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인저리타임] 나무의 눈물 - 김종숙

Leeum 승인 2021.08.19 03:38 | 최종 수정 2021.08.20 15:39 의견 0

나무의 눈물 
                    김종숙

 

그는 푸른 유리 색 같은 파도를 보며 가슴이 뛴다 했다 
잿빛 하늘을 올려 보다가 풀 무덤 앞에 멈칫 섯다
바람 한 줄기 지나고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자 
막 핀 순비기 꽃이 옹알거리며 함덕 바위를 기어올랐다

그도 고흐 우산을 펼쳐들고 나에게 그리로 들어오라 손짓했다 
납작 엎드린 강아지풀 위로 물결이 나풀거렸다 
뽀얀 발등 위로 물방울 하나 톡 떨어지자 
그의 발아래 하트 모양의 작은 호수가 생겼다

밤이 가면 날이 오고 어둠이 가면 빛이 왔다
틈만 나면 기타 줄을 딩딩 댕댕 치며 곡조를 타 보다가
들어 줄 사람이 없어  손수건으로 구석구석 닦아놓고 벽 한구석에 세워놓았다
이층에서 내려다본 포도 넝쿨 사이로 빗방울이 들이쳤다

 
앗 누룽지 전복죽!   
어젯밤 놀러 온 친구가 알려준 대로 그가  좋아하는 전복죽을 끓였다
그를 듣고 싶었다 술을 마셔야 마음이 열리고 말도 많아진다는 것을 알기에
냉장고를 여는 순간 맥주를 바라보며 장난을 치고 싶었다

 
옛날 같으면  "서방님 점심상 올릴까요?" 부엌에서 말하면
사랑채에서 그래 술상 내오니라. 그랬을 조선시대 이야기가 귀에 닿았다 
아... 이건 아니다 아닌 것 같았다
반듯하고 단정한, 까칠한 그가 그럴 리가 천부당만부당이다

이틀 낮밤이 지나고 산을 넘고 해안을 돌아 우린 나무에게로 갔다
아 저기 있다 그가 먼저 마주쳤다  
차에서 내린 그는 휘적휘적 빠른 걸음으로 달음질쳐 갔다

 
어서들 오세요
앉아있던 새들이 합창을 했다

비가 내렸지만 나무는 그를 가려줄 수가 없었다
괜찮아요 하루에도 몇 번씩 호흡곤란으로 숨을 쉴 수 없어요
난 싱싱한 초록 이파리는 없지만 
해도 달도 가까이 볼 수 있고 
흰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있어도 부끄럽지 않아요
나무는 이미 바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가 나무를 꽉 안았다
나도  괜찮아요 이렇게 매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친구들이 매일매일 와 줄 거예요
저기 좀 보셔요  당신 보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니까요

 
그의 말에 나무는 울었다
멀리서 사진기를 들고 못 본 척 어슬렁 어슬렁 맴돌던 나도 슬펐다

 
아 소나기가 내렸다
나무를 지나 수도원에 도착하자 그와 나무가 서있던 쪽에 무지개가 떴다

芝室 김종숙

<시작후기>
여행후기를 써줬더니 스타리가 읽으면서 기행시라 했다가 어반시 스케치라했다가... 제주 여행 갔으니 망정이지 유럽여행갔더라면 영화 찍을뻔 ㅎㅎㅎ

◇Leeum 김종숙 시인은

▷2021 한양문학상 시부문 우수상 수상
▷문예마을 시 부문 신인문학상 수상(2020)
▷한양문학 수필 부문 신인문학상 수상(2020)
▷한양문학 정회원, 문예마을 정회원
▷시야시야-시선 동인
▷동인지 《여백ㆍ01》 출간
▷대표작 《별들에게 고함》 외 다수
▷기획공연- 다솜우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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