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룡 교수의 셰익스피어 이야기] 『햄릿』(5) 종교개혁의 상황을 빗댄 은유㊤

김해룡 승인 2020.04.08 11:33 | 최종 수정 2020.04.08 17:18 의견 0
Francis Bergman / Public domain
햄릿을 연기하는 존 배리모어. 1922. [Francis Bergman / Public domain]

목차
#프롤로그 - ‘메멘토 모리’의 뿌리 찾기
한스 홀바인(Hans Holbein)의 아나모피즘
☞#종교개혁의 상황을 빗댄 은유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사후(死後)에 꿈을 꾸다니?
#햄릿, 죽다

한스 홀바인은 2인 초상화 〈대사들〉을 1533년에 그렸다. 헨리 8세와 두 번째 왕비 앤 볼린 사이에서 엘리자베스가 태어난 해이다. 헨리 8세와 교황청간의 결별을 봉합해 보려는 그림 속 두 대사의 노력은 실패로 끝났다. 헨리 8세의 프로테스탄트 국교회(English Protestant Church, Anglican Church) 설립은 피할 수 없는 역사적 흐름이었다. ‘메멘토 모리’가 자신의 삶의 지표였던 당뜨빌은 사선(斜線)으로 늘여진 두개골이 그려진 이 그림을 프랑스로 옮겨 자신의 폴리시 성(Chateau de Polisse) 내부 벽에 걸었다. 이후 이 그림은 18세기말까지 프랑스 국경을 넘지 않는다.

『햄릿』은 1601년에 쓰였다. 엘리자베스 여왕(1533-1603, 재임 1558-1603)이 왕위에 오른 지 43년째 되던 해이다. 〈대사들〉과 『햄릿』 사이에 68년의 간극이 있다. 두 세대가 흘렀다. 『햄릿』이 초연되던 1601년에 셰익스피어를 비롯해 〈대사들〉을 목격한 영국인은 아무도 없다. 그림이 프랑스로 옮겨간 지 68년째이니 당연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사들〉의 메시지인, ‘메멘토 모리’를 표방하는 시대정신이 두 세대를 건너 『햄릿』에 전달되었다. 다음 회에서 이를 살펴 볼 것이다.

르네상스 화가들이 두개골과 같은 원색적이고 조야한 오브제를 비틀거나 노골적으로 전면배치하여 산 자들에게 각인시키려했던, 만인이 공인(公認)하지 않을 수없는 화두(話頭) ‘메멘토 모리’. 이 화두는 죽음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으로 인해 유럽인들에게는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서민들의 흙과 같은 삶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중세 성직자들도 민중들이 죽음을 쉽사리 받아들이도록 구약 「전도서」의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를 가르친 것이다.

또한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 절기 때마다 민중들은 재를 머리에 뿌린 채 “인간들은 기억하라. 너희들은 먼지며 먼지로 돌아갈 것이니라.”(Remember Man that you are dust and unto dust you shall return.)를 읊조리고 영혼에 인각시킨 것이다. 중세인들은 전쟁과 역병으로 인한, 지천에 깔린 주검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메멘토 모리’는 이 허망함을 자양분 삼아 자생된 화두였던 것이다.

[Fig.1] 〈죽음의 승리〉(The Triumph of Death) Pieter Bruegel the Elder의 1562년 작품. 해골의 군대가 땅과 인간을 황폐화시키는 그림. 오른 쪽 하단에서 나는 악기 소리도 곧 멈출 것이다. (Public Domain)
〈죽음의 승리〉(The Triumph of Death) Pieter Bruegel the Elder의 1562년 작품. 해골의 군대가 땅과 인간을 황폐화시키는 그림. 오른 쪽 하단에서 나는 악기 소리도 곧 멈출 것이다. [Public Domain]

이 화두를 소통시키는 여러 소통의 주체/객체들과 방식들이 있다. 가령 앞서 서술한대로, 그림 속의 퀭하게 뚫린 눈구멍의 해골과 그림 감상자가, 또는 산 자와 산 자가, 죽어가는 자와 산 자가, 언어로 혹은 무언(無言)으로 이 화두를 나누는 것이다. 방식에 따라, 또한 그것의 파괴력에 따라 우리에게 각인되는 정도에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셰익스피어가 햄릿에서 시도한 ‘죽은 아버지의 유령이 살아있는 아들에게’ 전한 이 화두가 아들에게 인각된 정도가 어떠할까?

