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이 여는 '詩의 아고라'① 갯가 버드나무 아지랑이를 풀어 올린다 - 박기철의 소락素樂에 부쳐
손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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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8 16:05 | 최종 수정 2021.05.04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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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가 버드나무 아지랑이를 풀어 올린다
- 박기철의 소락素樂에 부쳐 손현숙
별구경을 마치고 잠자리에 드려는데
카톡 사진 한 장이 날아든다
‘생일주 금문고량주 58도’
배경으로 풍등 한 채 올리고
다물린 입술로 당겨 웃는 얼굴 은은하다
2월에는 얼음을 채웠던 나무에서
서둘러 물관을 밀어 올리고
남쪽 홍매는 깜깜하게 꽃망울 터트리는 시간
마른 땅에 물 고이면서
허벅지 안쪽으로 물별 터지는 소리 들린다
소락素樂은 사내의 또 다른 이름
꾸미지 않은 일상의 소박한 즐거움이란다
기타 한 대 괴나리봇짐에 찔러 넣고 배 타고
버스 타고 기차 타고 걷고 노래하면서
무주고혼처럼 섬과 섬을 문지르는,
계획도 없고 정처도 모르는 여행이다
악수도 없고 뒷걸음도 없는 우연히 닿은
여기가 그의 오늘인 모양이다
하루를 헐어서 일평생처럼, 그러니까
입춘은 사내의 노래, 어쩌자고 얼음 풀린
갯가에서 버드나무 자꾸만 풀어 올린다
- 『문학의오늘』 2021년 봄호 -
<시작(詩作) 메모>
소락素樂은 경성대학교 광고홍보학과 박기철 교수가 기획창의한 조어이다. 소락의 의미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소小少한 기쁨이나 소확행 등과 궤와 결을 달리한다. 여기서 소락은 꾸밈이나 거짓이 없는 일상의 소박한 즐거움을 일컫는다. 또한 인간중심의 인문학을 넘는 인문생태학을 지향하며 쓰레기 문제해결을 스스로 일상에서 실천한다. 시 속의 화자는 기타 하나 둘러메고 어디 멀리까지 간다, 그냥 간다. 발길이 닿은 그곳에서 소박한 즐거움을 만나면 좋고, 아니면 글쎄... 그는 어디에도 붙들림이 없는 일상을 구현한다. 봄이다.
◇손현숙 시인은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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