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 - 맑은 못의 달 그림자를 보며 깊은 밤 먼 종소리를 듣다
고요한 밤 종소리를 듣고 꿈 속의 꿈을 불러 깨우고
맑은 못의 달 그림자를 보고 몸 밖의 몸을 엿보는도다.
- 靜夜(정야) : 고요한 밤.
- 喚醒(환성) : 불러서 깨움. 醒은 ‘(술이나 잠이) 깨다, 깨닫다’ 의 뜻.
- 夢中之夢(몽중지몽) : 꿈 속의 꿈.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나오는 꿈 이야기.
- 澄潭(징담) : 맑은 연못. 澄은 ‘맑다’.
- 月影(월영) : 달 그림자.
- 窺見(규견) : 엿보다. 窺는 ‘엿보다’. 闚도 같은 뜻이다.
- 身外之身(신외지신) : 몸 밖의 몸. ‘우주의 본체와 하나가 되는 나의 몸’ 을 뜻함.
* 힌두교에서는 ‘사람의 영혼(아트만 Atman)' 이 구원받을 때에 '우주의 영혼(브라만 Brahman)' 과 하나가 된다고 생각한다.
* 전집 제1장에 나온 ‘身後之身-몸 뒤의 몸’ 과 비교해 보자.
◈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夢飮酒者(몽음주자) 旦而哭泣(단이곡읍), 夢哭泣者(몽곡읍자) 旦而田獵(단이전렵). 方其夢也(방기몽야) 不知其夢也(부지기몽야) 夢之中又占其夢焉(몽지중우점기몽언). 覺而後知其夢也(각이후지기몽야) 且有大覺而後知此其大夢也(차유대각이후지차기대몽야).
- 꿈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이 아침에 깨어나 펑펑 울기도 하고, 꿈에서 펑펑 울던 사람이 아침에 깨어나 사냥하러 가기도 한다. 꿈을 꿀 때는 그것이 꿈인지 모르고, 꿈속에서 그 꿈을 점치기(해몽하기)도 하다가 깨고 난 후 비로소 그것이 꿈인 줄 안다. 대저 크게 깨달음(눈 뜸)을 얻고 난 후에야 그것(우리네 인생)이 한바탕 큰 꿈이었음을 안다.
◈ 이백(李白)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에
夫天地者(부천지자) 萬物之逆旅(만물지역려) 光陰者(광음자) 百代之過客(백대지과객), 而浮生若夢(이부생약몽) 爲歡幾何(위환기하). 古人秉燭夜遊(고인병촉야유) 良有以也(양유이야).
- 무릇 천지는 만물의 여숙이요, 세월이란 백대의 과객이니, 부평초 같은 우리네 인생은 꿈과 같아 그 기쁨이 또한 얼마인가? 옛사람들이 촛불을 부여잡고 밤새도록 놀았다는 것이 다 까닭 있는 일이로고.
春夜宴桃李園序(춘야연도리원서)
李 白 (이 백)
夫天地者(부천지자)는 萬物之逆旅(만물지역려)요
光陰者(광음자)는 百代之過客(백대지과객)이라
而浮生(이부생)이 若夢(약몽)하니 爲歡(위환)이 幾何(기하)오
古人秉燭夜遊(고인병촉야유)가 良有以也(양유이야)로다
무릇 천지는 만물의 여숙이요, 세월이란 백대의 과객이니
부평초 같은 우리네 인생은 꿈과 같아 그 기쁨이 또한 얼마인가 ?
옛사람들이 촛불을 부여잡고 밤새도록 놀았다는 것이 다 까닭 있는 일이로고
況(황) 陽春(양춘)이 召我以煙景(소아이연경)하고
大塊(대괴)가 假我以文章(가아이문장)이라
會桃李之芳園(회도리지방원)하야 序天倫之樂事(서천륜지낙사)하니
郡季俊秀(군계준수)는 皆爲惠連(개위혜련)이어늘
吾人詠歌(오인영가)는 獨慚康樂(독참강락)가
하물며 따스한 햇살이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풍광 속으로 나를 불러들이고
이 땅은 나에게 문장이라는 것을 잠시 빌려주었나니
북숭아꽃 살구꽃 흐드러지게 핀 봄동산에 모여 천륜의 즐거움을 펼쳐나봄세
훌륭하고 뛰어난 족하들은 모두가 혜련이건만
어찌하여 나의 노래만 유독 강락을 부끄러워하는가
幽賞(유상)이 未已(미이)에 高談(고담)이 轉淸(전청)이라
開瓊筵以坐花(개하연이좌화)하고 飛羽觴而醉月(비우상이취월)하노니
不有佳作(불유가작)이면 何伸雅懷(하신아회)리오
如詩不成(여시불성)이면 罰依金谷酒數(벌의금곡주수)하리라
내 미처 완상을 끝내기도 전에 고담준론은 티없이 맑아
옥 같은 자리 깔아 꽃그늘에 앉아 술잔을 허공에 날려 달을 취하게 하려네
오늘, 아름다운 작품을 남기지 못한다면 어찌 이 밤의 정취를 다 펼칠 수 있으리
만일 시를 이루지 못한다면 그 벌은 마땅히 금곡의 전례를 따르리라
- 良有以也 : 良은 ‘진실로, 참으로’ 以는 ‘까닭, 이유’
- 惠連 : 시인 사혜련(謝惠連 397~433). 사강락(謝康樂)의 족제(族弟)로 열 살 때 벌써 시를 잘 지었다고 하며, 사강락은 그와 함께 시를 지으면 좋은 시구가 잘 떠올라 특히 그를 아끼고 사랑하였다고 한다.
