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엄마 이야기 (93) - 엄마가 가장 못하는 한 가지

소락 승인 2021.04.15 21:47 | 최종 수정 2021.04.17 12:42 의견 0
엄마에게 무섭고 신기한 기계
엄마에게 무섭고 신기한 기계

소리에 대한 감각이 없으면 음치(音癡), 박자를 못맞추면 박치(拍癡)다. 춤을 못추면 무치(舞癡)일텐데 몸치라 하고 길을 모르면 로치(路癡)일텐데 길치라 한다. 그래도 백치(白痴)는 아니기에 정상인처럼 살아간다.

엄마는 음치, 박치도 아니고 몸치, 길치도 아니시다. 특히 길에 관해서는 거의 도사급이시다. 엄마는 지하철 2호선의 역명도 차례로 다 외우고 계실 정도다. 얼마 전 나도 못외우는 걸 엄마가 줄줄이 역명을 읊으실 때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 정도니 내가 어디 간다고 하면 어디서 환승하고 어떻게 가라며 다 일러주신다.

엄마는 매사에 똑똑하시다. 그런데 엄마에게 딱 하나 치인 점이 있다. 바로 엄마는 기계치(機械癡)다. 온갖 기계류에 관해서는 켜고 끄는 것밖에 모르신다. 핸드폰도 전자 기계에 속하는데 전화를 받고 거는 것밖에 모르신다. 핸드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든지 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엄마는 우선 그런 일에 대해서는 겁부터 먹으시며 아예 관심이 없으시다. 배우려는 의욕은 더욱 없으시다. 손으로 뭘 만드시고 하는 일은 탁월하게 잘 하시지만 기계로 작동되는 것에 대해서는 완전 모르쇠로 일관하신다.

막내딸 안나가 핸드폰으로 뭔가 사진을 보여주려고 하니까 엄마의 표정이 재미있다. 엄마의 찡그린 표정 속에 세상 모든 기계들에 대해 무서워 하는, 그러면서도 신기해 하시는 모습이 모두 담겨 있다. 아무튼 엄마는 똑똑한 기계치이시다.

<소락>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