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순씨의 눈에 눈물이 글썽했다.스스로 금붙이나 귀금속을 몸에 붙이지도 않지만 변변찮은 금붙이마저 아이엠에프 때 외채상환을 위해 다 제출한 열찬씨는 여태 자신도 한번 사주지 못 한 근40만원이 되는 거액의 목걸이를 자신이 아닌 남이 사주는 것이 어쩐지 즐겁지만도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쌀 한가마니 공으로 주는 일이 없었던 형제들 틈에서 평생을 살아오다 이런 일이 다 있나 싶어 가슴이 뭉클했다.
이튿날은 세계적인 패션도시 밀라노를 거쳐 스위스의 알프스 융프라우로 가는 날이었다.일정이 빠듯하다며 아침식사를 마치자말자 일행을 버스에 탑승시킨 가이드 박성광씨가
“이탈리아의 마지막 밤을 안녕히 주무셨습니까?여러분들은 오늘 이탈리아의 제2도시이자 세계3대 패션도시의 하나인 밀라노를 들러 직물,패션,가죽제품시장을 둘러보고 점심식사를 마친 뒤 국경도시 코모를 넘어 알프스의 융프라우봉우리를 보기위하여 인터라켄으로 출발할 것입니다.그 동안 근 일주일을 함께 했던 저도 오전 일정을 마치면 모든 역할이 끝나고 여러분을 떠나게 됩니다만 아무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리고 미리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괜히 분위기를 짠하게 만들어놓고
“여러분,여러분은 밀라노라고 하면 어떤 단어가 생각나는가요?보통 세계적인 유명브랜드 페라리,프라다,구찌,아르메니 등 여러분이 출발한 인천국제공항은 물론 도착한 프랑크푸르트,앞으로 가게 될 런던의 록히드공항을 비롯한 세계 모든 공항의 면세점을 장식하는 패션회사의 본사가 무려40여개가 자리 잡은 패션도시라는 점이겠지요.
참고로 세계3대 패션도시는 미국의 뉴욕,프랑스의 파리와 우리가 가고 있는 밀라노인데 뉴욕이 미국의 수도는 아니지만 현대사회의 두 특징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과 마천루를 비롯하여 유엔본부의 정치,월가의 금융을 비롯하여 패션과 공연,문화와 예술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있어 세계의 수도역할을 하는 곳이고 프랑스 파리 또한 세계의 유행을 선도해온 샹송처럼 감미로운 예술의 고향임을 다들 아실 겁니다.
그런데 이탈이아의 북부산간 알프스산맥에 기댄 이 밀라노란 도시,역사나 문화에 관심이 좀 많은 사람이라도 그저 밀라노칙령,밀라노대공과 밀라노대성당 정도로 기억할 이 도시가 사실은 인구가250만이 조금 넘는 역사도시 수도로마보다 훨씬 더 큰 도시로서 무려400만의 인구가 패션을 비롯한 이탈리아 경제의 중심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면 깜짝 놀랄 것입니다.지구상의 여러 나라 중에는 이집트의 카이로,멕시코의 멕시코시티처럼 그 나라의 인구절반이상이 사는 수도자체가 국가자체와 다름없는 경우도 있고 대부분이 수도가 인구도 가장 많고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전 분야를 이끌어가지만 뉴질랜드의 오클랜드,모로코의 카사블랑카,인도의 뭄바이처럼 수도가 아닌 거대한 지방도시가 인구도 더 많고 역할도 더 많은 경우가 더러 있는데 그 유명한 로마가 밀라노보다 인구나 경제적 영향이 적다고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하지요.지리적으로 우리나라와 비교한다면 로마가 서울,나폴리가 부산이고 밀라노는 평양정도가 되는 데 고구려를 거쳐 고려와 조선시대까지 당시에 이름조차도 알려지지 않은 부산을 제치고 쭈욱 제2도시의 역할을 해온 점을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긴 설명과 함께 밀라노에 도착하자 밀라노대성당이 바라보이는 광장에 여행객들을 모으고
“저 맞은편에 보이는 웅장한 두오모성당이 바로 그 유명한 밀라노대성당입니다.바티칸의 성 베드로성당,런던의 세인트 폴,독일의 쾰른대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세계4대성당의 하나입니다.물론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성당,파리의 노트르담성당,바르셀로나의 파밀리아성당 등 더 많이 알려진 성당이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하는데
“아이구,오늘도 또 성당이네.”
