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룡 교수의 셰익스피어 이야기] 『햄릿』(1) 프롤로그 - '메멘토 모리' 뿌리찾기

김해룡 승인 2020.02.24 15:20 | 최종 수정 2020.03.28 16:45 의견 0

 

목차
☞프롤로그 - ‘메멘토 모리’의 뿌리 찾기
#한스 홀바인(Hans Holbein)의 아나모피즘
#바니타스 정물화(vanitas still lifes)
#종교개혁의 상황을 빗댄 은유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사후(死後)에 꿈을 꾸다니?
#햄릿, 죽다

프롤로그 - ‘메멘토 모리’의 뿌리 찾기

*어휘적 개념 memento mori : ‘죽음을 기억하라’(remember death)
혹은 ‘그대도 죽을 것임을 기억하라.’(remember that you will die.)

#scene 1

주요 인물 : 길가메쉬(Gilgamesh), 엔키두(Enkidu), 우트나피쉬팀(Utnapishtim)
장소 : 세계
때 : 2100-2000 BC. 길가메쉬의 이야기가 서사시로 기록된 시기.

신들이 인간에게는 필멸을 남기고 불멸을 독차지한 신화의 원뿌리는 『길가메쉬 서사시』(Epic of Gilgamesh)이다. 길가메쉬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화 속의 주인공이자 불멸을 추구했던 첫 인류이며 ‘메멘토 모리’의 계보학에서 선두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우르크(Uruk)의 수메르 도시국가의 왕이었으며 그의 이야기는 점토판에 새겨져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길가메쉬를 표현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아시리아 입상. [Louvre Museum / CC BY-SA 3.0]

3분의 2는 신이고 3분의 1은 인간인 길가메쉬 왕이 친구 엔키두(Enkidu)의 죽음을 지켜보며 자신도 죽어야할 운명에 처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이에 불멸의 비밀을 아는 것으로 알려진 우트나피쉬팀(Utnapishtim)을 만나기 위해 지구 끝까지 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우트나피쉬팀은 신들이 자행했던 대홍수 이후에 홀로 지상에 살아남아 신들로부터 불멸을 선물 받은 반신(demi-God)이다. 이 홍수는 이후에 노아의 방주로 각색되어 성서에 기록된다. 왕이 천신만고 끝에 죽음의 강을 건너 우트나피쉬팀을 만난다. 그가 겪은 천신만고 중에는 하늘의 황소’(Bull of Heaven)와 숲의 괴물 훔바바’(Humbaba)를 죽인 무용담이 포함되어 있다(Tablet ). 그러나 생사를 오간 후에 반신(半神)에게서 얻은 답은 냉혹하기 짝이 없는 경구였다.

그대가 찾는 생명을 그대 결코 찾지 못하리.
신들이 인간을 창조할 때 죽음을 인간들에게 나누어주고
생명은 신들 자신을 위해 남겨 놓았다네.

(The life that you are seeking you will never find.
When the gods created man they allotted to him death,
but life they retained in their own keeping.)

길가메시 서사시가 기록된 점토판. [위키피디아 / Osama Shukir Muhammed Amin FRCP(Glasg) / CC BY-SA 4.0]

절망에 빠진 길가메쉬에게 대홍수의 자초지종을 전해준 인간신 우트나피쉬팀이 길가메쉬에게 불멸의 기회를 제공한다. 조건은 이러하다. 불멸의 존재가 되기 위해 ‘죽음의 강’(Waters of Death)가에 앉아 여섯 날 일곱 밤을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강은 후에 그리스 신화에서 스틱스[styx]로 개명된다.

길가메쉬가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강가에 앉는 순간 잠에 빠져 여섯 날 일곱 밤 만에 깨어나 이 기회를 놓친다. 깨어있어야 할 시간과 잠든 시간이 일치한 것은 불멸의 기회가 완벽하게 사라졌음을 드러내는 은유이다. 인류에게 안긴 재앙을 피할 기회를 길가메쉬가 날려 버린 셈이다.