● 비텐베르크(Wittenberg)

조국 덴마크를 떠나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Wittenberg)에서 ‘학업’하느라(1.2.112), 그리고 사유의 방식을 배우느라 골몰하던 햄릿에게 부왕(父王)의 부음(訃音)이 전달된다. 먼 길을 달려 왕궁 엘시노(Elsinore) 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장례가 치러진 후였다. 연이어 왕실의 관례와 규범을 벗어난 괴이한 일들이 전개된다. 적자(嫡子) 햄릿이 건재함에도 햄릿의 삼촌 크로디어스(Claudius)가 이미 왕좌를 차지하고 있다. 겉으로는 햄릿이 부왕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이유만으로 삼촌이 조카의 왕좌를 찬탈한 셈이다. 더 괴이한 일이 벌어진다. 장례 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왕비인 햄릿의 어머니가 시동생인 새 왕과 재혼을 한 것이다. 거기다 이 왕위찬탈자는 조정 대신들의 ‘시종일관한 충고’에 따라 이 결혼을 치렀노라고 선언한다.

왕. ... 마침내 과인은 지혜롭게 슬픔을 극복하고 그 분을 추모하는
동시에 우리가 당면한 일도 함께 염두에 두게 되었소.
그런고로 과인은 지난날에는 과인의 형수였던 현 왕비를
상무의 기개가 넘치는 이 나라를 함께 다스릴 반려로
삼게 되었으니, 이는 마치 망가진 기쁨을 품고
한 눈에는 환희, 또 한 눈에는 눈물을 머금고,
장례식에는 축가, 결혼식에는 진혼곡을 부르듯,
슬픔기쁨을 저울질하면서
아내로 맞이한 것이오. 이 일에 있어서 과인은 경들의
지혜로운 충고를 막지 않았던 바, 이 일에 시종일관
경들은 쾌히 찬동해 주었소.
(1.2.6-16)

모든 신하들을 이 결정에 연루시킴으로 새 왕은 이 결혼의 도덕적 책임에서 벗어나 있다. 부왕의 죽음의 원인을 알기 전이기에 정작 햄릿이 진저리치며 그의 사념의 공장을 가동시키는 대상은 그의 어머니이다. 이 어머니가 “추악하기 이를 데 없는 속도로 능숙하게 근친상간의 잠자리에 뛰어 든”(O most wicked speed! To post / With such dexterity to incestuous sheets!)(1.2.156-7) 것이다. 햄릿의 첫 독백은 어머니에 대한 혐오로 채워져 있다.

● 햄릿의 첫 독백(First Soliloquy)

햄릿. 아, 이 지긋 지긋하게도 더럽혀진 이 육신은
녹고 풀어헤쳐져 한 방울 이슬로 변하든지,
아니면 하나님¹이 자살을 금하는 계율을
정하지 말았어야 했다. 오 신이여! 신이여!
이 세상만사 일상이 나에게는 하나같이 황량하고
진부하고 생기 없고 무익한 것으로 보일 뿐이다!
아 빌어먹을, 빌어먹을, 세상은 제 멋대로 자라 열매 맺는
잡초 무성한 정원일 뿐. 태생이 썩고 조악하기만 한 것들이
정원을 온통 차지해버렸다. 이 지경까지 돼버리다니!
승하하신지 겨우 두 달—아니, 그에 못 미쳐, 두 달이 아니지—
그토록 탁월한 국왕이셨는데, 그 분을 이² 자와 비(比)하는 것은
태양신³을 괴물 쌔터⁴에 비하는 것. 어머니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바람조차도 어머니 얼굴을 거칠게 스치면
허용치 아니 하셨잖은가. 아 도대체,
내가 이 일을 기억해야 하는가? 하, 어머님도 아버님께 매달리셨다.
사랑은 마치 먹을수록 더 큰 식욕이 솟구치는
것과도 같았다. 그러나 한 달도 못돼—
그에 대한 생각은 그만—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라.—
한 달도 못 넘기고, 온통 눈물범벅으로 통곡하던 니오베
같이,
불행한 아버지 운구를 따라가던 그 신발이 닳기도 전에—
도대체, 어머니가—아 하느님, 사유의 능력이 결핍된 짐승일지라도
훨씬 더 오랫동안 상심했을 터인데—숙부와 결혼해버리다니,
내 아버지 동생이지만—내가 허큘리스에 범접할 수 없듯
내 아버지에겐 어림도 없는 자이다. 한 달도 채 못 넘기고
가장 거짓된 눈물의 소금기가
채 그녀의 붉게 충혈된 눈망울들에서 가시기도 전에
어머니가 재혼을 하다니—아 지독히도 추악한 속도다! 그렇게
화급하게 근친상간의 이부자리로 뛰어들다니!
(1.2.129-157)

