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 시인의 단시조 산책 (22) 곰탕 - 김미정
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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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6 10:58 | 최종 수정 2022.03.18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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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탕
김미정
뭉근히 배어드는
시간이 일러준다
뼛속까지 내어주고
뭉클하게 엉기는
곰곰이
빠져드는 깊이
엇구수한
그 멋을
김미정 시인의 <곰탕>을 읽는다. 곰탕은 큰 솥에 물을 붓고 소 다리뼈, 사태 등을 넣어 푹 고아 진하고 뽀얗게 우러난 국을 말한다. 예전에는 곰국이란 말을 많이 썼으나 비슷한 음식인 설렁탕 때문인지 주로 곰탕으로 통하는 것 같다. 초장의 ‘뭉근히’란 말이 생소하다. 사전을 보니 불이 느긋이 타거나 불기운이 세지 않은 상태를 뜻한다. 은근한 불과 비슷한 말인데, 하나 배우고 간다.
곰탕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음식이다. ‘뼛속까지 내어주고//뭉클하게 엉기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한국 하면 ‘빨리빨리’ 문화를 곧잘 언급하는데 그 바탕에는 곰탕과 같이 ‘은근과 끈기’의 기다림이 깔려 있다는 걸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빨리빨리’만으로는 ‘곰곰이//빠져드는 깊이’에 이를 수 없다. 시인은 그 깊이가 주는 맛을 멋이라고 끝맺는다. 맛을 왜 굳이 멋이라고 했을까 생각하다가 시인이 곰탕을 끓이는 과정을 시 창작에 비유하고 있음을 인지한다. 뼛속까지 사무치는 서정을 고아내면 뭉클하게 엉기는 감동이 우러나 마침내 곰곰이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초장과 중장은 구마다 행을 바꾸었고, 종장은 음보마다 행갈이하고 행을 한 연으로 띄워 단시조로선 비교적 긴 길이를 취했다. 한 솥의 곰탕을 얻기까지 걸리는 시간의 경과를 눈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곰탕의 ‘곰’과 깊은 사유를 뜻하는 부사인 ‘곰곰’이 비슷한 어감으로 만나 곰탕과 시 창작 과정을 잘 연결해주고 있다.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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