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 시인의 단시조 산책 (26) 꽃들의 예비검속 -코로나19, 김영란 

이광 승인 2022.04.13 10:46 | 최종 수정 2022.04.17 22:28 의견 0

꽃들의 예비검속
-코로나19 

                                 김영란

유채꽃 일생 위로 
트랙터가 지나갔다

등뼈가 무너지고 
혀가 잘려 나갔다

더 이상
최후변론은 
필요치 않았다


김영란 시인의 <꽃들의 예비검속>을 읽는다. ‘코로나19’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제주 유채꽃 축제는 코로나19로 위기를 맞는다. 결국 코로나19 확산 방지와 지역주민 불안 해소를 위해 축제를 취소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자 특단의 조치를 내리게 된다. 유채꽃밭을 갈아엎는 것이었다. 과연 그 방법 밖에 없었던 걸까.

시인은 외면상으로는 코로나19로 인한 유채꽃의 수난을 말하고 있지만 이 작품 또한 4·3사건의 아픔이 내면에 도사리고 있다. 제목에 나오는 예비검속이라 함은 말 그대로 미리 대비하여 잡아 가두는 것이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국민보도연맹 등에 대한 대대적인 예비검속이 단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폭력과 고문, 학살이 뒤따랐고 각 지방 군단위로 적게는 백여 명 많은 곳은 천여 명이 살해되었다고 한다. 4·3사건의 후유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제주는 또 다시 생지옥 같은 참극의 현장에 내몰려야 했다. 

시인은 트랙터가 지나간 유채꽃밭에서 예비검속으로 많은 사람들의 일생이 쓰러져간 그 날을 떠올린다. 중장은 짓밟힌 꽃밭의 모습이면서 희생자들의 실제 참상을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종장에는 처형당한 사람들의 마지막 권리마저 앗아간 재판정을 언급하며 정의로운 사회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절실히 되새기게 한다.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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