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학궤범의 악률론으로 본 박미서 시 ‘야생화’ 감상문
머리말
중국 음악을 ‘아악雅樂’이라 하고 우리 음악을 ‘향악鄕樂’이라고 한다. 전자를 대표하는 것은 중국 채원정(1135-1198)의 <<율려신서>>이고, 후자를 대표하는 것은 조선조 성현(1439-1504)의 <<악학궤범>>이다.
아악과 향악를 구별 짓는 첫 장면은 바로 이 두 책의 첫 면에 있다. 그것은 중심음에 해당하는 ‘宮’이 율려신서에서는 두 개 이지만, 향악에서는 세 개다. 시에도 시제를 비롯한 중심음에 해당하는 중심어가 있다. 박미서 시인의 ‘야생화’에는 셋이다. 이 점에서 야생화는 향악에 닮아 있다.
문제는 두 개인 경우와 세 개인 경우, 그 차이가 갖는 의의가 무엇이냐 이다. 이것은 음악이 갖는 본질적인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어느 민족 음악의 이러한 차이는 그 민족 구성원들의 사유 구조와 예술 감정과 밀접하게 연관이 된다.
박미서 시인의 시 ‘야생화’는 조선의 악학궤범에서와 같은 구조를 갖는다. 이는 시인 역시 향토적인 토양에서 시를 쓰고 있음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율려신서와 악학궤범의 ‘궁’의 개수와 ‘야생화’
중국 주자의 제자인 채원정(1135-1198)은 소강절의 황극경세에 기표하여 음악의 이론을 체계한 인물로서 그의 대표작은 <<律呂新書>>이다. 책의 내용과 특징을 가장 쉽게 확인하는 방법은 오성인 宮商角緻雨 가운데 으뜸음인 ‘궁’의 위치와 개수라 할 수 있다.
(1) 율려신서(신서)와 악학궤범(궤범)의 차이를 한 눈에 구별하는 방법은 ‘궁’의 수이다. 전자는 2개이고 후자는 3개이다. 그리고 박미서 시 ‘야생화’에도 궁에 해당하는 시제가 3개 이다.
(2) 중국 채원정의 신서에서 2개 이든 것이 3개로 변한 이유는 당시의 봉건주의 논리 때문이다. 서양 음계는
와 같다. 저음을 ‘탁음濁音’이라 하고 고음을 ‘청음淸音’이라고 한다. 위 (도표1)에서 도음C1에서 한 옥타브 높은 같은 도음C8은 이름은 갖지만 그 청탁이 다르다. 서양 음악에서는 음이 아무리 높아도 목성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소리를 다 낼 수 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낮은 도에 해당하는 것을 ‘황종黃鐘1’이라 하며, 황종黃鐘1보다 한 옥타브 높은 황종黃鐘2인 청음을 낼 수 없다. 그 이유는 黃鐘2를 ‘黃鐘元’이라고 하여 임금님의 위치에 해당하는 음이기 때문이다. 임금 이상 높은 것은 없기 때문이란 봉건주의 논리 때문이다. 서양의 음계를 동양에서는 ‘율려律呂’라고 한다. 음계와 율려를 서로 일대일 대응을 시키면 아래와 같다.
(3) 중국 율려신서의 봉건주의 논리에 대하여 악학궤범은 다음과 같이 대응한다.
왜 악률에서 궁이 두개인가 세 개 인가?
동양에서는 12음계를 율려라 하며 율은 양이고, 려는 음이다. 삼분손익법이란 3/3에서 ‘손일損一’한 것은 3/3-1/3=2/3이고, ‘손익損益’한 것은 3/3+1/3=4/3이다. 이러한 손일과 손익을 반복해 아래와 같이 12율이 작율作律 된다.
동양에는 12율 이외에 5음에 해당하는 ‘궁상각치우’가 있다. 이는 역의 ‘음양오행’을 그대로 음악에 적용한 결과이다. 12율이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음양’이라면, 오행에 해당하는 것이 ‘5음’이다. 전자를 ‘성聲’이라 하고 후자를 ‘음音’이라고 한다. 우주에는 두 가지 대칭 반영과 회전 대칭 뿐인 데 전자에 해당하는 것이 음양이고, 후자에 해당하는 것이 오행이다. 관자와 사기에 나타난 오음의 비례 관계를 보면 아래와 같다.
이러한 중국 율려신서의 봉건주의 논리에 대하여 악학궤범은 다음과 같이 대응한다. 다시 말해서 궁 내부에 제3의 궁을 만들어 그 상하로 음을 배열하는 방법이다. 이는 수를 한없이 셈해도 무한을 얻을 수 있지만 불과 1과 2 사이에도 무한이 가능하다는 1/2, 1/3, 1/4...와 같음을 의미한다. 전자를 ‘가무한’이라 하고, 후자를 ‘실무한’이라고 한다.
위 에셔의 ‘써클 리미트1’은 아무리 분할해도 하나의 원 안에 무한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무한을 실무한actual infinite이라고 한다. 실무한 개념을 도입하여 한국의 향악은 봉건주의 논리를 극복한다. 원을 군주라면 원 밖에 나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음을 원의 내부에서 무한대로 확장 시킬 수 있다는 논리이다.
