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박미서 시 '야생화' 감상문(1) ... 백리향으로 해체된 에덴동산

창이 승인 2019.04.07 23:35 | 최종 수정 2019.04.09 10:49 의견 0

박미서 시 '야생화' 감상문(1) ... 백리향으로 해체된 에덴동산

머리말

박미서의 시 ‘야생화’는 많은 철학적인, 그리고 논리적인 문제점을 그 안에 가지고 있다. 이 시를 처음 접할 때에 현대 사상사를 읽는 사람이라면 시인이 왜 시제를 ‘백리향’이라 하지 않고 ‘야생화’라고 했는가에 관심을 쏟을 것이다. 20세기는 인간 정신사가 최대의 위기를 직면하는 세기이다. 지금까지 확고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기반과 기초가 바벨탑과 같이 다 무너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시인들도 시가 성립하는 기초에 관한 바벨탑 위기를 겪게 된다. 박 시인은 이 위기를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물론 시인들이 이 위기에 대처하는 과정 자체도 무의식적이어야 한다. 만약에 이 위기를 의식하는 순간 모든 시어가 단절될 것이고 시 자체를 쓸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위기를 의식하지 않으면서 무의식적으로 위기에 대처하고 있다. 이 감상문은 박미서 시인이 자기 시의 토대에 대한 어떤 안전장치를 만들고 있는가를 볼 것이다. 1. 이름짓기와 바벨탑의 위기 2. 바탕과 그림의 혼란과 위기 3. ‘야생화’의 위기와 대처의 순서로.

‘이름짓기’와 바벨 탑의 위기

논어에서 공자가 울었다는[哭] 기록이 한 곳 나온다. 그것도 하찮아 보이는 일로 울었다 하여 조금 의외라 여겨진다. 예수가 앞으로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을 말하면서 운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하지만 공자의 울음은 정치적인 것도 아니고 병고로 인한 것도 아니다.

술마시는 병이 당시에는 네모로 된 ‘고孤’라고 했는데, 사람들이 둥근 병으로 술을 마시면서도 그것을 ‘고’라고 하니 통탄할 일이라고 하면서 앞으로 세상이 혼탁해질 것을 내다보면서 울었다는 것이다.

이 말을 요즘 쉽게 이해하자면 이순자 여사가 자기 남편 전두환을 두고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하고 광주의 초등학생들까지 분노하는 것을 보면 공자가 왜 울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전두환은 자기가 만든 정당을 ‘민정당’ 즉, ‘민주정의당’이라 했다. 쉽게 말해서 ‘말’과 ‘사물’이 일치하지 않을 때 얼마나 사회와 정치가 혼란 해 지는 것을 보면 공자가 왜 울었는지를 조금은 이해가 될 것이다.

삼각형 아니, 수많은 다각형으로 된 술병을 사람들은 만들어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명의 발달이란 이러한 원형과는 멀어져가는 것이 특징이다. 공자가 아마 박이 아닌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바가지를 ‘바가지’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우는 정도가 아니고 기절초풍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박미서 시 ‘야생화’를 감상하는 도입부에서 공자의 울음을 강조해 두는 이유는 이름짓기의 어려움과 인간 정신 토대의 흔들림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공자뿐이랴. 노자도 “이름이 이름 같지 않으면” 하면서 <<도덕경>>을 시작한다. 박미서 시인은 1연에서 ‘하얀 두건의 둑길에 / 눈멀어도 좋을 이름’이라고 하여 ‘두건’과 ‘이름’이 심상치 않는 분위기를 조장한다.

유가와 도가에서 이름과 사물 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방법은 판이하게 다르다. 유가에서는 어떻게 하든 이름과 사물이 같아야 한다 하면서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君君臣臣 父父子子”라며 소위 정명론正名論을 학파의 지론으로 삼는다. 이름은 있어야 하고[有名], 그래야 유명하고, 도가는 有名과 無名을 다 노래한다(도덕경 1장). 왜 그런가? 시에 답이 있다.

