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 시인의 단시조 산책 (17) 커피포트를 꽂으며 - 권영희

이광 승인 2022.02.08 23:14 | 최종 수정 2022.02.10 11:18 의견 0

커피포트를 꽂으며
                       
권영희

 

 

산다는 건 어쩌면
뜨겁게 끓어보는 일

나부작 엎드렸던
나도 때로 일어나

시퍼런
물의 아우성처럼
분기탱천 해본다

 

권영희 시인의 <커피포트를 꽂으며>를 읽는다. 시인은 커피포트의 전원을 넣고 물이 끓기를 기다린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커피포트 속에서 아우성이 들리고 시인의 내면에서도 뭔가 끓어오른다. 초장의 ‘어쩌면’은 은연중 성찰의 문을 여는 열쇠 역할을 해낸다. 그리하여 ‘뜨겁게 끓어보는 일’ 없이 ‘나부작 엎드렸던’ 자신을 돌아본다. 여기서 끓는다는 건 열정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분노의 작용으로 규정키로 한다.

걷잡을 수 없이 분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분노를 억제하려고 입을 꽉 다물거나 눈을 꼭 감는 사람이 있다. 분노조절장애가 치료를 요하듯 분노를 적절하게 표출하지 않고 참는 것도 상황에 대한 올바른 대처가 아닐 수 있다. 시인의 성찰은 ‘나도 때로 일어나’라는 각성을 일으킨다. 종장 ‘시퍼런//물의 아우성’은 뒤따르는 ‘분기탱천’과 함께 성난 민심을 연상케 한다. 이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분노할 만한 일에 외면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비친다. ‘시퍼런’엔 불의 앞에서 끓어오르는 시민정신의 눈빛이 서려 있다.

톨스토이의 책에서 본 것 같은데 사람을 재는 척도는 그를 화내게 하는 사물의 크기에 있다고 한다. 사소한 일로 화를 내고 후회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불의를 보고도 못 본 척 그냥 지나친 상황에 자괴심이 들 때도 있다. 분노의 코드를 꽂아야 할 때를 잘 분별하고 실행하는 것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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