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말고 덜도 말고 니 아부지만큼만 출세해라.” 할머니가 아기를 안고 어르며 그윽한 눈길을 주며 하는 말이었다. 읍내 장을 보고 오는 버스 안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물었다. “아버지가 뭐 하시는데요?” 할머니가 으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우리 동네 구장님이라네.” 반세기 조금 못 미치는 중학교 시절, 우리들의 우스개 중의 하나였다.
“동네 사람들이 이장을 맡으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지?” 지난 연말에 밥자리에서 친구가 내 의중을 물었다. 연득없는 일은 아니었다. 몇 년 전부터 이장 일을 해달라는 동네 사람들의 요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친구는 알오티시(ROTC) 중위 출신으로 대기업에서 지점장까지 지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귀향했다. 선친이 가꾸던 밤과 감 농사를 일구고 있다. 나도 친구 일을 가끔 돕는다. “벼슬이라 생각하면 맡지 말아야 할 것이고, 봉사나 동네 풍속을 바로잡는다는 사명감이면, 외레 시키지 않아도 친구 같은 사람이 맡아야지 않겠나.”
묻는 친구나 대답하는 나나 해도 안 해도 될 말을 그냥 반찬 삼아 입가심하는 거였다. 우리 둘은 이장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의기투합했다. ‘장長’이라는 감투 문제가 아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최전선이 동네이고, 전위부대장이 이장이다.
내 고향도 특정 정당이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되는 경남이다. 선배들은 나를 노골적으로 ‘좌빨’이란 말은 못하고, 책상에만 앉아 있어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치부한다. 내 초등 동기들도 내 앞에서는 ‘솔직한 심정’을 드러내지 못한다. 보통은 슬금슬금 피한다. 저들은 대학물 먹은 놈들은 어째 다 ‘좌빨’이고 자기들끼리만 어울린다고 수군댈 것이다.
확실한 의식의 무장이 없는 사람들은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 공자는 사람의 행동에는 세 가지 준거가 있다고 했다. 기존의 전통, 다수의 의견, 그리고 개인의 판단이다. 전통과 다수의 의견을 존중한다. 그렇더라도 이 둘이 합리적이 아니라면 공자는 기꺼이 개인의 판단대로 행동했다(麻冕禮也 今也純儉 吾從衆. 拜下禮也 今拜乎上泰也 雖遠衆 吾從下·『논어』 자한편). 공자는 학식과 덕행을 겸비한 비범한 인물이다. 합리적 보수주의자로서 의식이 도저한 위인이라 다수와 멀어지더라도 ‘개인 판단’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범인凡人은 주위 환경에 세뇌, 학습될 따름이다.
예전엔 대체로 이장은 꼰대였다. 이장이 무슨 완장이라고 동네 사람들 위에 군림했다. 독재정권과 권위주의 정권의 맨 앞에서 전위 노릇을 하며 떡고물도 제법 먹었다. 선거철이면 고무신도 챙기고 공짜 관광도 즐겼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박근혜 시절까지 그런 꼰대 이장이 더러 있었다. 그렇지만 이장은 마을을 대표하는 일꾼이고 좋은 마을 만들기의 리더임은 분명하다.
충북 옥천군 동이면 이장협의회(회장 김기복·58)는 『동이마을 이장 업무 매뉴얼』이란 책을 냈다. “이장이 잘해야 마을이 산다. 마을이 살아야 대한민국이 산다.”가 모토이다. 그리고 전국에서 처음으로 ‘좋은 이장학교’를 설립했다. 이렇게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다.*
“퇴직하면 진주에 눌러 살 거가, 귀향할 거가?” “귀향할 겁니다.” “잘 됐다. 귀향해서 이장을 해라. 꼰대질이 아니라 마을 리더로서 풍속도 바로잡고 삿된 정치바람도 막고, 모범을 보여 마을 질서를 제자리 잡게 하자. 내가 뒤에서 힘이 돼 줄게.” “형님이 밀어준다면야 한 번 해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고향 농협에 근무하는 후배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 그물이 삼천 코라도 벼리가 으뜸이다. 인간은 조직의 동물이다. 그 조직의 흥망은 리더 손에 좌우된다. 권력과 권위로 이끌던 권위주의 리더의 시대는 끝났다. 그러나 아직도 관행은 쉬 없어지지 않는다. 양치기와 같은 부드러운 권위, 솔선·모범의 리더는 마을을 살리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완성할 수 있다.