서양철학에서는 동양의 이러한 이름에 대한 심각성을 20세기에 들어 와서야 겨우 깨닫는다. 소위 언어철학에서는 철학의 도구인 언어 자체가 철학의 대상이 된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와 ‘철학적 탐구’는 모두 말과 사물 간의 일치에 관한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사전을 찾아보면 쉽게 답이 나올 것이 아니냐고 할 것이지만, 사전에 내려진 말의 정의는 그 정의 자체를 정의하기 위한 사전의 사전이 있어야 하고 이는 상자속의 상자 같은 무한 퇴행을 할 수밖에 없다. 결국 ‘말의 쓰임usefulness’에 따르기로 결론한다. 데리다의 ‘말과 사물’ 그리고 푸코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모두 언어와 대상 간의 이름짓기 어려움에 관한 것이다.

기독교는 말로 시작하여 말로 끝나는 종교이다. 태초에 신이 말로 천지창조를 했고, 신약은 예수가 말(로고스)이라고 한다. 창세기의 낙원에서 신이 인간을 창조한 다음 동산을 거닐다 두 남녀에게 사물에 이름을 짓게 한다(창세기 2장 19절). 그러나 웬일인가? 이름 짓기 행위가 끝나자 말자 타락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바로 바벨탑이 무너지고 그 결과 인간 언어의 대혼란이 야기 되었다고 한다. 말로서 세계를 창조했다는 신이 신약에서는 신 자신이 십자가상에서 죽는다. 말(로고스)이 죽는다는 것이다.

시인들이 시를 짓기 전에 시에 이름을 달아야 한다. 박 시인은 ‘야생화’라고 했다. 이름짓기의 위기를 알고나 지었나? 십자가상의 고통을 알고 지었는가? 이름이 죽었는데 이름 지은 자에겐 책임이 없나?

에덴 동산에 핀 야생화 ‘백리향’의 슬픔

이름짓기의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 것을 알진대 박 시인은 ‘야생화’에서 이름의 바벨탑을 쌓고 있다. 탑의 하단부터 시인이 쌓은 탑의 구조를 보면 시제는 ‘야생화’이고 야생화에 ‘백리향’(1연)을 포함包涵시킨다. 에덴동산에서 이름짓기 하듯 지금 시인은 이름을 짓는 대로 그대로 불리는 행복에 도취돼 있다.

다음 이어지는 연들에서 박 시인은 ‘소리의 꽃’(2연), ‘밀물’(3연), ‘이름없이’(4연), ‘향기’(5연), ‘분홍볕’(7연)과 같은 백리향의 속성들properties을 지어나간다. 이브의 이러한 광경을 옆에서 보는 신의 얼굴은 어둡기만 하다. 낙원의 추방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시인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럼 이름짓는 행위가 왜 그렇게 금기시되고 위험한 장난(?)인가를 알아보자. 20세기 철학과 논리학 그리고 수학은 모두 말의 위기에 관한 것에서 예외가 아니다.

먼저 ‘야생화’와 ‘백리향’의 관계부터 보자. 백리향에 귀속되는 위의 속성들 모두가 곧 야생화의 속성은 아니다. 야생화 가운데는 위 백리향의 속성이 아닌 속성을 가진 것들도 있기 때문이다. 맨드라미라는 야생화이기는 하지만 위 백리향의 속성과 다 같지는 않다.

‘야생화’는 ‘백리향’보다 상위 개념인 것 같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인은 상위로 두고 있다. 백리향이란 집합 속에 위에서 열거한 속성들은 야생화에 ‘귀속belonging’ 된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야생화⊃백리향

{백리향}∋{‘소리의 꽃,’ ‘밀물,’ ‘이름없이,’ ‘향기,’ ‘강인한,’ ‘분홍볕’}과 같다. 백리향은 야생화에 包涵(⊃)된다 하고 8개의 속성들은 백리향에 귀속된다고(∋) 한다. 전체가 부분을 포함한다고 하고, 요소들이 집합에 귀속된다고 한다.

이제부터 언어의 바벨탑이 어떻게 무너지는 가를 볼 차례이다. 여기에 {a,b,c}라는 집합이 있다고 할 때에 그것의 부분집합은 {a, b, c, ab, bc, bc, ca, abc, ∅}와 같은 8개이다. 이를 부분집합 혹은 멱집합 power set이라고 한다. 바벨탑이 무너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집합(∅)과 전체로서의 집합 자체({abc})도 부분으로 包含돼 있기 때문이다. 包涵과 包含의 구별에 유의해야 한다.

