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 시인의 단시조 산책 (20) 숟가락 - 박성민

이광 승인 2022.03.01 17:23 | 최종 수정 2022.03.04 14:40 의견 0

숟가락
              박성민

 

 

온 가족 둘러앉아 
된장국 먹는 저녁

별들을 떠먹이려고 
허리가 휜 초승달

숟가락
입에 문 문고리

밤새 집이 배부르다


박성민 시인의 <숟가락>을 읽는다. 숟가락은 우리가 평생을 두고 사용하는 가장 친숙한 도구이다. 일본은 젓가락만 있어도 되고 중국도 젓가락 위주에 숟가락은 곁들이지만 국을 즐기는 우리 음식 문화는 숟가락을 먼저 쥔다. 숟가락을 놓았다 하면 식사를 마쳤다는 뜻이고, 때론 한 사람의 죽음을 완곡하게 표현할 때도 쓰인다. 시인은 숟가락 하나로 산업화시대 이전 우리네 정겨운 삶의 풍경을 복원한다.

초장에서 바로 ‘온 가족’이 등장하며 요즘 흔히 얘기하는 ‘혼밥’의 시대와 대비를 이룬다. 이어지는 ‘둘러앉아’에는 밥상에 대여섯이 붙어 앉은 광경이 펼쳐지며 가족 간의 화목이 넘쳐흐른다, 그 다음 중장을 읊다 보면 부족한 살림에도 자식들 배곯게 하지 않으려는 부모의 심중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허리가 휜 초승달’은 엄마가 아이에게 밥 한 술 떠먹일 때 비스듬히 기운 숟가락을  떠올리게도 한다. 동화속의 한 장면을 담은 그림처럼 아름다운 문장이다.

종장에 들어서자마자 문고리에 걸어둔 숟가락을 통해 밥상에서 잠자리로 시공간이 이동한다. 여닫이문 걸쇠를 잃어버리고 나면 숟가락이 대신 빗장 역할을 하곤 했다. 종장의 후구는 따로 한 연으로 독립하여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대가족시대엔 한 방에서 여럿이 칼잠을 자는 게 예사였다. ‘밤새 집이 배부르다’라는 결구는 증가 일로에 있는 일인가구시대의 허기진 밤과 대비를 이룬다.

 

이광 시인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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