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엄마 이야기 (94)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살던 인연

소락 승인 2021.04.16 13:52 | 최종 수정 2021.04.18 23:01 의견 0
아버지, 엄마, 하영이 엄마, 하영이 아버지
아버지, 엄마, 하영이 엄마, 하영이 아버지

1970년 전후 행당동 128번지에서 살던 한 지붕 두 가족의 부부가 모처럼 모였다. 평소에 전화 연락을 하고 사시며 집안의 경조사가 있을 때는 오고 가시는 사이다. 처음에 아무 사이도 아니고 그냥 한 집에 같이 살던 사이였는데 그 인연을 55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는 사실은 흔한 예가 아니다. 그냥 이사가면 인연이 끝나는 경우가 일반적이니 아주 특수한 경우다. 

이번 모임은 내가 엄마에게 제안을 해서 이루어졌다. <울 엄마 이야기> 책을 쓰려니 엄마의 지인들을 차례차례 만날 필요가 있었다. 가장 먼저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살던 하영이 아버지, 엄마를 뵙고 싶었다. 엄마는 내가 하영이 아버지 엄마를 만나 저녁을 사겠다고 하니 날더러 철났다고 말하시며 좋아 하셨다. 그리고 하영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흔쾌히 약속을 잡으셨다. 거한 만찬이 아니라 7000원짜리 야채 비빔밥 한 그릇 먹는 소박한 저녁이었다. 

두 분은 55년 전 모습 그대로였다. 건강한 모습이셨다. 83세인 하영이 아버지께서는 이 저녁 모임의 대화를 즐겁게 주도하셨다. 하영이 아버지 말씀을 들으니 울엄마가 왜 하영이 아버지를 늘 독일병정같다고 하신 이유를 충분히 알 것 같았다. 평안북도 정주라는 곳에서 중학교를 다니다 6·25 한국전쟁이 나자 그 어린 나이에 혼자서 부산까지 걸어서 내려 왔단다. 그렇게 살아오신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니 영화 <국제시장>에서 황정민이 주연한 주인공 덕수의 삶에 못지않게 파란만장했다. 참으로 대단하고 엄청난 이야기의 주인공 백상현 옹(翁)이시다.

난 하영이 아버지의 성함이 백상현이신줄 이날 처음 알았다. 하영이 엄마도 평안북도 선천에서 월남하여 하영이 아버지를 만나 열심히 살아 오셨다. 55년 전 그 때와 똑같이 활기차게 말씀하시는 하영이 엄마는 울 엄마보다 세 살 어리다. 그래서 울 엄마를 언니라 부르며 울 엄마가 덕을 베풀고 살아서 엄마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이라며 여러 번 강조하며 거듭거듭 말씀하셨다. 그렇게 엄마한테 하는 말씀이 아들로서는 너무너무 고마웠다. 하영이 아버지와 엄마도 역시 덕을 많이 베풀고 사신 것 같았다. 두 부부의 아름다운 우정이 오래오래 평생 이어지길 빌고 또 빌었다.

<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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