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일 옻칠유화 작가 하정선 기획전 ... '나전! 색으로 터치하다'

내달 2일까지 통영옻칠미술관서 자작나무숲·통영야상곡 등 20여 점 선봬
나전칠기와 옷칠 기법으로 두 가지 이미지 강조

조해훈 승인 2020.01.18 08:35 | 최종 수정 2020.01.18 19:09 의견 0
통영야상곡

필자를 포함해 지리산 화개골의 차인 7명이 경남 통영의 통영옻칠미술관을 찾았다. 하정선(57) 작가의 옻칠회화전을 보기 위함이었다. 세계 유일의 유화적 기법에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나전칠기 기법을 도입해 작업하는 작가의 드문 전시이기 때문이었다.

우리 고유의 전통 예술인 나전칠기를 계승하고, 이를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2006년 6월에 개관한 통영옷칠미술관에 전시된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한 필자 일행은 별관인 기획전시실에 가 하 작가의 작품들을 만났다. 전시 주제는 ‘나전! 색으로 터치하다’로, 오는 2월 2일까지 2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일행은 이구동성으로 “와!”라며, 탄성을 터뜨렸다. 국제신문에서 미술기자를 역임했던 필자도 작품의 화려함과 정교한 기법, 그리고 인문학적인 감성이 담긴 작품 분위기에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필자는 부산에서 작업하는 몇 명의 옻칠 작가와 인터뷰를 하고 그들의 작품을 본 적이 있다.

하 작가의 작품 콘셉트는 나전칠기와 옻칠기법으로 두 가지 이미지를 강조한 것 같았다. 첫 번째는 자작나무를 다양한 형식으로 캔버스에 옮겨다 놓았다. 하 작가는 “오랫동안 옻칠 작업을 하면서 옻칠의 재료적 특성과 나전의 아름다움의 극대화를 자작나무 숲에서 찾고자 했다”며, “자작나무는 러시아와 몽고에서는 신과 인간을 연결시켜주는 신목(神木)으로 신성시했고,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준다는 의미까지 있어 이 나무에 천착했다”고 설명했다.

“자작나무를 통해 누군가는 사랑과 위안을 받고, 누군가는 상처를 치유한다는데 나는 작가로서 끌렸다”는 그는 “작가는 작품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데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작나무숲

두 번째는 ‘통영야상곡’이란 부제가 붙어 있는 작품들이었다. 한국의 나폴리로 불리는 통영의 밤바다 풍광을 화려하고 다양한 빛이 나는 나전칠기로 마치 환환 불빛을 밝혀놓은 것 같은 이미지를 연출한 것이다. 이런 형식으로 작업을 하는 작가는 그가 유일하다. 작가가 옻칠작업을 시작한 지가 10년이 넘었으며, 그 이전부터 같은 통영야상곡이란 주제로 유화를 쭉 그려왔다. 그는 “평소 유화에서 점과 선으로 표현되던 작업이 나전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지만, 나전의 색감과 시문의 방법이 회화로 잘 표현될 수 있을까라는 점에 있어서는 사실 부담감이 있었다”며 ”전통 나전칠기 기법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 기법을 재해석함으로써 나전 고유의 색감을 살리면서 끊음질, 타찰, 줄음질 등의 공정이 복합돼 붓으로 터치하듯 시문해 회화로서의 조형성을 최대한 강조했다“고 말했다.

별이 빛나기 위해서는 어둠이 있어야 한다. ‘통영야상곡’ 작품들을 자세히 보니 낮 동안의 자연 빛이 사라지고 저녁이 돼 어둠이 내리는 순간 인공의 빛으로 하나 둘씩 항구가 움직이는 듯 역동성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작가에게 옻칠 작업에 매료된 이유를 물었다. 그는 “지구상 현존 최고의 천연도료인 옻칠은 ‘신의 눈물’이라고 할 정도로 제 몸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나오는 수액을 한 방울 한 방울 모아 얻는 만큼 구하기도 다루기도 힘든 자연의 선물”이라고 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과 일본의 작가들도 옻칠 작업을 하는 걸 보았다고 질문을 하자, 작가는 “중국은 조칠(옻칠을 수십 층 칠한 표면에 무늬를 새기는 기법)로, 일본은 마키에(금은 가루를 칠기 표면에 뿌려서 그리는 기법)로 대표 된다”며, “하지만 우리나라만은 고려 나전의 기술적 우수성과 예술적 수준을 바탕으로 조선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나전칠기로 일관되게 이어와 독자적인 발전과 특색을 갖고 있다”고 나전의 역사성을 조명했다.

목태 캠퍼스 위의 작업 중인 작품을 설명하는 하정선 작가.

전시실에서 작품을 둘러보는 동안 하 작가의 작업을 옆에서 응원해주는 남편인 조 모(58)씨가 아내의 작품성과 작업과정의 어려움 등에 대한 차분하게 해설을 했다. 하나의 옻칠 작품을 만드는 데 몇 개월이 소요되며, 이번 전시 준비를 위해 작업을 너무 과도하게 하다 보니 눈앞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력이 저하됐고, 몸이 다 망가져 전시가 끝나면 당분간 입원치료를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획전을 다 둘러본 후 작가의 작업실(통영시 용남면 기호바깥길 7-45, 장문리 1005번지)로 일행은 이동을 했다. 바닷가에 위치한 작업실 앞에 자작나무 십여 그루가 수직으로 뻗은 수형과 매끈하고 하얀 표피를 자랑하고 있었다.