- 康樂 : 중국 남북조 시대 송의 산수시인(山水詩人) 사영운(謝靈運 385~433), 강락후(康樂侯)에 봉해졌으므로 사강락(謝康樂)이라고 칭해짐.
- 金谷酒數 : 진(晉)의 석숭(石崇)이 금곡원(金谷園)에 빈객들을 초청하여 연회를 베풀면서 각자 시를 짓게 하여 시를 짓지 못하면 벌로 술 석 잔을 마시게 했다는 고사가 전함. 금곡은 오늘날 하남성 낙양현의 서쪽이다.
* 飛羽觴而醉月 : 새처럼 잔을 허공에 날려 달을 취하게 하다
‘羽觴(우상)’ 은 ‘참새 모양으로 생긴 술잔’ 이라고 하는데, 그냥 작으면 작았지 굳이 새 모양의 잔이었을까? 그리고 술잔을 날린다는 飛 자(字)를 썼을까? 이런 의문들은 내가 처음 이 글을 알게 된 인연과 관련하여 나로 하여금 감히 이태백이 풍류를 흉내내게 하였으니 ‘술잔을 허공에 날려 달을 취하게 한다’ 는 번역을 낳게 하였다.
필자의 첫 직장이었던 장충고등학교는 장충체육관 뒤편의 남산 끝자락에 위치하였는데 지하철 3호선 약수역에서 내려 조금 언덕을 올라갔다. 약수역 골목 입구에 <동춘장(東春莊/同春莊)> 이라는 중국집이 있었다. 그 음식점 중앙 천장에 <飛觴醉月> 이라 새긴 큰 현판이 걸려 있었다. 아마 그 크기가 옛날 한옥의 문짝 하나만 하였을 것이다. 크기는 그렇다치더라도 그 글씨가 예사롭지 않아 그 물건의 유래를 물어도 주인장이 속 시원히 답해 주질 않았으니, 전후 사정을 물어보아 화교가 운영하던 중국집을 현 주인이 인수한 모양인데 그 현판에 대해서는 자신도 들은 바가 없었던 모양이다. ‘비상취월’ 이라는 대자(大字) 글씨 아래에 여러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음을 보아 아마 동춘장을 개업했을 당시 화교들의 계모임에서 그 현판을 선물한 것으로 짐작되었다.
가면 갈수록 그 글씨가 마음에 들어 어느 날 주인장에게 전격적으로 제안을 하였다. ‘주인장, 제 한 달 월급을 주고 저 현판을 떼어 갖고 갈 테니 그리 아시오’ 라고 호언했지만 주인은 빙그레 웃기만 할 따름, 도대체 쾌히 승낙을 하지 않아 억지로 감행하지 못했으니…… 이제 그 일은 어느 봄날에 객기를 부린 호기로운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내가 장충에 재직한 기간은 만 2년 남짓이었으니 지금 동춘장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지, 나의 그 <비상취월> 현판도 천장 한 가운데 그대로 걸려 있는지, 언젠가 그 근처를 지나는 일이 있으면 꼭 한번 찾아 들러볼 생각이다.
‘비상취월(飛觴醉月)’ 이라 ‘술잔을 날려 달을 취케 한다’ 니 참으로 대단한 풍류가 아닌가? 그 당시 같은 과 선생님에게 그 글씨 자랑을 하였더니, 선배님께서 이태백의 <춘야연도리원서>에 나오는 글귀라고 일러 주었다. 당장 『고문진보(古文眞寶)』를 사서 이태백의 명문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나의 번역과는 딴판으로 모든 해석들이 ‘연거푸 술잔을 주고받으며 달에 취한다’ 라고 번역해 놓았다. 애걔걔, 이게 대체 뭐야, 다들 이태백의 풍류를 제대로 알지 못하니 이렇게 번역할 수밖에…… 이후로도 나는 책방에 새로운 『고진문보』 번역판이 나오면 그 구절을 꼭 확인하였고, 아직까지 나는 나의 번역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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