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계속해서
과학 인사이드 이어갑니다.
과학스토리텔러,
웹진 인저리타임의 조송현 대표와 함께 합니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Q1. 자, 지난주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를 다룰 때도 그랬고..
이전에도
이 이름이 계속 등장을 했어요.
자, 오늘은 닐스 보어가
주인공이라구요?
닐스 보어의 상보성 원리로
넘어가기 전에
자.. 양자론의 아버지,
닐스보어부터
만나볼까요?
-> 네. 오늘 다룰 상보성 원리의 창안자가
바로 닐스 보어예요.
상보성 원리 이전에
이 이름을 빼 놓고는
양자론 얘기가
성립이 안 될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고..
말씀해주신 것처럼..
양자론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분이
바로 닐스 보어 입니다.
Q2. 어떤 대단한 일을 했길래..
'양자론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었을까요?
-> 네. 닐스 보어는
몰라도 이 분이 만든
원자 모형은 학교 다니면서
다들 접해보셨을 거예요.
전자가 원자핵 주위의 일정한
궤도를 따라 운동하는 형태의
이른바 보어 원자 모델을
제안했구요.
이처럼 입자가 특정 위치,
혹은 궤도에만
존재해야만 한다는 아이디어가
양자화 개념의 기초가 됩니다.
또 그 유명한 코펜하겐 학파의
리더로서
양자역학의 표준해석인
'코펜하겐 해석'을 주도했구요.
이로써
상식과 직관에 반하는
양자론의 철학적 개념적
토대를 완성한 인물이
바로 닐스 보어입니다.
보어의 철학을 살펴보는 것..
양자론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Q3. 대중적인 인지도는
비할 바 아니지만..
과학계 안에서는
그 유명한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자주 비교되는 걸출한 스타였다구요?
-> 네. 두 사람은 약간 상반된 스타일이죠.
아인슈타인이 유아독존형 천재라면
보어는 리더형 천재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보어의 생애를 살펴보면
재밌는 대목이 많은데요.
보어는 아인슈타인보다 6년 뒤인
1885년 10월 7일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크리스티안 보어는
당시 코펜하겐 대학의 생리학 교수였고,
어머니는 유태계 은행가의 딸이었습니다.
보어의 집은
늘 아버지의 지식인 친구들로
북적였는데..
자녀들도 이런 지적인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겠죠.
아주 똑똑한 아이들로
성장을 합니다.
Q4. 보어 뿐만 아니라, 동생도
유명한 학자였다구요?
-> 예, 두 살 아래의 동생 하랄드 보어인데,
만약 노벨상에 수학이 포함되었다면
수학노벨상을 받았을 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뛰어난 수학자였다고 합니다.
근데 이들 형제는 어린 시절부터 쌍둥이처럼
저희들만의 ‘오붓한’ 세계를 만들었습니다.
둘은 무엇을 하든 함께 행동하여
‘분할 불가의 닐스, 하랄드’로 불렸다고 합니다.
하랄드는 상식과 위트가 풍부할 뿐만 아니라
스포츠에도 능해
덴마크 축구 올림픽 대표선수로도 활약했고요.
민첩하고 완력도 세서
형제간의 다툼에서 이기는 쪽은
언제나 동생인 하랄드였습다고 합니다.
Q5. 축구 국가대표 출신의 수학자라..
어마어마한 스펙이네요.
잘난 동생한테
열등감을 느낄 법도 한데..
사이가 또 좋았나봅니다.
다시 닐스 보어 얘기로 돌아가 볼까요?
-> 네. 닐스 보어는
1903년 코펜하겐대학에서 물리학에 입문합니다.
일찌감치 탁월한 재능을 보인 그는
1907년 물의 표면장력에 관한 논문으로
덴마크왕립과학인문아카데미에서 금메달을 받았구요.
당시 물리학계의 현안이었던
금속 안의 전자이론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걸 확대해 1911년, 박사논문을 완성하죠.
바로 그해 보어는
전자의 발견자인 톰슨과 연구하기 위해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 갔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자(사실상 퇴짜를 맞고)
맨체스터대학의 러더포드 문하로 들어가는데요.
1908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러더포드는
당시 태양계 원자모형을 발표하는 등
물리학 연구의 첨단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Q6. 노벨상 수상자가 선뜻 제자로 받아들였다는
사실만 봐도..
