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 시인의 단시조 산책 (23) 울컥 만나다 - 강경화

이광 승인 2022.03.23 10:49 | 최종 수정 2022.03.26 12:18 의견 0

울컥 만나다
                   
  강경화

 

 

돌솥비빔밥 먹는 동안 부고를 접하고도
딱딱하게 눌러 붙은 밥알들을 긁어댔다

떼어도,

잘 떨어지지 않는,

엉겨 붙은

지독한 삶

 

강경화 시인의 <울컥 만나다>를 읽는다. 먼저 제목이 가슴을 툭 건드리고 가는 느낌이다. 화자는 돌솥비빔밥을 먹는 동안 부고를 접한다. 누구나 식사 도중 자신이 속한 조직으로부터 부고 메시지를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가까운 사람이 아니더라도 부고 앞에선 식사가 편치 않다. ‘울컥’이란 단어로 미루어볼 때 생전 망자와의 사이가 먼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하던 식사는 끝내야 하는데 하필 그날 메뉴가 돌솥비빔밥이다. 아마도 부고 소식에 주춤하다 보니 밥알이 더욱 ‘딱딱하게 눌러 붙은’ 모양이다. 돌솥 둘레에 붙어 있는 밥알은 일일이 숟가락으로 긁어대야 떨어진다. 여기까지는 행동의 영역이다. 종장에서 사유의 영역으로 전환하며 인간의 실존과 직면한다. 한 사람의 죽음 앞에 살기 위해 먹어야 하는 자연인의 모습을 울컥 만나고, 악착같이 엉겨 붙은 돌솥비빔밥의 밥알 같은 목숨 또한 울컥 만난다. 우리는 어쩌면 생명의 고귀함보다 ‘지독한 삶’의 실체에 더 울컥 하는지 모른다. 망자 역시 그러한 삶을 살다가 갔을지 모른다.

행동의 영역인 초장과 중장은 시조 배행의 기본을 따랐고, 사유의 영역인 종장으로 오면서 배행이 확연히 달라진다. 각 음보마다 한 행씩 떼어놓아 읽는 이에게도 사유의 보폭을 넓히도록 한다. 종장의 전구에서 거듭된 쉼표 또한 유사한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