하고 또 누군가가 김을 빼자
“여러분,저는 밀라노대성당이1386년 밀라노의 영주가 착공한 이후19세기 초반까지 무려 450년 동안 모든 밀라노의 통치자와 시민들이 대를 이어 완공한 역사적 산물이며 그 안에는 무려2,245개의 조각들과135개의 첨탑이 하늘로 솟아있는 엄청난 성당이라는 걸 설명하려 했지만 역사와 종교는 잠깐 미루고 여러분이 갈망하는 패션의 현장으로 안내를 해야겠지요.”
하면서 그 주요내용을 교묘하게 다 설명하는 것이 타고난 가이드체질인 모양이었다.그러면서도 신나게 패션몰로 출발하려는 부인네들의 정곡을 찌르듯이
“혹시 밀라노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말씀해주시지요.”
해 열찬씨의 입이 떨어지려는 순간
“그런 건 이따 공부쟁이 둘이서 개인적으로 하소.”
영순씨가 옆구리를 질러 열찬씨가 멈칫했다.이어 일행은 밀라노에서 가장 아름다운 쇼핑거리로 알려진 비토리오 임마누엘2세거리로 향했는데 엄청나게 커서 끝이 보이지 않는 아케이드 안에 유명한 카페와 부티크가 줄지어 서있고 아름다운 모자이크 타일이 멋지게 깔려 있었고 카페마다 사람들이 그득했다.
사람들이 모두 흩어진 뒤 뒤에 처진 열찬씨가
“박 선생,밀라노칙령이 밀라노와 어떤 관계가 있나요?”
열찬씨가 평소의 궁금증을 털어놓자
“예,로마의 쇠퇴기에 반달족 등 용병출신의 야만족들의 침입을 피해 터키의 이스탄불로 수도를 옮겨 자신의 이름을 딴 콘스탄티노플로 명명한 콘스탄틴황제가 야만족들과 전쟁 중에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그 꿈에서 본 상징물로 십자가의 깃발을 만들어 전쟁을 이기고 해양민족으로서 미신에 가까운 다신교의 로마,특히 수백 년간 엄격하게 금해 수많은 사람들을 사형에 처하기에도 망설이지 않던 압제를 깨고4개의 소국으로 분할하고 다시 그 네 개의 소국을 두 개의 대국으로 통합하여 다스리던 또 하나의 로마황제 리키니우스가 바로 이 밀라노에서 협상을 했기 때문으로 알고 있습니다.그 칙령의 주요내용은 기독교인에게 완전한 신앙의 자유를 부여하고 그간 몰수 했던 기독교인들의 재산을 되돌려주는 것이었지요.”
“아,그렇군요.”
하면서 둘이 여인네들의 뒤를 쫓아 눈으로 소재를 확인하고는
“박 선생,바닥의 모자이크무늬가 발로 밟기도 아까울 정도로 아름답군요.이런 기하학적 무니를 아라베스크라 하나요?”
“아라베스크라?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아라베스크는 좀 더 다양하고 기하학적인 무니,더 화려하고 예술성이 높은 것 같으면서도 어쩐지 이슬람의 냄새가 풍기는 것 같군요.혹시 성당이 아닌 모스크나 첨탑을 장식하는 것이 아닌가도 싶고.아무튼 가이드입장에서 상세히 알려주기 못 해서 죄송해요.그리고 기독교문화권에서는 아라베스크보다는 오벨리스크라고 왜 그 원주(圓柱)로 된 전승기념물 말이지요,로마에서 제가 상세히 설명을 드리려 생각하다 깜빡 잊었군요.제가 알기도 아마도 파리에도 많은 오벨리스크가 있다고 하니 내일 파리의 가이드한테 설명을 부탁드리지요.”