다시 죽음의 공포와 절망에 빠진 길가메쉬를 가엾게 여긴 우트나피쉬팀의 아내가 남편에게 길가메쉬에게 불멸을 허용하라고 간청한다. 이에 우트나피쉬팀이 길가메쉬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지만 이번에는 불멸 대신 회춘의 기회다. 이 반신이 그 마법의 약초가 있는 곳을 알려주었고 길가메쉬가 이를 찾아낸다. 그러나 느닷없이 길가메쉬가 약초의 효험을 믿지 않는다. 대신 고국에 돌아가 늙은이로 하여금 먼저 먹도록 하겠노라며 약초를 보관하던 중 뱀이 이를 먹어버린다.

불멸을 얻기 위한 길가메쉬의 기나긴 여정은 허무하게 끝나고 인간은 죽음을 영원히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이야기 말미에 등장한 뱀은 몇 세기 후 에덴동산에서 역할을 바꾸어 다시 등장한다.

#scene 2

주요인물 : 헤파이스토스 및 올림포스의 제신들
장소 : 올림포스
때 : BC 630

길가메쉬 이후 13-4세기가 흘렀다. 그 사이 한 번 선고 받은 인간의 운명에는 변함이 없었다. 따라서 새로 등장한 제우스신에게 인간의 죽음 따위는 당연히 관심사가 아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Ilias) 제1권에 인간 운명의 실체가 기록되었다. 제우스와 아내 헤라 여신 사이에 다툼이 벌어지자 대장장이인 아들 헤파이스토스(Hephaistos)가 개입해 소동을 잠재우고 만신들의 향연이 시작된다. 헤파이스토스가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신주’(神酒)(1.598)를 따르고 신들은 해질 때까지 술 취해 노래하고 춤추고 즐긴다. ‘신주’로 번역된 ‘넥타르’(nectar, νέκταρ)는 신들의 자양분(the specific nourishment of the gods)이며 ‘죽음을 극복하는 음료’(that which overcomes death)이다.

이 주연에 참여하기 바로 전까지 은궁(銀弓)의 신 아폴론은 활로 그리스 전사들을 무수히 죽였다. 사연은 이러하다. 아폴론을 섬기는 사제(司祭) 크리세스의 딸을 아가멤논이 포획하고 범했다. 이에 사제가 아가멤논의 진영까지 찾아와 딸을 돌려달라고 호소하나 아가멤논이 듣지 않는다. 사제가 억울함을 올륌포스에 있는 아폴론에게 토로했고 그 즉시 아폴론이 올륌포스 산정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그리스 진영을 향해 화살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 살상행위는 아흐레 동안 계속되었고 무수한 그리스 전사들이 죽어 나갔다.

그 아폴론이 조금 전 시위를 당겼던 손으로 이 향연에서 수금을 타며 노래한다. 호메로스가 이 신들이 부른 노래의 노랫말을 『일리아스』에 기록하지 않았다. 다행히 이 노랫말을 유추할 수 있는 노래가 존재한다. 호메로스의 이름을 빌었으나 작자미상의 서정시 <아폴론에게 바치는 호메로스식 찬양>(Homeric Hymn to Appollo)이 바로 그 노래이다.

이어, 그(아폴론)는 생각만큼 민첩하게 지상에서 올림포스로 내달아
제우스의 거처에 당도하여 제신들이 모인 곳에 합류하도다.
그때에 불멸의 신들의 마음은 지체 없이 칠현금과 노래에 심취하며
모든 뮤즈 신들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제신들이 즐기시는 불멸의 선물을,
또한 불멸의 신들의 손에 붙잡혀 인간이 겪는 고통과,
인간들이 지혜도 도움도 없이, 죽음의 치유책은 물론,
노쇠를 막을 방도도 찾지 못한 채 어찌 살아가는지를 노래하노라.

Thence, swift as thought, he speeds from earth to Olympus,
to the house of Zeus, to join the gathering of the other gods:
then straightway the undying gods(ἀθανάτοισι θεοῖσι) think only of the lyre and song,
and all the Muses together, voice sweetly answering voice, hymn the unending gifts
the gods enjoy and the sufferings of men, all that they endure
at the hands of the deathless gods, and how they live witless
and helpless and cannot find healing for death or defence against old age. (186-93)

Guillaume Coustou the Younger / Public domain
헤파이스토스 석상. [wikipegia / Jastrow / Guillaume Coustou the Younger]

이 노래의 주제는 신들의 불멸과 인간 조건의 처절함이다. 신들이 인간들에게 하사한 선물은 삶의 고통이고 이 고통은 노쇠와 죽음으로 그 정점에 이른다. 따라서 인간의 고통을 감상하는 신들은 인간들에 대해 얼마든지 경박할 수도, 인색할 수도 있는 것이다.

