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64) 명리(名利)의 뿌리를 뽑지 못하고 쓸데없는 객기(客氣)를 다 녹이지 못하면 …

허섭 승인 2021.03.04 18:27 | 최종 수정 2021.03.06 18:59 의견 0
겸재(謙齋) 정선(鄭敾 조선 1676~1759) -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79.2×138.2), 리움미술관

064 - 명리(名利)의 뿌리를 뽑지 못하고 쓸데없는 객기(客氣)를 다 녹이지 못하면 … 

명리의 뿌리를 뽑지 못한 사람은
설령 천승(千乘)의 부귀를 가벼이 여기고 한 바가지의 물을 달게 여길지라도
실은 속세의 욕망에 떨어진 것이요.

헛된 기운을 다 녹이지 못한 사람은
비록 은택(恩澤)을 천하에 베풀고 이익을 만세에 끼칠지라도
결국 쓸모없는 재주가 될 것이다.

  • 名根(명근) : 명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마음
  • 拔(발) : 뽑다.  力拔山氣蓋世(역발산기개세) 할 때의 拔이다.
  • 縱(종) : 비록.  원래 ‘늘어나다, 느슨하다 / 풀어 놓다’ 의 뜻이나 때로는 문장부사로 ‘가령, 설령’ 의 뜻으로도 쓰인다.   放縱(방종)
  • 千乘(천승) : 병거(兵車) 천 대를 거느린 제후(諸侯)의 지위.  본문 번역에서는 지위보다는 부귀로 번역하였다. 
  •   * 천자(天子)는 萬乘, 제후(諸侯)는 千乘, 대부(大夫)는 百乘을 거느림.
  • 一瓢(일표) : 한 바가지의 물, 곧 청빈한 삶.  
  •   * 『논어(論語)』에 나오는 ‘一簞食一瓢飮(일단사일표음 - 한 덩이의 찬밥을 먹고 한 표주박의 물을 마심)’ 에서 유래한 말이다. 줄여 ‘簞食瓢飮, 簞瓢’ 라고도 한다.
  • 總(총) : 전부, 모두.
  • 塵情(진정) : 세속적인 욕망.
  • 客氣(객기) : 쓸데없는 용기, 객쩍은 기개.
  • 融(융) : 녹이다.  여기서는 ‘녹여 없애다’ 의 뜻.
  • 澤(택) : 은택(恩澤), 혜택(惠澤).
  • 終(종) : 끝내, 결국에는.
  • 剩技(잉기) : 쓸데없는 재주
064 고상(高翔 청 1688~1753) 수선도(水仙圖) 23.3+24.1 여순(旅順)박물관
고상(高翔, 청, 1688~1753) - 수선도(水仙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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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가 제자 안티스테네스에게 한 말.

소크라테스의 제자 중에는 후일 견유학파(犬儒學派)의 비조(鼻祖)가 된 안티스테네스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일부러 구멍 뚫린 누더기를 걸치고 다녔는데, 어느날 소크라테스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네의 그 옷 구멍 속에 자네의 감출 수 없는 명예욕이 보이네그려!’

  • 안티스테네스 (Antisthenēs BC445?~BC365?) : 

그리스의 철학자, 키니코스학파의 창시자.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되어 그의 실질강건(實質剛健)한 실천면을 찬미·계승한 금욕주의자였다. 세상의 욕심을 떠난 덕(德)만이 최상의 것이며, 쾌락은 기만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아테네 출생. 고르기아스에게서 변론술을 배우고, 뒤에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되어 그의 실질강건(實質剛健)한 실천면을 찬미 · 계승한 금욕주의자(禁慾主義者)가 되었다. 그는 아테네 근교의 퀴노사르게스의 체육장에서 문답을 하였다고 전해지며, 스토아학파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학설의 요점은 세상의 욕심을 떠난 덕(德)만이 최상의 것이며, 쾌락은 기만적인 것이어서 노력의 결과에 의한 쾌락이 아니면 영속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정신적 · 육체적 단련을 중히 여기고, 소크라테스의 ‘강함’ 을 존중하였다. 곧, ‘현명한 사람은 덕을 따르고, 자족(自足)할 수 있다’ 고 주장하였다. 또, ‘a는 a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고 주장하여 사물의 정의(定義)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허위나 반론(反論)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의 제자 중에는 시노페의 디오게네스가 있다. 

▶한국의 고승들은 왜 그리 화를 자주 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 선불교에서는 해마다 무차대회(無遮大會)를 여는데 남방불교의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스님들도 참가하는데, 이 대회를 마치고 떠나는 그들에게 한국의 선승들이 어떠하시냐고 물었더니, 그들의 대답이 한결같이 이러하였다 한다.

‘한국의 큰스님들은 왜 그리 자주 화를 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비록 에둘러 표현한 것이지만, 이 땅의 고승들이 아직 명예욕을 버리지 못해 쓸데없는 권위에 사로잡혀 있음을 꼬집어 지적한 것이다.

채근담의 이 장은 색욕(色慾)이나 물욕(物慾)보다도 그만큼 권력욕이나 명예욕의 뿌리가 더 깊음을 일깨우고 있음이다.

  • 무차대회(無遮大會) : 승속(僧俗)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참여하여 공양하고 베풀고, 설법을 듣고 서로 질문하여 배우는 모임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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