어느 건축물이 제대로 서 있자면 기초가 든든해야 하고, 건물의 층이 위계적으로 질서 있게 쌓여야 한다. 그런데 위 멱집합에 의하면 기초는 공집합이고 건물의 위계는 무너져 버렸다. 왜냐하면 건물 전체({abc}) 자체가 건물의 방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박미서 시인이 시에서 그러하듯이 이렇게 야생화 그리고 백리-향과 그 안에 속성들로 包含시키려 하면 이런 언어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전체와 부분이 질서정연하게 구별되는 包涵에서는 안전하지만 包含일 때와 공집합이 토대가 돼 그 위에 언어라는 건물이 서 있다면 그것은 바벨탑이다. 불교의 경우를 보자.

부처님이 ‘諸行無常’이라고 말하는 순간, 부처님의 이 말 자체도 무상하냐는 논박에 부딪히게 된다. ‘모든’을 의미하는 ‘諸’에 당장 걸린다. ‘모든’이란 말에 ‘제행무상’이란 말을 집어넣어 보자. 그러면 부처님은 스스로 자기 말이 변화무쌍하다는 것을 말하게 되고 자기 말을 자기가 부정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자기가 하는 말이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고 인정하게 된다. 불멸 후 500 여 년 동안 불교는 힌두 학파로부터 이런 공격에 시달리게 되고 450년 전에 와서야 진나가 불교 논리학을 개발해 이에 대처한다.

마찬가지로 백리향의 ‘모든 속성’이라 하는 순간 ‘모든 속성’이란 말도 그 속성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면 이 속성이 속성이냐 아니냐의 시비에 걸리게 된다. ‘short’라는 말의 속성을 보면 속성 그대로 short 이다. 그러나 ‘long’을 보면 ‘short’ 보다 글자 수가 짧은 데 의미는 ‘길다’이다. 그래서 ‘short’를 ‘자기귀속적’이라고 하고, ‘long’은 ‘비자기귀속적’이라고 한다.

다음부터는 말장난 같은 논리가 계속되지만 정말 장난 같지 않는 결과를 초래하고 대수학자들이 절필을 선언하고 전 분야에서 토대를 무너지고 소위 포스트모던이 시작된다. ‘비자기귀속의 비자기귀속은 자기귀속’이고 ‘비자기귀속의 귀속’은 ‘비자기귀속’ 이기 때문이다. 이를 ‘리샤르 역설 Richard Paradox’이라고 한다. 나중 러셀 역설(1904)의 전신이다. 바벨탑에는 무너지는 데는 논리가 있었다. 그것이 역설이었다.

바벨탑이 혼란 속에 무너진 이유가 바로 이런 언어 속의 역설 때문이다. 이를 작품으로 만든 사람이 판화가 M.C.에셔이다. 에셔는 바벨탑의 무너짐은 그것의 토대 없음으로 다음과 같이 작품화하였다.

에셔의 1928년 작 ‘바벨 탑’
에셔의 1928년 작 ‘바벨 탑’

에셔의 ‘바벨탑’은 견고한 것 같지만 토대가 없다. 아래가 역설로 돼 있으니 혼동을 결딜 수 없다. 이러한 탑의 정상에서는 아직도 공사가 진행중이다. 언제 무너질지도 모르면서도. 우리는 지금 이러한 바벨탑의 정상에서 산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위기가 문명의 위기를 그대로 반영한다. 언어의 위기가 곧 문명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공자가 운 것이다.

‘백리향’이란 백리까지 향기가 번진다고 하여 붙여진 꽃의 이름이다. 그러면 시인이 위에 열거한 속성들이 백리향을 다 대표하는냐 하면 그렇지 않다. 다시 말해서 얼마든지 백리향의 속성을 담아 이 꽃에 넣을 수 있다. 그리고 시제인 야생화에서 볼 때에 야생화 안에는 백리향이 아닌 꽃들도 포함包涵된다.