# scene 3

주요 인물 : 소크라테스와 파이돈(Phaedo) 및 추종자들
장소 : 소크라테스가 갇혔던 아테네의 감옥 뜰
때 : 기원전 5세기, 아테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421)에서 패한 직후, 소크라테스가 독당근 즙을 마시기 며칠 전.

Phaedo(그리스어의 철자법으로 Φαίδων [Phaidōn] ‘파이돈’[pʰaídɔːn]으로 발음)은 플라톤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대화(Dialogue)편이다.

소크라테스가 친구 파이돈을 상대로 영혼의 불멸과 육신의 죽음에 관해 대화를 나눈다.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철학자가 육신의 감각과 욕구 대신 진정한 진리와 지혜를 추구한다면 죽음에서 그것들에 가장 근접할 수 있다.

삶속에서는 영혼의 이성적, 지적 기능들이 쾌락, 고통, 소리, 시각 등의 육체적 감각에 의해 제약받기 마련이다. 그러나 죽음은 육신의 ‘감염’으로부터의 정화의 의식이다. 따라서 철학자가 전 생애에 걸쳐 죽음을 실천하면 죽음이 근접할 때 낙담하지 않고 호의적으로 맞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신이 우리 삶속에 창조한 모든 것은 선한 것이기에 죽음이 왜 이 ‘선의 지속’(continuation of goodness)일 수 없겠느냐는 것이다. 그가 강조하건대, 철학의 온전한 실천은 오로지 죽음을 겨냥해야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로 인해 허무와 공포만 양산하던 죽음이 철학의 영역에 들며 수용의 대상으로 승격했다.

# scene 4

주요 인물 : 유대 민족, 프란시스코 수도사
때 : 유럽, 중세에서 빅토리아 여왕 시대(1837-1901)까지

기원후 1세기 이후부터 유대민족의 지혜의 보고(寶庫)인 토라와 경전들이 가톨릭이라는 신앙 방식을 통해 서양문명의 중심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 기독교 문헌들과 함께 죽음에 관한 인식은 인류 보편적 주제로 부상했고 죽음은 지혜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기독교의 핵심적 구성 요소들인 심판, 천국, 지옥, 영혼의 구원 등은 ‘죽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위성(衛星)들이다. 이로 인해 ‘메멘토 모리’를 구현한 대량의 유무형의 관념 및 예술품들이 창조되었다.

B.C. 200-175년 사이에 히브리어로 기록된 『전도서(Ecclesiasticus)』는 죽음의 의미를 가장 쉬운 어법으로 가르쳤다.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상갓집에 가는 것이 잔치 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7:1-2)

이어 이 지혜의 서(書)는 헛되고 헛된 삶에 지친 인류를 위무하는 일에도 무심하지 않았으니,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9:9)

라며 앞으로 당할 일에 대한 보상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생겨난 죽음을 기억하기 위한 유형의 기념물에는 아래의 것들이 있다.

에보라 지역 '뼈들의 교회'(Évora Capela dos Ossos) 내부. [wikipedia / Dicklyon / CC BY-SA 4.0]

●‘뼈들의 교회’(Chapels of Bones). 교회의 벽들이 전체 혹은 부분적으로 뼈들로 채워진 교회가 지어졌다. 포르투갈 에보라(Évora)에 있는 ‘카펠라 도스 오소스’(Capela dos Ossos [Chapel of Bones])가 대표적이다. 프란시스코 수도사들이 수 십 여개의 교회당 묘지들에서 발굴한 5000구의 시신 잔해들을 시멘트로 고정시켜 벽면과 여덟 개의 기둥을 장식해 이 교회를 지었다. 시신들은 대규모 전쟁에서 죽은 군인들, 혹은 역병으로 동시에 죽은 자들의 시신으로 추정되었으나, 정밀한 고증에 의해 에보라 지역의 중세 공동묘지에 묻힌 서민들의 시신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교회당 천장에는 전도서 7장1절이 새겨 졌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Better is the day of death than the day of birth).