햄릿은 이 독백으로 관객들에게 자신의 뿌리 깊은 우울증과 절망의 원인들을 토로한다. 삼촌과 어머니에 대한 정제되지 않은 혐오, 분노, 그리고 그로인한 슬픔들을 쏟아내며 햄릿은 세상 모든 것들이 헛되고 경멸스럽다고 개탄한다. 그의 언어에는 '진부하고 생기 없고 무익한' 일상, 그리고 '썩고 조악'한 것들이 배어들었고, 세상은 '잡초 무성한 정원'(an unweeded garden)(1.2.135)일 뿐이다.

햄릿은 부왕을 향한 어머니의 농익은 사랑의 이미지로 고통당하고 있다. 그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사랑을 갈망했던 것은 가식(假飾)이었으며 사실은 어머니 자신의 육욕을 채웠다고 믿는다. 햄릿의 생각에 부왕이 승하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시동생과 재혼한 것은 이 육욕의 실체를 공포한 것이다. 햄릿은 운구 행렬 뒤에서 어머니가 흘렸던 눈물도 '가장 거짓된 눈물'(most unrightuous tears)(1.2.156)이었다고 의심 없이 단죄해 버린다.

독자들을 향한 직접화법의 시간이다. 혹시, 이 근거도 없고 진부한 가부장적인 괴이한 선언,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라.”(Frailty, thy name is woman)(1.2.146)를 들으면서 여성에 대한 연민의 정을 느끼는 독자가 있다면 그 연민은 이제 거둬야 할 일이다. 문맥상 이 선언은 여성에 대한 동정이 아니라 비난이다. 이 선언은 정조 의식의 박약으로 인해 욕구충족에 거리낌 없는 어머니, 그리고 여성 전체에 대한 경멸적 힐난인 것이다. 그럼에도 연민의 정이 유지되는 독자는 철두철미 박애주의자이거나 맹목적 이론으로 중무장한 탁월한 여성주의자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선언이 편파적이고 문제적인 것은 욕정을 채우기에 혈안이 된 남성을 향해 우리는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남자이니라.”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 『햄릿』 3막 4장

이야기를 건너 뛰어 3막 4장으로 가자. 이 장(場)에서 햄릿은 어머니의 이마에 창부(娼婦)의 화인(火印)을 찍는 듯한 공격을 해댄다. 어머니를 향한 적개심과 경멸감이 첫 독백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격렬하다. 하지만 독자들이 이 격렬한 정서를 이해는 하되 매몰되어서는 안 될 이유가 있다. 어머니를 향한 햄릿의 적개심과 영국 종교개혁의 상황이 만들어 내는 세기적 은유를 읽어 내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맥을 이해하기 위해 3막 2장을 잠시 살피면 이러하다. 유랑극단이 햄릿의 요청으로 궁중 연회장에서 〈쥐덫〉 혹은 〈곤자고의 살해〉라는 극중극을 공연했다. 관객은 햄릿을 포함하여 현왕과 왕비, 오필리어, 학창 시절에 배우로 활동했던 오필리어의 아버지 폴로니어스, 햄릿의 친구 호레이쇼 등 극의 주요 인물들이다. 이 극중극에는 현왕 크로디어스가 선왕을 살해했던 장면과 똑같은 장면이 연출된다. 극을 관람하던 중 죄의식을 느낀 크로디어스가 퇴장하고 연극은 도중에 끝난다. 공연 중에 현왕의 반응을 살폈던 햄릿은 현왕이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임을 확신한다. 호레이쇼는 왕의 동요를 목격하는 증인의 역할을 했다.

3막 4장의 장소는 왕비 거트루드의 내실이고 무대 중앙에 죽은 선왕과 현왕 크로디어스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 있다. 이 장면은 오필리어의 아버지 폴로니어스의 주도로 마련된다. 〈쥐덫〉 공연으로 인해 왕이 격노했으니 왕비가 햄릿을 불러 호되게 꾸짖으라고 폴로니어스가 왕비에게 요청한 것이다. 폴로니어스 자신은 왕비의 꾸짖음과 햄릿의 반응을 들어 보기 위해 휘장 뒤에 숨는다. 왕비의 호출을 받은 햄릿이 등장하고 모자 간의 대화가 시작된다.