‘야생화’와 ‘백리향’ 사이에도 빈틈이 있고, 백리향과 속성 사이에도 빈틈이 있다. 아직 거의 무한에 가까울 속성들을 채울 수 있는 간격과 틈이 있다. 시인이 만약에 이 간격과 빈틈을 생각한다면 시를 쓸 수 없거나 시를 쓴다면 그것은 시가 아닌 시가 될 것이다. 시인이 시를 짓기 앞서 이런 절벽 앞에 설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면 박미서 시인은 이 사물이 이름 앞에 섰을 때에 그 절벽 같은 것을 어떻게 넘으려 하는가? 만약에 이런 고민 없이 쓴 시는 그 값을 잃게 될 것이다. 지금 박미서 시인은 시에서 언어의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언어에 확고한 토대가 있다고 믿을 땐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토대 같은 것이 없다는 것이 19세기 말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19세기 말 G. 프레게란 수학자는 수학의 든든한 기초를 만들려고 ‘수학의 기초 foundation of mathematics’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칸토어가 당시 발견한 리샤르 역설과 위 불교의 역설과 같은 것을 보는 순간 그만 절필하고 말았다. 지금은 중학교 수준의 수학에서도 알려진 역설이 당시에는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더는 수학의 확고한 기초는 성립할 수 없다는 결론 때문이다. 유클리드 공리 체계 위에 탑의 층을 쌓아 올라가면 실수 속에 자연수, 자연수 속에 정수, 정수 속에 유리수, 유리수 속에 무리수, 이런 식으로 수의 바벨탑을 정상까지 쌓을 수 있다고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이러한 터에 자기귀속의 역설이 나타난 것은 수학자들은 대실망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다른 영역에도 같은 충격을 던졌다.

철학과 논리학 등 영향을 안 미친 곳이 없을 정도였다. 바로 이 때는 프랑스 파리에서는 인상파 화가들이 전시회를 열고 있을 무렵이다.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자면 그림이 들어가는 ‘바탕ground’ 과 ‘그림figure’ 양자 간의 관계가 중요하다. 인상파들은 바탕과 그림의 경계를 허물었다. 바탕인지 그림인지 구별이 분명하지 않고 그림의 인상만 준다는 것이다.

모네의 ‘센강의 봄’
모네의 ‘센강의 봄’

인상파 화가 모네의 ‘센강의 봄’을 중세기 때의 그림들과 비교해 볼 때에 강과 주변의 풍경이 흐릿해 강이라는 인상만 눈에 들어온다. 그림은 뚜렷할수록 좋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수학에서 바탕에 해당하는 것이 다름 아닌 유클리드 공리이다. 공리 다음에 정리가 있고 그 다음 수학식들이 있다. 그러면 시에서는? 시제가 바로 바탕에 해당한다. 서양수학은 이러한 공리를 만들어야 수식이 풀린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공리 같은 것들이 18세기에 와 무너졌다는 것이다. 유클리드의 제5공리가 그 예이다. 인상파의 등장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시인들도 똑같은 위기 앞에 직면한다. 시의 제목인 시제는 그림의 바탕과 같은데, 거기에 어떤 명칭을 준다는 것은 위기를 스스로 불러 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어떤 시인들은 이런 위기를 알고는 시제를 ‘無題’라고 한다. 그러나 ‘무제’ 역시 하나의 제목이다. 시뿐만 아니라 화가들도 자기 작품에 무제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인상파는 작품을 보는 사람의 눈을 분간하지 못하게 할 뿐이다. 그래서 20세기 피카소 같은 화가들은 작품 자체의 모양 구조를 해체시켜 버린다.

피카소의 1929년 작 ‘입맞춤’
피카소의 1929년 작 ‘입맞춤’

위 피카소의 작품은 ‘입맞춤’인데 두 사람의 얼굴을 분간할 수 없으나 감정만을 강렬하게 노출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명칭 ‘입맞춤’은 역설적으로 해체 시키지 않고 있다. ‘무제’라고 해도 해체는 아니다.

이렇게 우리 시대의 예술은 해체주의와 함께 초현실주의에 진입했다. 그런데 박미서 시인은 시에 강력한 이름을 주고 있다. 아니 이중으로 주고 있다. '야생화'와 ‘백리향’이 그것이다. 어쩌려고?

수학과 예술에 영향을 받은 아인슈타인은 때 늦게 2000여 년 이상 믿어 오던 우주에도 바탕이 없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인들의 에테르나 뉴턴의 절대공간과 절대시간 같은 바탕은 없다고 한다. 물질이 공간이란 바탕 안에 들어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공간과 시간은 물질과 동시에 생겨난다고 한다. 모두 인상파와 해체주의와 같은 맥락이다.