“예.그러지요.”
하다
“참,밀라노대공은 또 뭐지요?”
열찬씨가 묻자
“그렇지요.밀라노대공과 레오날드 다빈치가 나와야 밀라노에 대한 공부가 끝이 나지요.밀라노대공은 한마디로 당시 피렌체가 정치와 경제는 물론 조각과 회화 오페라등 문화예술 전반을 지배하던 시절에서 레오날드 다빈치라는 한 걸출한 천재를 영입하면서 르네상스의 중심을 일거에 밀라노로 옮겨온 사람이지요.
아마도 세상만사에 다 해박하고 능하며 자유분방한 천재가 기성도시 피렌체의 엄격한 구조보다는 보다 현실적이고 학구적인 밀라노의 분위기에 매혹되었기 때문인 것 같지만 무엇보다도 대공의 예술가에 대한 존중,그러니까 수많은 회화와 조각의 발주와 아울러 현실적인 융숭한 대접인 화려한 대저택 때문일 겁니다.
아무튼 그래서 밀라노에 산타마리아 델레그라치에 교회의 식당 벽면교회에 인류역사상 또 하나의 걸작인<최후의 만찬이>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지요.”
“아.그렇군요.놀라운 이야깁니다.”
“아무튼 어제의 피렌체에는 우피치박물관에 세계적인 명화<비너스의 탄생>이 있다고 설명했듯이 오늘의 밀라노에는 산타마리아 델레그라치에 교회의 식당 벽면교회에<최후의 만찬>이 있다고 기억하면 될 것입니다.”
“고맙소.젊은 사람이 우째 그래 많이도 아노?
“감사합니다.”
둘이 눈을 들여다보며 악수를 하는데 영순씨 일행이 나오고 있어
“그래 샀나?
“응,내나 비슷한 모양,비슷한 가격으로.”
“잘했네.취향이 다를 딸과 며느리에게 어떻게 나눠줄 것인데?”
“부산서 슬비가 먼저 보고 선택하고 남은 걸 서울로 부쳐주지.”
“아,그렇구나.”
식사를 마치고 이제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를 떠날 버스에 모두 탑승하자
“여러분,감사합니다.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있었지만 저를 잘 따라주시고 고국의 소주를 비롯한 많은 것을 베풀어준 데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몇 년간이나 가이드를 해왔지만 이번 손님들처럼 여유롭고 넉넉한 팀이 잘 없었습니다.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가 이국땅에서 목이 터져라 국가대표를 응원해 월드컵16강에 진출한 로마의 밤과 함성을 저는 잊지 못할 것입니다.여러분의 열렬한 성원으로 반드시 우루과이와의8강전에서의 승리도 확신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명색 성악도인 제가 너무 분위기에 취해 관광버스에서<오 솔레 미오>를 부르는 기막힌 실수를 저질렀는데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이 여러분과 함께 부른<오솔레미오>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여러분 남은 일정도 즐겁게 보내고 건강한 모습으로 귀국하시기 바랍니다.저는 이제 이 버스에서 내리겠습니다.안녕이 가십시오.감사합니다.”
꾸뻑 인사를 하고는 뒷좌석부터 한 사람 한 사람씩 악수를 하다 열찬씨 차례가 되자
“아펜니노 산맥과 에루투리아인,로렌초 메디치와 마키아벨리에 대해서 미리 공부하고 아라베스크와 오벨리스크에 대해 질문하는 여행객을 만나 너무나 행복했습니다.그리고 시원소주 정말 감사하고요.”
눈을 들여다보며 한참이나 손을 흔드는데 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열심히 하시고 나중 바리톤 박성광 부산공연에서 만나도록 합시다.”
“예.감사합니다.”
※ 이 대하소설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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