이 꾸짖음은 애초부터 어불성설이다. 공격의 주도권은 햄릿에게 쉽사리 넘어간다. 모자 간에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이 소리에 놀란 폴로니어스가 휘장 뒤에서 인기척을 낸다. 순간 반사적으로 햄릿이 칼을 빼 휘장 안의 움직이는 물체를 찌른다. 휘장을 걷자 폴로니어스가 죽어 있다. 누구의 시신인지를 확인한 후의 햄릿의 반응이 이러하다.

햄릿. ...그대 천박하고, 경망스럽고, 남의 일에 끼는 광대, 잘 가시라.
그대를 그대의 상전인 줄 알았다. 운명으로 받아들이시게.
(3.4.31-2)

햄릿이 말하는 ‘그대의 상전’은 현왕을 말한다. 그 찰나에 찌르는 대상이 왕이라고 여긴 것이다. 세계 연극사에 찬연히 빛을 발하는 『햄릿』의 주인공이 터미네이터의 무감각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복수극의 범주에 드는 『햄릿』이지만 설사 왕을 찔렀다하더라도 이 살해는 복수 축에 들 수 없다. 우발적 살인인 것이다. 극을 망치는 사건이 벌어질 뻔 했다.

휘장 뒤에 숨어 햄릿과 왕비의 대화를 엿듣다가 살해당하는 폴로니어스. (CC BY-SA 4.0)
휘장 뒤에 숨어 햄릿과 왕비의 대화를 엿듣다가 살해당하는 폴로니어스. [wikipedia/CC BY-SA 4.0]

독자들이 햄릿의 무감각을 이해할 수도 있다. 상상력을 발휘해 염탐당하는 자의 심리를 이해하면 된다. 1970년대 이 땅의 빅 브라더(Big Brother)가 자행한 염탐행위에 10여 년 동안 표적이 되었던 필자의 경험으로 말하자면 햄릿이 행하는 비상식적 언행은 염탐 당함으로 인한 분노와 복수심의 발로이다. 이 분노와 복수심에는 더러 경계가 없다. 이 분노와 복수심으로 햄릿은 극의 후반부에 왕에게 염탐꾼으로 고용된 자신의 순진한 두 친구 로젠크란쯔(Roznecrantz)와 길덴스턴(Guildenstern)을 죽게 만든다.

이 휘장 사건으로 햄릿은 자신이 염탐당하고 있음을 절감한다. 그리고 이 염탐을 지시한 인물이 어머니라는 사실에 경악한다. 황망 중에 왕비가 자초지종을 설명할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다. 어머니를 향한 햄릿의 공격이 비상식적인 것은 염탐 당함으로 인한 분노가 어머니에게 품었던 경멸감에 불을 지폈기 때문이다.

자, 유화 〈대사들〉의 전면에는 해골이 숨겨졌고 왕비의 내실 휘장 뒤에는 시신이 방치되었다. 이 내실의 분위기는 숨겨진 시신이 만든다. 시신이 방치된 그 휘장 앞에서 햄릿이 어머니 거트루드에게 가장 모욕적인 윤리강론을 펼친다. 인류가 결코 다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장면일 것이다. <계속>

김해룡 교수
김해룡 교수

# 1. Everlasting : 하나님을 일컫는 호칭 중 하나. 
2. 크로디어스
3. Hyperion :
 하이페리온. 태양과 달과 새벽의 아버지, 혹은 태양신. 명예와 덕성과 왕위를 상징
4. Satyr :
 반인반마의 괴물. 디오니서스(Dionysus)에게 시중들고 주색을 즐김. 남자 얼굴에 염소 다리와 발을 가졌고 머리엔 짧은 뿔이 있고 온 몸은 털로 덮여 있음. 호색과 탐닉의 상징.
5. Niobe
. 7남7녀의 자녀를 둔 니오베가 활의 신 아폴론과 활의 여신 아르테미스밖에 낳지 못한 레토(Leto) 여신에게 다산을 자랑하다 레토의 아들 딸이 쏘는 화살에 자녀를 다 잃고 슬픔을 이기지 못해 바위로 변함. ''슬피우는 여인'sorrowing woman)의 상징.

<전 한일장신대 교수 / 영문학 박사(셰익스피어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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