그 역량이 짐작이 됩니다.
이 시기에 그 유명한
원자모형을 창안했다구요?
-> 네. 1913년에 ‘보어 원자모형’을 발표를 합니다.
일명 ‘태양계 원자모형’인데, 러더포드 원자모형과의 차이는
핵을 중심으로 전자들이 공전면을 달리해 같은 크기의 궤도의 도는 모양인데 반해
보어의 원자모형은 태양계 행성들이 공전반지름의 크기에 따라 차례로 배열돼 도는 것처럼
전자들이 나란히 핵 주변 궤도를 돈다는 겁니다.
이 모형의 핵심은
전자가 에너지 준위에 따른 여러 가지 궤도를 가질 수 있는데,
궤도를 이동(전이)할 때 빛을 방출 혹은 흡수한다는 거예요.
빛을 방출하거나 흡수하지 않고
유지되는 궤도를 돌고 있을 때를 ‘정상상태’라고 하고요.
이걸 두고 일각에서는
비과학적인 가정의 산물이다..
비판이 일기도 했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이론이었어요.
나중에 드브로이의 물질파 가설로 뒷받침이 되고
결국은 양자역학으로 발전하는 디딤돌이 되었지요.
보어의 원자모형은 걸출한 물리학자의 등장을 예고한 등단작품이자
본격적인 양자론 연구의 견인차가 되었습니다.
이게 전기(前期)양자론으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보어는 이 업적으로 1922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지요.
Q6. 네.. 청출어람이라고 하나요?
노벨상 수상자 문하에서
또 다시 노벨물리학상 수상자가 나왔네요.
물리학계의 거목으로 성장한
닐스 보어,
양자역학의 흐름을 주도한
코펜하겐 학파의 리더로
자리를 잡게 되죠?
-> 그렇습니다.
보어는‘보어 원자모형’으로 역량을 인정받으면서
덴마크의 수도에 있는 코펜하겐대학에
이론물리학연구소를 세우고
하이젠베르크 등 젊은 천재 물리학자들을 모아서
양자론 정립에 힘을 쏟았습니다.
이들이 바로
'코펜하겐 학파'로 불리게 됩니다.
양자론의 주류 해석인 ‘코펜하겐 해석’역시
바로 보어가 이끄는
코펜하겐 학파의 해석이고요.
이 코페하겐 해석은
양자론에 대한 철학적 해석인데,
대부분 보어의 견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Q7. 양자론과 철학이라..
자, 이제 양자론의 철학적 기둥으로
불리는 상보성 원리에
한 발짝씩 다가서는 것 같은데..
자.. 그 이전에
양자론 해석의 바탕이 된
보어의 철학에 대해
먼저 좀 짚어볼까요?
-> 네. 보어의 세계관 형성에는
일찍부터 아버지의 서재 분위기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코펜하겐대학의 생리학 교수였던
크리스티안 보어는 당대의 지식인들과 교류했는데,
그의 서재는 바로 코펜하겐의 지식인 살롱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에게 토론클럽 ‘올림피아 아카데미아’가 있었다면
보어에게는 ‘에클립티카(ecliptica, 황도)’가 있었습니다.
이 모임은 보어 아버지의 친구인
코펜하겐대학의 철학 교수 회프딩(Harald Hoffding),
물리학 교수 크리스찬센 등
지식인 12명으로 구성된 토론클럽이었습니다.
Q8. 어린 시절부터
당시의 지식인들과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 성장환경..
그야말로 부러운데..
그 중에서도
보어에게 특별한 영향을 끼친
인물들이 있었다구요?
-> 네. 보어는 덴마크의 철학자, 작가 등
세 사람으로부터
인식론 등 그의 학문과 세계관의 골격이 된 철학을 배웠습니다.
특히 회프딩의 철학은 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회프딩은 연속성과 불연속성 사이의 관계가
중요한 철학적 문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연속성과 불연속성 사이에
기본적인 이중성이 있다는 점을 간파했던 것입니다.
나중에 그는 입자와 파동
그리고 입자-파동 이중성도
이런 맥락에서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Q9. 또 다른 사람은 누구인가요?
