疑)나 반성(反省)을 절대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독선은 자기 자신과 세상의 교통(交通)을 가로막는 철조망 같은 것이다. 독선의 철조망은 결국 자신의 몸을 파고들 것이니 그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독선의 비극이다.
관용(寬容) 이란, 나와 다른 것들에 대해 너그럽게 대하는 것이다. 즉 ‘다름의 가치’ 를 서로 인정하는 것이 바로 ‘똘레랑스(tolerance)’ 의 정신이다. 『논어』에서 공자가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 하지만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하다’ 고 말씀하신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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