건물은 ‘휴 갤러리’란 이름으로, 2층에 작업실과 별도의 전시실로 구성돼 있었다. 필자는 작업실에서 옻칠회화 작업과정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수십 번의 공정을 거쳐야만 한다고 했다.

옻칠회화 작업은 일반 유화 작품과는 다르므로 캔버스도 작가가 창안해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고 했다. 작가는 회화작업을 위해서는 먼저 목태 캔버스를 제작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8단계로 정리했다.

①먼저 합판과 원목으로 백골을 만든다. ②사포로 백골을 다듬는다. ③ ‘생칠 바르기’로 붉은 생칠이 백골에 스며들어 수분 흡수를 방지하고 견고하게 되며 다음 칠 공정에서 접착을 용이하게 한다. ④‘곡수 메움’으로, 사포질을 한 후 나무의 흠이나 틈 자국을 곡수(합판과 원목으로 만든 백골과 같은 목분에 호칠 섞은 것)로 메운 후 건조시켜 면을 고르게 한다. ⑤‘베 바르기’로, 백골에 호칠(생칠1 + 찹쌀풀1)을 균일하게 바른 후 삼베를 바르고 그 위에 호칠을 발라 건조시킨다. ⑥‘고래 바르기’로 고르게 사포질을 한 후 삼베 골을 메우는 것으로 토회칠(생칠1 + 토분 물에 괸 것1)을 균일하게 메운다. ⑦그런 다음 사포질을 한 후 여섯 과정을 한 번 더 반복한다. ⑧사포질을 한 후 고르게 흑칠을 하는데, 세 번 반복해 마무리를 한다. 이상이 캔버스를 만드는 기본 작업이다.

하정선 작가의 기획전시실을 찾은 화개골차인들.

이제부터는 그야말로 옻칠회화 작업으로 다음과 같이 11가지의 과정을 또 거친다. ①사포질하기 ②스케치하기 ③아교 도포하기 ④나전 시문하기 ⑤아교 뭉개기(아교 빼기) ⑥생칠하기(칠면과 나전이 붙은 면 틈새를 충분히 스며들게 해 방수작용도 되고 접착력을 강하게 한다) ⑦사포질하기 ⑧원하는 색칠하기 ⑨나전 위에 색칠은 상사칼로 긁어낸다(작가가 원하는 만큼 7, 8과정을 반복한다) ⑩고운 사포질하기 ⑪광을 내 마무리하기

필자가 “이 과정을 혼자서 다 하느냐?”고 묻자, 하 작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제 혼자의 힘으로 한다”며 “실제로는 앞에 말한 것보다 훨씬 많은 작업 과정을 거쳐야만 하나의 작품이 탄생한다”고 말혔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기꺼이 감수한다”고 말해 작가로서의 치열한 프로정신을 엿보게 했다.

통영에 옻칠 작업을 하는 작가가 얼마나 있느냐고 물으니, 작가는 “현재 5명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대답했다. 그처럼 유화기법으로 옻칠작업을 하는 작가는 없다고 했다. 즉 그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화기법에 전통 나전칠기 옻칠기법을 응용하는 작가인 것이다.

하정선 작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중국이나 일본, 그리고 베트남 등에서도 옻칠 작업으로 조형화 하는 작가가 있지만 우리나라의 나전칠기 기법과는 다르다. 하 작가의 작업은 우리나라 옻칠회화의 선구자로 알려진 김성수 현 통영옻칠미술관장의 작업과도 다른 면모를 갖고 있다.

그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게 아니라 의외로 사학을 전공했다. “일찍부터 그림을 그려 미대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여러 사정상 그러지 못했지만 그림 그리기를 그만둔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남 여수에서 출생했으나 초등학교 3학년 때 통영으로 이주해 통영 출신으로 고향에서 공직생활을 하고 있는 남편을 만나 세계적인 옻칠회화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미술계에서도 가장 뛰어난 옻칠회화 작가로 알려진 하 작가는 그동안 여러 차례의 기획초대전을 가졌고, 2015년 베트남국립미술관에서 열린 ‘베트남-한국옻칠회화전’과 2016년 같은 해 중국 호북미술관에서 열린 ‘세계의 국제옻칠트리엔나레’ 등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그의 작품들에서 일반적인 미술작가들에게서 잘 드러나지 않는 인문학적인 깊이가 느껴지는 건 그러한 분야에 대한 소양과 지식이 바탕 돼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단순한 옻칠회화 작업에 그치지 않고, 동방대학원 대학교에서 옻칠조형 석·박사까지 수료하는 등 자신이 하는 작업의 수준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 지속적인 공부와 연구를 하고 있다.

휴 갤러리에 있는 하 작가 부부의 개인 차실에서 이들이 우려내주는 여러 가지 차를 마시며 바로 앞에 펼쳐진 바다를 실컷 보다가 일행은 늦게 화개골로 돌아왔다.

<시인·역사인문학자·인저리타임 편집위원 mass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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