지멜로와 프랭클 공리와 ‘야생화’

수학에서부터 해결의 실마리가 제출되기 시작한다. 1908년 지멜로와 프랭클 두 수학자는 9개의 공리를 만들어 지진으로 다 무너져 내리는 건물을 수리하기 시작한다. 이들 공리들이 시와 밀접하게 연관이 된다. 시인이 사전에 이들 공리들을 알고 있었는지는 불문명하지만 시인은 항상 시대를 앞서 간다. 9개 공리 가운데 ‘외연 공리’와 ‘공집합 공리’를 ‘야생화’와 연관하여 여기서 다루기로 한다.

외연공리에 의하면 바벨탑이 무너진 이유는 ‘모든’과 같은 말을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든’이라는 말과 그것에 귀속하는 것들 사이의 층위적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모든 과일’이라고 할 때에 그 바구니 속에 과일을 담을 때에 ‘사과’ ‘포도’ ‘복숭아’ ‘자두’ 등과 같이 분류하여 그것을 꾸러미를 만들어 바구니에 담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외연공리라 한다. 개념에는 외연과 내포가 있는 데 ‘꽃’이라 할 때 ‘나팔꽃’ ‘개나리’ ‘봉숭아’ 같이 정의하는 것을 외연적이라고 하고, ‘수술’ ‘암술’과 같이 정의하는 것을 내포적이라고 한다.

박미서 시인은 바로 이 기법을 시에서 도입한다. 시제를 ‘백리향’이라고 하지 않고 '야생화'라고 함으로써 시어들의 바벨탑 위기를 피한다. 처음 시를 접할 때에 누구나 시인이 시제를 ‘백리향’이라 하지 않고 ‘야생화’라고 한 것에 의아해 했지만 외연공리를 보면 기법의 탁월함을 발견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야생화란 바구니 속에 백리향이란 꾸러미를 만들어 바구니에 담는다. 이는 야생화란 바구니에 8개의 속성들을 그대로 담아 ‘모든’이라고 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래서 외연 공리는 꾸러미를 만들 때에 속성으로 그 꾸러미를 정의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박 시인은 속성을 8개나 연마다 하나씩 만들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시인들은 시제를 정한 다음 그 시제에 들어갈 언어들 선택에 가장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이 때에 시제와 시어들 사이의 거리를 매우기란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외연 공리는 시제와 속성들 사이에 꾸러미를 만들어 이 완충지대를 통해 토대의 안전을 도모하지만 이 외연공리 역시 미봉책일 뿐이다. 건축 기법 가운데 지진을 방지하기 위해 건물 밑에 인공 철판을 깔아서 지진이 나면 철판도 같이 움직이게 하여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한다는 것이다. ‘백리향’이란 시에서 이런 철판과 역할을 한다.

지멜로-프랭클 공리는 ‘합집합의 공리axiom of union’이다. 백리향의 속성들을 더 분화해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시의 2연에서 ‘소리 꽃’에 ‘밝은 인정의 꽃’이라 분화하고, ‘모래들의 밀물’ 등과 같이 각 연마다 속성에 형용사 혹은 명사를 통해 ‘속성의 속성’을 더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이를 합집합의 공리라고 한다. 그러면 제기되는 반론은 바벨탑의 층위를 더 심화하지 않느냐는 비난이다. 그렇지 않다. 바벨탑의 경우는 집합의 요소들끼리의 층위를 무한정 열어 놓았지만 합집합의 공리의 경우는 요소들의 집합 사이를 막아버리는 것이다. 그 막아버리는 기법을 박미서 시인은 백리향의 속성들을 연들로 갈라놓는 것으로 소임을 다한다. 시인의 세심한 배려가 엿보인다. 그래서 시 전체는 바벨탑 구조 같지만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

외연공리나 합집합의 공리나 모두 한 가지 공통된 점은 ‘모든’이란 거대 일자가 생겨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또 한 가지 공리가 필요가 생긴다. 그것이 ‘공집합의 공리’이다. 토대를 아예 無나 空 같은 것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물을 허공 위에 세우라는 말이다. 여기에 유가 학파에서는 두려움에 떤다. 그래서 공자가 운 것이다. 노자는 울지 않는데 말이다. 그 이유는 공자는 有(태극)에서 음양이 음양에서 사상 팔괘가 나온다고 했지만, 노자는 도덕경 42장에서 無에서 有가 나온다고 했기 때문이다. 멱집합은 이 문제에 대하여 간단하게 대답을 준다. 無란 공집합∅이고 有란 전체 자체 {abc}이다.

