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의 자격

조송원 승인 2019.04.19 13:59 | 최종 수정 2019.04.19 14:11 의견 0

세상살이의 고비 때마다 ‘줄탁동시啐啄同時’란 한자성어를 떠올리곤 한다. 선가禪家에서 흔히 쓰는 말로, 생명(병아리)의 탄생에 관한 혜안을 담고 있다. ‘줄啐’(떠들 줄, 맛볼 쵀)은 알이 부화할 때 병아리가 알껍데기 속에서 우는 소리를 뜻한다. ‘탁啄’(쪼을 탁)은 어미닭이 그 소리를 듣고 밖에서 쪼아 깨뜨리는 행위를 말한다. 이 줄과 탁이 동시에 이뤄져야 온전한 병아리가 탄생한다는 통찰이다.

조송원

정치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을 정치인이라고 한다. 인두겁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사람노릇을 하는 게 아니듯, 정치인이라고 하여 모두 같은 정치인이 아니다. 정치를 사익 추구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정치인은 정치꾼이다. 정치를 공익에 봉사할 기회로 삼는 정치인은 정치가이다. 우리는 정치꾼을 욕하고, 정치가를 존경한다.

정치판의 사람들을 두루뭉술하게 정치인이라 칭하고, 난장판인 국회를 싸잡아 정치인들을 욕해대서는 곤란하다. 국회에도 용과 뱀이 공존한다. 용 행세하는 뱀에겐 욕을 해야 하지만, 용에게는 외려 상찬이 필요하다. 정치꾼과 정치가를 정확히 구분하여 그 이름에 맞는 처방을 내려야 한다.

공자도 정치의 요체는 ‘이름 바로잡기’(正名)라 했다. 그 이름에 부합한 실체가 있어야 그 이름이 성립한다는 의미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시인 김춘수가 아름답게 노래했다.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던 그에게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그는 꽃이 되었다. 각자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불러주어야 한다. 그래야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의미가 된다.

자유한국당 경기 부천소사당협위원장인 차명진 전 의원은 지난 15일 페이스북에 “세월호 유가족들, 자식의 죽음에 대해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쳐 먹고, 찜쪄 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 먹고 진짜 징하게 해 처먹는다”는 짐승의 언어를 올렸다.

같은 당 국회의원인 정진석은 16일 “세월호 그만 우려먹으라 하세요. 죽은 애들이 불쌍하면 정말 이러면 안 되는 거죠. 이제 징글징글해요”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안상수 의원은 지난해 1월 “세월호 같은 교통사고에도 5000억 원을 지출하는 나라”라고 했다.

김재원 의원은 세월호 특별조사위를 “세금도둑”이라고 했고, 김태흠 의원은 국회 농성 중인 유가족을 향해 “노숙자 같다”고 했다. ‘5·18 망언’ 논란을 일으킨 김순례 최고위원은 2015년 대한약사회 여약사 회장 때 유가족을 향해 “시체장사” “비겁하고 거지 근성”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은 김 최고위원을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했다.

여기서 분명히 하자. 왜 세월호 참사 5주기에도 유가족들이 울분과 분노를 거두지 못하는가? 자식을 비명에 보내고 가슴에 박힌 대못을 아직 뽑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참사의 진실규명과 책임자의 반성과 응분의 처벌을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진상규명을 정권이 막았기 때문이다. 왜 참사가 일어났고,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를 정리해야 그때부터 유가족들의 ‘치유’가 가능한데, 그 치유의 시작을 국가가 애초에 막았기 때문에, 박힌 대못이 더욱더 깊이 가슴을 찔러 들어오기 때문이다.

짐승의 언어를 배설하는 정치꾼들은 참사의 공범이다. 공범이기에 저지른 심각한 죄악에 대한 방어기제의 발동으로 도나캐나 막말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이 공범들을 누가 무대에 올렸는가?

민주국가에서 ‘어미닭’은 국민이고 유권자들이다. 누군가가 정치인으로 부화를 하고 싶어 짹짹거려도 유권자들이 알껍데기를 쪼아 깨뜨리지 않으면, 병아리(정치인)로 탄생할 수 없다. 저들을, 저 정치꾼들을 결국은 우리가 탄생시킨 것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News1 박세연 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News1 박세연 기자

대표하는 자(정치인)와 대표되는 자(국민)와의 간극은 있을 수밖에 없지만, 정치인은 국민의 지지를 생명줄로 한다. ‘태극기(모독)부대’를 의식한 탓일까? 자유한국당 황교안의 대표의 당내 ‘망언’에 대처하는 품새가 어째 하 수상하다.

황 대표는 ‘세월호 유가족 비하’ 발언에 대해서는 3차례나 사과하고 신속한 윤리위원호 소집 등으로 적극 대처하고 있다. 반면 ‘5·18망언’ 논란에는 두 달 가까이 징계를 지연하며 ‘뭉개기’를 하고 있다. 그때그때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 비하’ 발언에 대한 대처를 미룰 경우 전 국민적 분노를 불러올 수 있다는 판단 때문에 신속한 징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반면, 5·18망언 논란 징계를 미루는 것은 ‘태극기세력’ 등 극우세력 결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인 것이다. 곧 황 대표의 대처법이 다른 이유는 정치적 득실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 대통령 3대에 걸쳐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윤여준은 『대통령의 자격』이란 저서에서, 스테이트크래프트(statecraft. 치국경륜·통치리더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인문학을 토대로 인간 본성, 특히 자아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나온다.**

『대학大學』의 「제10장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에 혈구지도絜矩之道가 나온다. 혈구란 곡척曲尺으로 사물을 재는 것이다. 곧 내 마음을 자로 삼아 남의 처지를 헤아린다는 뜻이다. 내 마음을 미루어 남을 이해하고, 내가 원치 않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서恕’이며, 치국평천하의 요도要道이다.***

황 대표는 자유한국당에 입당한 지 불과 43일 만에 제1야당의 대표 자리를 거머쥐었다. 탄핵·구속된 박근혜 정권의 폭정의 맨 선두에 섰던 그는 연일 ‘문재인 정권의 폭정’을 외치고 있다. 당내 망언에 대해 정치적 득실에 따라 대처법이 달라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황 대표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춰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진 정치인인가? 정치의 요체인 ‘혈구지도’를 알기나 할까? 정치인 황교안은 과연 ‘정치꾼’인가, ‘정치가’인가?

정치인 황교안은 화려한 탄생을 위해 알속에서 ‘짹짹’거리고 있다.

※*박순봉, 「그때그때 다른 황교안 당내 ‘망언’ 대처법」, 『경향신문』, 2019년 4월 18일.**윤여준, 『대통령의 자격』(메디치미디어, 2011), 527쪽. ***박일봉 역저, 『大學·中庸』(육문사, 1993), 85~88쪽.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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