황종-궁보다 더 높은 음으로 상향하는 것을 두고 청오성淸五聲이라 하고, 하향하는 것을 탁오성濁五聲이라고 한다. 이를 알아보기 쉽게 일람표를 만들면 아래와 같다.
상과 하를 좌우로 나뉘면서[析]도 합한다[合]. 나뉘면서 합할 그 순간에 서로 보합돼 공空이 만들어진다고 하여 이를 ‘석합보공析合補空’이라고 한다. 그래서 여기서 5는 모두 공에 해당한다. 이는 실무한의 개념을 한껏 응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우리 향악에서는 모두 십성十聲(상12345+하12345)으로 된다. 궁상각치우 오음에 대하여 ‘십음’이고 있고, 이는 얼마든지 써클 리미트에서 본 바와 같이 미분된 수 즉, 나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청과 탁을 ‘청중청’ ‘청’ ‘탁’ ‘탁중탁’으로 증폭시킬 수 있다. 이는 실로 우리 향악의 특징 가운데 특징이고 한국적 사유가 괄목할 만하게 나타나는 현주소라 할 수 있다. 황종 이상 올라갈 필요 없이 같은 황종 내부를 상하로 다시 잘게 분할하는 방법이다. 이를 현대 과학에서는 ‘프랙털fractal’이라고 한다. ‘부분 속에 부분’으로 세분화함으로서 황종 이상의 청음으로 올라 갈 필요가 없게 만든다. ‘청중청 청중탁 탁중탁 탁중청’으로서 상하의 범위는 12일 수도 123일 수도 12345일 수도 있다.
그러면 박미서의 ‘야생화’를 이러한 상하12지법의 관점에서 구도화 하면 아래와 같다. 악학궤범에서와 같이 궁이 세 개다.
물론 상하12지법에서 구태여 상하 모두 5일 필요는 없다. 여기서는 3으로 제한한다. 그러나 주요한 것은 상하가 1과 2지법으로 갈라지는 데 있다.
‘읇조림’과 석합보공
석합보공이란 윷놀이에서 윷가지가 재껴지고 엎어지는 것과 같다. 그래서 도와 걸, 개와 개, 걸과 도, 그리고 윷은 윷 자체와 석합보공 한다.
(표5)에서 모5는 공과 같은 것이다. 다 엎어진 것에 5점을 주는 비합리적인 계산법이 석합보공으로 가능해 진다. 이러한 ‘공’을 ‘빌공’이라고 한다. 그리고 ‘빌’은 ‘비운다’와 ‘빈다’라는 말과 어원을 같이 한다. 여기에는 종교적 오의가 들어 있는 것 같다. 자기를 비우기 위해서 절에 가 절을 하면서 부처님께 자기를 비울 때에 ‘비움’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미서의 야생화의 1연과 마지막 8연의 ‘두건’과 ‘읇조림’은 완벽하게 대칭을 만든다. 다시 말해서 2-6사이가 상하12지법을 통해 석합보공을 만들자면 두건을 쓰고 읇조림을 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두건과 읇조림은 필요조건이다. 두건 안 쓰고 읇조릴 수는 없다. 두건은 하늘과 인간 그리고 모든 타자와 자아를 연결시키는 매개와도 같다. 인간이 자기를 부정하고 높은 자 앞에서 경건한 태도를 갖기 위한 태도가 두건 쓰고 읇조림 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전통 음악 연주에서도 연주자들이 머리에 항상 두건을 필수로 두른다.
‘읇조림’이라고 할 때에 두 말의 합성이 석합보공과 일치한다. 즉, ‘읇’은 상하지간을 구별하는, 다시 말해서 나누고 거리를 두는 ‘석析’에 해당하고, ‘조림’은 구별하고 분별할 다음에 다시 서로 합하고 상응하는 것 ‘합合’을 의미한다. 그래서 ‘읇조림’이 있은 다음에는 다 비우는 공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한자의 空은 ‘비우다’와 ‘빈다’는 의미를 동시에 함축한다. 음악을 연주할 때에 그리고 신이나 지위가 높은 존재와 대면할 때에는 읇조림의 태도를 가져야 하고 거기에는 상하12지법이라는 기법을 구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박미서의 야생화는 1연에서 8연까지 잘 구도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1연과 8연의 두건과 읇조리의 대칭과 2-6연들 간의 상하12지법의 적용이 잘 조화된다.
조약돌에서 진흙바위가 되고 진흙바위가 다시 조약돌이 되는 관계와 같이 부서지고[析] 다시 합하는[合] 강인한 작용 없이 백리향이 백리까지 향기를 내낼 수는 없다. 백리향이 백리까지 향기를 보낼 수 있는 것은 마치 빛이 자기자신의 질량이 없는 공백이기 때문이고, 공백은 조약돌이 변해 진흙 바위가 되고 다시 그 반대로 되는 석합보공 즉, 읇조림 때문에 가능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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