나는 이장의 자격이 없다. 농사를 짓지 않는 데다가, 내 일이 밤낮의 구별이 없어 남들과 생활리듬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장 될성부른 후배나 친구들’에게 이장직을 권면하는 것을 내 소임으로 한다. 꼰대 말고 마을의 민주적 리더를 발굴하고 밀어주는 일, 이 또한 중요하지 않겠는가. 작고 큼을 저울질할 필요는 없다. 각자의 자리에서 제 할 일을 하는 게 대동사회로 가는 밑거름이 아니겠는가.
현재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꼰대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이다. 꼰대는 시골 마을 이장으로도 부적격인데, 황차 나라의 이장(대통령)을 꿈꾸면서 전국을 설치고 다닌다. 단기적으로는 나라의 불운이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민주적 국가 발전에 긍정적이다. 군림하는 꼰대 이장을 대놓고 나무라지 않지만, 잘못이라는 심증은 동네 할머니들도 다 갖고 있기 때문이다.
꼰대란 자기경험을 일반화해서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이다. 낡은 패러다임이 갇혀 변화를 수용하지 않고 극도의 자기중심성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사람이다. 마치 곁눈가리개(blinkers)한 말이 주위 아랑곳하지 않고 질주하는 것과 같다. 앞에 낭떠러지가 있는지 불구덩이에 빠질지 상관 않는다.
황 대표는 ‘독재 타도’를 외친다. 언론의 자유가 있는 독재국가를 본 적이 있는가. 언론의 자유와 독재정권은 정확히 반비례 관계에 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언론의 자유를 누린다. 국경없는기자회(RSF)가 발표한 ‘2019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은 41위로 48위인 미국보다 높다. 노무현 정부 당시는 31위였다. 박근혜 정부 시절 2016년에는 70위였다. 황 대표가 법무부 장관을 하던 때 독재라는 단어를 벙긋이라도 해봤던가.
황 대표는 ‘임종석 씨는 돈 번 적이 없다. 민변 변호사들은 잘 산다. 어려운 사람 도와준다고 소송 걸라고 해서 소송비 받는다. 우파 변호사들은 수임을 잘 못한다’고 주장한다. 가짜뉴스다. 임종석은 1995년부터 시민운동, 국회의원, 당 사무총장, 서울시 정무 부시장, 청와대비서실장 등 공직을 지내며 정당하게 돈을 벌어 지금 재산이 6억5천만 원이다. 이에 반해 황 대표는 고검장 퇴임 후 변호사로서 대형로펌에서 일하며 17개월 동안 약 17억 원의 자문·수임료를 챙겼다.
황 대표는 부처님오신날 경북 영천 은해사에서 열린 봉축법요식에 참석했지만 내내 합장을 하지 않았다. 불교계의 ‘표’는 원하면서도 불교 ‘예법’을 거부한 것이다. ‘기독교근본주의자’임을 드러낸 것이다. 이런 자가 국민통합이 책무인 나라의 이장을 바란다는 것인가. 이뿐 아니다. ‘5·18 폄훼’ 의원들을 처리하지 않으면서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또 무슨 심보인가. 황교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식의 전복’을 필요로 한다.
해는 언젠가는 진다. 그렇지만 지는 해를 서러워할 필요는 없다. 황혼, 아름답지도 않은가. 어떻게 하면 이장직을 잘 수행하는 것일까? 친구는 동네일에 구슬땀을 흘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개인이 아니라 동네 전체의 이익에 초점을 맞추면 된다.” 이형기 시인의 <낙화>를 떠오르게 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오윤주, 「“이장은 마을의 리더···교육 통해 전문성 키워야」, 『한겨레신문』, 2019년 1월 25일.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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