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 시인의 단시조 산책 (16) 곶감 - 유선철

이광 승인 2022.02.02 08:47 | 최종 수정 2022.04.02 12:14 의견 0

곶감
            
유선철

 

 

실비를 맞고 가거나

바람에 실려 가거나

나는 늘

문밖에 있고

그는 또

빗장을 건다

하얀 밤 눈부신 개명改名

가볍다, 절반의 무게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뭔가 이루려는 자의 구도자적 과정 같은 게 눈앞에서 맴돈다. 초장 전구와 후구, ‘가거나’하는 것은 공간의 이동이 아닌 시간의 흐름이다. ‘나는 늘//문밖에 있고’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진 않다. 혹독한 시련도 없지만 순탄한 여건도 아니다. 실비가 훼방을 놓고 바람의 간섭은 시도 때도 없다. 또한 문밖의 시간은 문 안쪽에서 누릴 수 있는 안온을 바라지 못한다.

빗장을 걸어 잠그는 그라는 존재는 나를 통제하는 조직에 대한 의인화로 이해한다. 그런데 나는 그의 통제에 반발하는 정서를 보이지 않고 있다. 자신이 지금껏 문밖에서 감당해온 수련 행위가 애초엔 비자발적이었을지 모르나 종장을 보면 결국 자신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이름을 ‘눈부신 개명’이라 하며 성취감을 느끼고 있고 ‘절반의 무게’에 만족스러운 모습이다. 개명이라는 자기갱신에 이르는 길은 적어도 절반은 덜어내는 내적 변화를 수행한다. 뿐만 아니라 편안함이 주어지지 않는 문밖을 감수해야 한다,

시원시원한 행갈이를 아낌없이 내어주는 배려로 받아들이며 찬찬히 음미한다. 종장 후구의 음보에 눈길이 간다. ‘가볍다’를 뒤로 보내면 음수율이 맞고 외형상의 완결미도 자연스레 보일 텐데 작가가 이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아마도 한 수가 끝나는 느낌보다 새로운 시작의 여운을 원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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