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부문화 왜곡하는 빈곤 포르노

송순임 승인 2019.12.22 20:49 | 최종 수정 2019.12.22 22:04 의견 0
국제청년센터
국제청년센터 YouTube '빈곤 포르노그라피 캠페인' 캡처.

추운 겨울, 연말이 다가온다. 이때쯤이면 주변의 어려운 사람을 돕자는 모금 방송, 후원을 희망하는 개인이나 단체의 안타까운 사연의 광고, 모금단체에서 발간하는 소식지 등을 TV나 라디오, 인터넷, 지면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쉽게 접하게 된다. 한 겨울 난방도 되지 않는 집에서 할머니와 어린 아이가 추운 겨울을 나는 모습, 스레이트 지붕 아래 수돗가에서 어린 아이가 찬물에 고사리 같은 손을 호호 불며 살을 씻는 모습, 백혈병이나 난치병으로 아픈 아이와 이로 인해 생계가 어려운 부모의 모습, 갈비뼈가 앙상하게 들어난 몸과 파리가 몸에 붙어도 쫓을 힘조차 없는 꿈주린 아이, 몇 킬로미터씩 맨발로 먹을 물을 길러 가는 아이의 모습 등 하나같이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영상들이다.

이런 안타까운 사연들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지갑을 열게 한다. 어쩌면 사람들의 마음 깊숙이 자리잡은 동정심이나 공감의 심리를 이용해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길을 내밀도록 유도하는 것은 기부 프로그램에 있어 당연하고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라 불리는, 수혜자의 어려움을 여과 없이 보여주며 대중의 동정심을 이끌어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방식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란 ‘빈곤 혹은 질병으로 곤경에 처한 이들의 상황을 자극적으로 묘사해 동정심을 일으키고, 이를 통해 모금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구호단체들이 모금을 위해 가난을 선정적으로 다루는 사진이나 영상물, 모금 방송 등을 이르는 말이다. 벌레도 쫓을 힘이 없어 얼굴에 파리똥을 잔뜩 붙이고 웅크린 아이들이나 형편없이 쪼그라든 젖을 아이에 물린 바짝 마른 여성 등을 등장시킨 후 마지막에 ‘당신의 주머니 속 1달러가 이들을 살릴 수 있다’는 자막을 넣는 식으로 구성하는 모금 캠페인이 빈곤 포르노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출처 : 다음 백과사전)

가난한 사람을 돕는 효과적인 방법인데... 하지만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지라도 그 과정에서 결과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면 우리는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야 한다. 예를 들면 국제구호단체 A는 에티오피아 시골 마을의 열악한 식수환경을 알리고자 국내 한 방송사아 동행취재에 나섰다가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마을의 가축들이 마시는 작은 연못의 물을 현지 아동에게 강요하여 마시게 했다. 또 아이에게 눈물을 흘릴 것을 종용했지만 아이자 거절하자 제작진이 갑자기 아이를 꼬집어 눈물을 흘리게 해 촬영을 강행했다.(국민일보 2014,09,16) 이러한 장면은 수혜자의 인권 침해와 기부자에 대한 기만행위라고 할 수 있다.

송순임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먼저 수혜자들의 인권 침해를 들 수 있다. 한국의 후원 광고 같은 경우는 수혜자의 얼굴, 주거지, 통장 잔액과 같은 경제적 정보 등 수혜자의 생활 전반을 잠깐의 영상 노출로 보여주어 개인 사생활을 침해한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로 개인의 신상 노출은 물론 과거의 영상이 지속적으로 남게 되는 등 개인 인권침해 정도가 매우 심각하다. 다음으로, 특정 국가나 특정 인종에 대해 부정적 편견을 갖게 한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가 ‘아프리카’ 하면 가난한 나라로 생각하거나 검은색 피부를 가진 사람은 아프리카 출신으로 연상되는 것은 우리가 자주 접하는 자선 단체의 광고의 영향이 크다. 또한, 광고 속의 수혜자들은 자신들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타인의 도움만 기다리는 무기력하고 나약한 존재로 표현한다. 그리고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영상은 기부자들을 점점 무감각하게 만든다는 사실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빈곤 포르노의 방식은 대중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더 가난하고 더 아픈 장면을 보여주며 우리들을 질병과 빈곤으로 굶주려 가는 아이들의 모습에 점점 둔감하게 만든다. 이러한 컨텐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기부자들은 더 큰 자극이 아니면 마음을 움직이기 어려워 기부가 줄어드는 결과를 낳게 된다.

앞으로 미디어나 자선단체에서는 당장의 모금(실적?)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모금이나 기부문화에 대해 생각해 보여야 한다. 무엇보다 인권을 우선 해야 할 방송국이나 자선단체가 수혜자들의 인권을 해친다는 것은 자신들의 존립 근거를 허무는 자해행위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아무리 모금 금액이 중요하다 해도 그들의 인격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후원 영상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영상의 내용은 타인의 도움만을 기다리는 나약한 존재로만 부각시키지 않고, ‘수혜자도 단순 생존을 넘어서 나와 같이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야 한다.‘ 또한, 그것을 수용하는 시청자들은 빈곤 포르노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수혜자들도 자신의 삶에 의지를 갖고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으로 봐야 한다. 우리는 후원이 필요한 수혜자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보고 그들도 우리와 같은 평범하고 소박한 삶을 꿈꾸고 있다는 것을 항상 인식해야 한다.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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