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인저리타임] 그 들길에 핀 봉숭아꽃 - leeum 김종숙
Le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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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8 09:58 | 최종 수정 2021.09.10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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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들길에 핀 봉숭아꽃
leeum 김종숙
지워지지 않는 굳은 마음 바래지라고
온종일 바람은 꽃잎에 구멍 뚫었나보다
빽빽하게 자라난 무거운 머리 헹궈 내라고
밤새 핏방울을 뚝뚝 흘렸나 보다
선홍빛 흔적 말라가라고
저녁노을은 들길에서 졸고 있었나 보다
별을 담고 달을 따던 길 끝 외등 아래
그립고 그리던 그 사람 만날 수 있을는지
서럽고 붉은 사랑
지나가던 낯선 이가 품어주니 초저녁이 황홀하단다
<시작노트>
며칠 전.... 1박2일 횡성 별빛 캠프장 옆
백 년도 넘었을 이끼가 낀 가물가물한 다리 위에서
어미 속을 채워주는 아이와 채움으로 출렁이는 어미가
가고 오는 계절 위를 나란히 걷다가 표지판을 보고서
이 길이 사유지임을 알았다
들어가지 말라는 안내문인데 무시하고 들어섰다
길 끝까지 한참을 올라갔을 때 봉숭아꽃 길을 만났다
장날 고무신 사러 간 오빠도 부르고
서울로 가신 소식 없는 오빠도 부르고
꽁주랑 구름 속에서 숨바꼭질하는 오빠도 부르고 (꽁주-강아지 이름)
신고 다니던 검정 고무신 한 짝 잃어버리고 다리 위에서 울고 있는 오빠도 불렀다
봉숭아꽃은 모두 제 오빠가 아니란다
그럼 누굴 기다리나요? 물었더니
한참을 콧물 눈물 흘리며 울기만 한다
서럽고 붉은 사랑
지나가던 낯선 이가 품어주니 황홀하단다
들길에 핀 봉숭아꽃이...
새벽 두시부터 토도 톡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아침이 되어서야 그쳤다
아 어젯밤 만난 봉숭아 그 아이가 궁금해졌다
세 시간을 설치했던 타프와 텐트를 순식간에 걷어 후다닥 정리해두고 우린 다시 그 길을 산책했다
순박하게 핀 봉숭아꽃을 다시 보다니
벌써 씨앗을 동그랗게 품은 봉숭아
봉긋 입술을 내민 봉숭아
바람이 다가오자 물방울 후드득 떨어졌다
아흐 이쁘다아
어머니 얼굴에 볼우물 생기겠어요..
들켰다 너무 웃었다 그래그래 볼우물
주름진 볼 우물 비비며
누렇고 비에 젖은 노트 한 권 들고 다리 위를 서성거렸다
하~~무엇이 이 아침을 설레게 하는가
어슬렁 어슬렁 산책하다 주워왔어요
◇Leeum 김종숙 시인은
▷2021 한양문학상 시부문 우수상 수상
▷문예마을 시 부문 신인문학상 수상(2020)
▷한양문학 수필 부문 신인문학상 수상(2020)
▷한양문학 정회원, 문예마을 정회원
▷시야시야-시선 동인
▷동인지 《여백ㆍ01》 출간
▷대표작 《별들에게 고함》 외 다수
▷기획공연- 다솜우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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