무를 언어의 토대로 삼아보자는 것이다.

유가 사상에는 공집합이 없기 때문에 말과 사물 사이를 잇는 기법이 부족하다. 그러나 도가 사상을 유와 무를 동시에 유무상생으로 보기 때문에 노자는 낙관적이었다. 물론 주자의 신유학은 부득이 이러한 약점을 깨달아 알고는 ‘無極而太極’이라고 수정한다.

‘無極而太極’을 신윤복의 작품 ‘계변기화’를 통해 쉽게 보면, 동양화에선 바탕과 그림을 처리하는 방법이 그대로 나타난다. 우측의 바위산과 좌측의 길, 바위산 아래 목욕하는 여인들, 그리고 우측의 길가는 선비 사이에 냇물이 흐른다. 그런데 ‘냇물’은 바탕 자체가 그림이 된 것이다. 두 개의 산이 있으면 그 사이의 공간은 공간 자체가 강(그림)이 되어 버린다. 이것이 ‘무극이태극’의 기법인 것이다. 동양화는 인상파와 해제주의를 모두 이렇게 본다.

신윤복의 ‘계변기화’
신윤복의 ‘계변기화’

서양수학 역시 0을 수로서 수용한 것은 17세기 이후부터이다. 그래서 0에 해당하는 바탕 처리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0이란 빈 공간 자체가 그림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0의 0승 = 1, 1의 0승 = 1, 2의 0승 = 1과 같이. ‘무극이태극’이라 하고 도덕경은 무극에서 태극이 생한다고 한다.

지멜로-프랭클의 공리 가운데 ‘공집합의 공리’은 무너지는 수학의 해체를 막기 위해 공 혹은 무를 토대로 삼자는 공리이다. 이는 동양화한 기법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유를 토대를 만드니 그 안에 그 유에 해당하는 속성을 계속 만들어나가야 하는 위험을 공으로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야심경 역시 ‘五蘊皆空’이라 한 이유 역시 바탕과 그림 사이의 위험성 때문이다.

詩에서 ‘공집합의 공리’를 찾기란 쉽다.

하얀 두건의 둑길에
눈멀어도 좋을 이름,
엷은 연록 눈매의 백리향

이라고 한다. ‘하얀 두건’ 그리고 ‘눈멀어도 좋을 이름’은 이름이 갖는 공집합에 대한 경건과 두려움의 두건이란 뜻이다. 박미서 시인은 ‘하얀 두건’의 양가적 의미로 공집합의 공리를 말하고 있다고 본다.

에덴의 동쪽에 핀 야생화

하얀 두건, 그리고 ‘눈멀어도 좋을 이름’은 모두 무명의 ‘공집합’에 대한 경건의 표시이다. 그러면 어떻게 무에서 유를 상생시켜 낼 것인가? 有無相生할 것인가? 에덴의 동쪽으로 쫓겨난 인간들은 이름짓기를 다시 해야 한다. 유무상생하는 방법으로 유가 있기 전에 무엇이 있었느냐 하면 무라고 대답해야 하고, 무가 있기 전에 무엇이 있었느냐 하면 유라고 대답해야 한다.

무에서 유가 나왔다는 논리는 엘로힘 신의 일방적인 선언이다. 이 선언에서 타락은 예고된 것이다. 에덴의 동쪽에서는 유무상생한다. 그러면 어떻게 유무 상생하는가?

박미서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분홍볕 읊조리는 꽃’이라고 한다. ‘읊조림’을 ‘빈다’고 한다. ‘빌다’란 ‘비움’과 어원을 같이 한다. 경건과 경외의 념이란 비움이고 비우자면 빌어야 한다는 말이다.이를 ‘읊조림’이라 했으며, 비어 있는 공에 비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쓴다 해도 ‘닳지’ 않는다고 한다.

<창이/미국 남가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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