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권력의 획득이나 부富의 축적이라는 간이역을 통과하지 않고, 곧바로 행복이라는 종착역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일까?
1조 원이나 그 이상의 재산가에게 5억은 서민의 단돈 500원의 가치에도 견줄 수 없다. 주식회사 다스(DAS)는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며, 2015년 기준 매출액이 2조1300억 원이다. 이 다스의 실소유주인 이명박(79) 전 대통령이 지난 19일 2심에서 1심보다 2년이 높은 징역 17년을 선고 받고 다시 법정구속됐다. 그가 받는 16가지 혐의 중에는 서민이 이해하지 못할 죄목도 있다. 허위 급여와 승용차 구입에 5억 원을 횡령하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1억여 원(10만 달러)의 뇌물을 받고, 김성호·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서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 4억 원을 받아 챙겨 국고손실죄를 저지른 일이다.
이 전 대통령에게 5억이나 1억이나 4억은 바닷물에 빗방울 몇 알을 보태는 정도이다. 한데 왜 거부巨富에다 대통령이란 최고위 명예까지 움켜쥔 인간이 ‘금품 갈취’를 한 것일까? 인간의 탐욕의 끝은 어디일까? 이 전 대통령은 선고가 끝난 뒤에도 3~4분 동안 자리를 뜨지 못한 채 표정 없이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뉴스타파>가 지난 13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프로포폴 주사를 상습적으로 맞았다는 공익신고가 접수돼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고 단독 보도했다. 이에 대해 “개인적 사정 때문에 불가피하게 방문 진료를 받은 적은 있지만 불법 투약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고 삼성은 해명했다. 그러나 <뉴스타파>는 지난 14일 삼성의 해명을 무너뜨리는 성형외과 원장과 간호조무사의 통화 음성파일을 공개했다. 이후 삼성의 해명 자료는 나오지 않고 있다.
<미디어오늘>의 정철운 기자가 <뉴스타파>의 강민수 기자에게 물었다. “왜 재벌들은 이렇게 프로포폴을 맞고 있을까?” 강 기자는 “다들 잠을 잘 못 자는 것 같다.”고 답했다.(<미디어오늘>. 2020년 2월 19일)
프로포폴은 마약처럼 기분을 좋게 하는 환각효과를 나타내 계속 투약하게 되는 정신적 의존성이 높은 향정신성 의약품이다. 이 부회장이 ‘개인적 사정’으로 합법적으로 방문 진료를 받은 것인지, 불법으로 상습적 투약을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볼 뿐이다. 다만, 관심하는 것은 재벌들이 잠을 잘 자지 못한다는 강 기자의 말이다.
예로부터 무병장수의 3대요소로 삼쾌三快를 든다. 쾌식快食, 쾌면快眠, 쾌변快便 곧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면 건강하다는 것이다. 무병장수란 단어를 행복으로 바꿔 넣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사회적 지위와 부는 행복과 등식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재벌들이 잠을 잘 자지 못한다는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도시연구소는 지난달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258가구를 대상으로 ‘비주택 거주자 주거지원 희망 수요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쪽방촌 가구주의 88.0%가 남성이고, 94.6%가 1인 가구로, 주민들은 대부분 혼자 사는 남성인 셈이다. 쪽방(6.6m²·2평)의 월 임대료는 평균 23만3000원이었다. 정부가 저소득층에 지원하는 주거급여 금액과 정확히 일치한다. 건물소유자들이 주거급여를 악용해 쪽방촌 주민들에게 월세를 최대한 받아내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올해의 주거급여가 26만6000원으로 오르는데 건물주들이 벌써부터 쪽방촌 월세를 따라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주거급여는 저소득층의 임대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도입된 것인데, 사실상 건물주들이 돈 버는 데 들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설문조사에 응한 가구 중 59.9%는 주거비가 부담스럽다고 답했다. 이들 중 91.5%는 주거비 부담으로 식료품비를 줄인 경험이 있고, 돈이 없어 질병 치료를 포기한 경험도 31.4%나 되었다.(『경향신문』 2020년 2월 17일)
현재 전 세계적인 부의 불평등은 심각한 수준이다. 국제구호기구 옥스팜(Oxfam)이 지난 20일 연례 불평등보고서를 발표했다. 억만장자 2000여 명의 재산 총합이 지구상 46억 명의 재산보다 많으며, 빈부격차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다. 특히 아마존 최고경영자 제프 베이조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등 최고부자 남성 22명은 아프리카 전체 여성 3억2600만 명의 재산을 합친 액수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
부의 불평등은 시장경제의 실패뿐 아니라, 과세와 재분배 정책 등 사회제도의 실패를 반증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불평등을 인간의 본성으로 받아들이고, 빈곤을 무능력이나 게으름 등 개인책임으로 돌리는 일이다.
부가 행복을 예약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행복의 필요조건인 것만은 분명하다. 돈이 있다고 반드시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돈이 없이는 행복할 수 없다. 세계적 규모에서든 국내만으로 한정하든, 부의 총량이 전체 인구를 부양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불평등이 문제다. 시장에서 1차 분배든 사회제도에 의한 2차 재분배든 최대한 부의 분배를 공정히 하여, ‘최대대수의 최대행복’을 구현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IMF(국제통화기금) 현직 간부들이 쓴 『IMF, 불평등에 맞서다』(원제:Confronting Inequality)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1980년대부터 신자유주의 첨병 노릇을 했던 IMF의 반성문이다. 현직 간부들이 수십 년간 고수해온 자신들의 정책 기조를 비판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목표는 불평등 자체가 아니라 불평등과 성장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다. 곧, 자본주의 체제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 불평등 문제를 다뤘다. 책의 결론은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소득불평등은 경제성장을 방해한다. 둘째, 지금까지의 성장정책은 불평등을 높여왔다. 셋째, 재분배는 성장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오히려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경향이 있다. 넷째, 재분배를 통한 불평등 해소 노력이 노동의욕을 저해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잘못된 것이다. 다섯째, 사회불평등도는 정부가 선택한 정책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특히 주목할 점은 불평등을 완화할 대안 중에 기본소득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다. 로봇 도입 확대에 따라 생산량은 늘어나지만, 노동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어짐에 따라 임금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구매력 강화를 위해 기본소득 보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재원은 자본에 대한 과세를 통해 마련할 수 있다.(『한겨레신문』 2020년 2월 7일).
‘구매력 강화’를 위한 기본소득은 지극히 시장근본주의적이다. 근본적으로 기본소득은 인간으로서의 권리이다. 인간은 인간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아무리 경제적 약자라도 ‘인간답게’ 권리가 있다. 어떤 경우라도 최소한의 생계유지가 가능한 제도가 필요하고, 그것이 기본소득인 것이다.
IMF는 ‘뼛속까지’ 우파이다. 따라서 서구 기준으로 기본소득은 우파적 주장이다. 한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보수정당과 보수언론은 기본소득을 일부 좌파의 비현실적인 주장이라고 치부한다. 이뿐 아니라 성장과 분배를 흑백논리로 나눠 모든 분배정책을 좌파적이라고 비난한다. 자신들이 우상처럼 떠받들던 국제기관이 이미 10년 전부터 방향을 바꿨는데도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이념에 매몰돼 있는 것이다.
총선이 두 달도 남지 않았다. 한 사회의 불평등도는 정부의 정책에 큰 영향을 받는다. 소득주도성장을 비롯한 문재인 정부의 ‘포용적 성장론’과 나아가 기본소득 실현여부는 이 총선 결과에 치명적 영향을 받을 것이다. 하여 4월 총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중요성을 가진다.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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