-> 이 이름은 다들 아실텐데
덴마크의 대표적인 철학자 소렌 키에르케고르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회프딩 철학의 연원이 바로 키에르케고르이죠.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유복한 모직상인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키에르케고르는
선천적으로 우울, 끊임없는 자기성찰,
자신에게 솔직·결백하고,
종교에 경건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이 같은 성향은 코펜하겐 신학교에 입학하면서
쓰기 시작한 일기에 강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우수만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나는 야누스와 같이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한 얼굴로는 웃고, 한 얼굴로는 운다.’
키에르케고르는 일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철두철미한 자기성찰의 인간이었다고 합니다.
더욱이 그는 가장 주체적이고도 실존적인 사상가였기에
항상 자기 자신의 문제들이
모든 사색의 근원이었습니다.
따라서 자기가 없는 철학,
자기를 떠난 철학,
자기를 문제로 삼지 않는 철학은
그에게 있어서 아무런 의미가 없었죠.
그는 인간이 세상을 초월한 입장에 설 수 있다는 환상을
엄격하게 비판한 반 헤겔주의자였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자인 그는
실체는 단일 사고체계로 표현할 수 없는
‘다름과 대립’으로 가득 차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보어는 흔히 청년기에 그러하듯이
키에르케고르에게서 자기 사상의 표현을 발견했습니다.
이 사상에 빠져든 그의 청년기는 자기부정,
양심성(兩心性), 경계인 등의 성격 특징이 가장 강하게 드러납니다.
한계성의 의식에 바탕을 둔
그의 세계관 역시 이런 기질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키에르케고르의 실체 개념은
곧 보어의 파동-입자 상보성 원리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Q10. 상보성 원리의 배경이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다!
양자역학의 배경에 현대철학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거
참 놀랍습니다.
자.. 보어에게 결정적 영향을 끼친
나머지 한 사람.. 마저 짚어볼까요?
-> 네. 보어의 사상적 배경이 돼어준 마지막 한 사람..
덴마크 국민작가이자
키에르케고르의 멘토였던 포울 마르틴 뮐러라는 사람입니다.
보어는 시와 소설에도 관심을 보였는데,
덴마크와 독일의 많은 시들을 암송했다고 합니다.
그는 특히 마르틴 뮐러의 「덴마크 학생의 모험」에
매혹되었다고 하는데,
거기에런 이른 내용이 있습니다.
‘종종 사람은 그 자신을 두 사람으로 나눈다.
한 사람은 다른 쪽을 바보로 만들려고 애쓴다.
반면 제 3의 인물,
즉 본래 그 사람은 이 같은 혼란에 놀라움으로 가득 찬다.
간단히 말하면 사고(thinking)는 드라마틱해지고,
조용히 가장 복잡한 플롯을 행한다.
그리고 관객은 점차 배우가 되어간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우리는 인생이라는 연극의 배우이자 관객"이라는 표현의 원조가
마르틴 뮐러의 작품입니다.
보어는 양자론의 철학을 얘기할 때
이 문장을 자주 인용했습니다.
보어는 이 문장을 인생의 원리로 통찰하고
"생(生)의 조화를 추구함에 있어서
우리는 삶이라는 연극의 관객이자
동시에 배우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키에르케고르가 고백한 야누스적 성격과
이 작품에서 나오는 분신 이야기는
보어의 핵심 철학인 상보성 원리의 원형(原形)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중성에 대한 매혹은
이때부터 그의 사고 체계에 자리잡았던 것입니다.
Q11. 네. 어려서부터 문과와 이과를 가르고
그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는 것처럼
여겨왔는데..
이렇게 위대한 과학자가
철학, 심지어 문학에 빚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야말로 놀랍습니다.
통섭, 통합..
다들 소리높여 외치는데..
오늘 그 가치와 의미, 가능성을
오롯이 확인을 한 것 같습니다.
자.. 상식과 직관에 반하는
양자론 오딧세이..
오늘은 양자세계를 해석하는 핵심 원리인
상보성 원리를 창안한
양자역학의 아버지 닐스 보어와
그의 철학적 배경..
함께 좀 살펴봤습니다.
오늘 나눈 얘기를 토대로
다음 시간에는
상보성 원리로
바로 넘어가 보도록 하죠.
다음 시간도 기대하겠습니다.
자, 지금까지 과학스토리텔러
조송현 대표였습니다.
대표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pinepines@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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