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 시인의 단시조 산책 (25) 무릉리 돌담 - 김정

이광 승인 2022.04.06 10:21 | 최종 수정 2022.04.08 13:33 의견 0

무릉리 돌담

                      김 정

 

 

유채꽃 흐드러져
무참한 봄은 또 오고

두 아들 빼앗긴 채
새까맣게 굳어버린

할머니
구멍 난 가슴
식지 않는 불덩이


김정 시인의 <무릉리 돌담>을 읽는다. 제주 4·3사건은 1948년 4월 3일 남로당이 주도한 무장 봉기가 표면적 원인이었지만 그 배경과 진압 과정 등을 살펴보면 해방 이후 제대로 된 국가 지도력의 부재가 초래한 참사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무장세력 초토화 작전으로 4·3사건은 마무리된 듯했으나 6·25 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관련자 처벌로 이어지며 무고한 양민의 희생이 뒤따랐다.

제주도 유채꽃은 외지인에겐 아름다운 풍광이나 4·3사건으로 ‘두 아들 빼앗긴’ 할머니에겐 ‘무참한 봄’을 상기하는 아픔으로 피어난다. 당시 초토화 작전으로 잃은 두 아들은 어린아이들이었을 것이다. 엄마로서의 삶도 송두리째 빼앗긴 젊은 여인은 할머니가 되어서도 아픔이 식지 않는다. 시인은 그 아픔을 돌담을 통해 담아내고 있다. 돌담으로 쓰인 현무암은 화산에서 분출된 용암이 굳을 때 생긴 구멍들이 많다. 그 구멍만큼 새까맣게 뚫린 4·3의 상처는 비단 할머니뿐 아니라 수많은 제주 사람들의 한이 되어 무릉리 돌담처럼 곳곳에 쌓여 있는 것이다. 

4·3은 제주도민에게 악몽과 같은 역사였다.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법이 제정되고 추모 공간이 조성되어 영령들을 위로하고 있지만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여전히 겨운 숨을 내쉰다. 이 땅에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품에 임했을 시인과 함께한다.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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