교회당 입구에는 ☞ 사진 보기
우리 뼈들은, 여기 벗은 채 누워, 그대의 뼈를 기다리나니
(We bones, lying here bare, await yours.)
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 ‘뼈들의 교회’ 내부 기둥에 매달려 있는 오래된 나무틀 속에 새겨진 시 한 편.

어디를 그리 서둘러 가시는가 여행자여?
멈추시게, 더 나아가지 마시게.
이곳, 그대의 시선 멈춘 이곳보다 더
그대의 관심을 끄는 것은 없을 터이니.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났는지를 상기하시라.
그대의 유사한 최후를 성찰하시라.
모든 이들이 다 그리하면
숙고할 명분이 되리니.

생각하라. 그대, 운명에 매인 자여
세상의 많은 일들 중
그대, 죽음을 그리도 유념치 않다니.

그대 우연히 이곳을 보면,
멈추시게, 그대의 여정을 위함이니,
쉼이 깊을수록, 그대 더 전진하리라.

Where are you going in such a hurry traveler?
Stop … do not proceed;
You have no greater concern,
Than this one: that on which you focus your sight.

Recall how many have passed from this world,
Reflect on your similar end,
There is good reason to reflect
If only all did the same.

Ponder, you so influenced by fate,
Among the many concerns of the world,
So little do you reflect on death;

If by chance you glance at this place,
Stop … for the sake of your journey,
The more you pause, the more you will progress.

‘죽음의 춤’(Danse Macabre). 그림. 15세기 프레스코(fresco)화.[Wikipedia / Gallery of Slovenia]

‘죽음의 춤’(Danse Macabre). ‘memento mori’를 실현한 그림 중의 하나이다. 죽음의 신(Grim Reaper)이 빈부와 삶의 단계의 정도를 구분하지 않고 인간들을 죽음의 춤으로 유도하는 15세기 프레스코(fresco)화.

프랑스 작곡가 까미유 생상스(Camille Saint-Saëns 1835-1921)는 이 그림들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받아 [Danse Macabre, Op. 40]을 작곡했다(1874년).

●스코틀란드 여왕 메리(Mary, Queen of Scots, 1542.12.08–1587.2.08)가 소유했던 시계. 은으로 된 해골의 형태에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Quintus Horatius Flaccus)의 싯귀가 새겨져 있었다. “창백한 죽음은 가난한 자의 오두막집이나 왕들의 탑을 같은 속도로 두드리나니.”(Pale death knocks with the same tempo upon the huts of the poor and the towers of Kings.) 이 여왕의 반지에는 해골의 이미지가 새겨져 있었고, 귀족계급은 이런 형태의 장신구들로 자신들의 신분을 과시하는 풍조를 일정 기간 이끌었다.

●‘시신을 드러낸 무덤’(cadaver tomb): 전면(前面)이 죽은 이의 유해를 묘사하는 부조(浮彫)로 장식된 무덤으로 15세기 유럽의 부유층 사이에 유행했다.

‘시신을 드러낸 무덤’(cadaver tomb): 죽은 이의 유해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무덤 전면(前面). 15세기 유럽 부유층 사이에 유행.[fig. 4]
'시신을 드러낸 무덤'(cadaver tomb) : 죽은이의 유해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무덤 앞면. 15세기 유럽 부유층 사이에 유행.
[Nabokov at English Wikipedia / CC BY-SA 3.0]​​​​​​.

왜 ‘메멘토 모리’이며 햄릿과는 무슨 관련이 있는가?

온전한 인간은 ‘선한 품성들로 채워진 인격체’를 이루기 위한 과제들을 예나 지금이나 공유한다. ‘초연함과 함께 여러 덕성들을 익히고 배양하는 삶,’ ‘영혼과 내세의 불멸에 관심을 집중하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 과제들을 수행함에 있어 금욕적 고행이 수반되어야 하며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금욕적 고행의 바탕을 이루는 의식 활동인 것이다.

『햄릿』을 이야기하기 전에 필요 이상으로 먼 과거를 살폈다. 인간의 정신은 역사의 집적물임을 믿기 때문이다. 위의 의문이 다음 회부터 서서히 걷히기를 바라며...

<전 한일장신대 교수 / 영문학 박사(셰익스피어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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