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장편소설】 저곳 - 12. 을식과 해아(3)
박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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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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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고비에 놓이게 된 해아
그렇다고 늘 잘 나갔던 아니야. 걸림돌도 있었지. 남편이 현직 대통령과 함께 부통령 선거에 나갔을 때야. 일단 우리 남편 얘기는 좀 이따 하고. 대통령 애기를 좀 해야겠다. 원래 우리나라 헌법에서 4년 임기의 대통령은 다시 한 번 더 할 수 있는 중임(重任)까지만 허용되었어. 그런데 영구집권을 하겠다는 여당 집권세력은 야무진 생각을 하게 되지. 초대 대통령에 한해서 중임 제한을 없애는 개헌을 추진했어. 개헌을 하려면 국회에서 통과가 되어야 하지. 당시 국회의원은 모두 203명이었든데 이 중 2/3가 투표에서 찬성해야 개헌안이 통과될 수 있었어. 투표 결과 135명이 찬성표를 던졌어. 203명의 2/3은 136명이기에 한 명이 모자라 정족수 미달로 부결되었어. 국회의장은 의사봉까지 세 번 두드려서 부결이 공식적으로 확정되었어. 단 한 표 차이로 개헌안이 부결된 거지. 초대 대통령이 3번째 대툥령 선거에 나설 수 없게 되자 망연자실했던 집권세력은 선거결과 뒤집을 뭔 뾰죽한 수를 모색했어. 그러다 아주 그럴 듯한 수학적 논리를 가지고 표결결과를 뒤집었지. 203명의 2/3는 정확히 따지면 136명이 아니라 135.33명인데 소수점 다음의 .33명은 0.4보다 작기에 203명의 2/3는 135명으로 보아야 한다는 논리야. 만일 .5보다 큰 135.77명이라면 136명으로 보아야 하지만 .4보다 작은 135.33명이라서 203명의 2/3는 135명이 된다는 거야. 그래서 135명이 찬성표를 던졌으니 중임제한을 철페하는 개헌한은 통과되어야 한다는 거지. 그럴 듯한 논리였지. 그런 논리로 국회가 열렸고 부결되었던 개헌안은 통과되었어. 이를 .4 아래는 버리고 .5 이상은 1로 받아 들이는 것이라 해서 사사오입(四捨五入) 개헌이라고 부르지. 이 개헌안을 주도했던 게 남편이었어. 남편은 당시에 집권세력의 중추이자 핵심이었지. 당시에 79세였던 대통령은 대통령을 더 하고 싶은 적극적인 마음이 별로 없었어. 하지만 대통령 이하 남편을 비롯한 집권세력은 생각이 달랐어. 당시 대통령은 큰 우산과 같은 존재였지. 대다수 국민들도 지지하고 있었어. 그런 대통령이 계속 있어 주어야 그 대통령 권력의 우산 아래서 자기네들도 권력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 거지. 결국 2년 후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은 3선 대통령이 되었어. 득표율이 70%였으니 압도적으로 당선된 거지. 우리나라를 세운 대통령은 공산주의가 인기를 끌며 많은 지식인들이 공산주의에 매료되는 상황에서 공산주의의 실체를 제대로 알며 세상 돌아가는 국제정세에 밝아서 우리나라의 공산화를 막았었지. 엄청난 공을 세운 인물이었어. 원칙적이면서 현실적인 사람이었어. 반공과 반일, 그리고 자주독립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그 포스와 아우라가 대단한 권력자였어. 그러니 헌법을 바꿔서 대통령에 출마해 나이가 여든이 넘었어도 3선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지. 그런데… 그런데 남편은 부통령에 출마해 떨어지고 말았어. 아무래도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을 뽑더라도 부통령만큼은 야당 부통령을 뽑겠다는 국민들의 열망이 반영된 거겠지. 이 때 남편은 그냥 딱 물러났어야 했어. 그런데… 권력의 맛을 제대로 보았던 남편은 멈추지 않았어. 솔직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남편이 멈추려고 해도 내가 적극 말렸을 거야. 사실 내가 남편보다 권력에 대한 욕망이 컸었거든.
너네 부부는 권력을 내려놓지 못했구만. 나도 권력의 세계에 있어봐서 권력을 좀 아는데 권력이란 게 한 번 맛 들이면 절대 내려놓고 싶지 않은 거지. 나는 내가 죽고난 이후에 전개되었던 세계의 권력사에 대해 좀 아는데 딱 한 명의 예외가 있지. 바로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워싱턴이야. 그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어마어마한 공으로 미국 초대 대통령이 되었어. 선거인단의 투표가 있었다지만 만장일치로 추대된 거지. 1대 임기 4년 후 2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만장일치로 당선되었어. 그렇게 8년 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한 후에 그는 정말로 참으로 진짜로 쿨하게 집으로 갔어. 그렇게 권력을 내려놓는다는 일이 쉽지 않아. 아마도 인류 역사 최초의 일이 아닐까 싶어. 그는 앞자리에 앉아 모인 사람들을 대표하는 앞자리씨(Mr. President)를 인류 최초로 해보니 어지럽고 시시하다며 모국이었던 영국의 왕처럼 자기도 얼마든지 권력의지만 있으면 왕이 될 수도 있었어. 그러나 나폴레옹 1세도 통령이었다가 황제가 되었고, 그의 조카인 나폴레옹 3세도 대통령이었다가 삼촌처럼 황제가 되었지. 위안스카이란 작자도 총통이었다가 황제가 되었지. 다들 인생의 말로가 좋지 않았어. 그런데 워싱턴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어. 미국이란 나라는 그렇게 시작부터 쿨했어. 건국의 첫 단추를 잘 끼웠지. 그 덕분에 미국이라는 나라에는 200년이 넘는 동안 지금까지 단 한 번의 독재도 없었고 단 한 번의 쿠테타도 없었어. 남북전쟁인 단 한 번의 내전은 있었지만 잘 겪어내며 분열되지 않고 더 강력한 나라가 되었어. 정치적 안정을 이룬 거지. 만일 워싱턴 대통령이 권력을 더 누리려고 억지 무리를 해서 왕이나 황제가 되었다면 미국은 전 세계 수많은 나라들처럼 정치적으로 혼란한 나라가 되어 지금처럼 부강한 나라가 되지 못했을 거야.
네 말이 딱 맞아. 우리 대통령도 워싱턴 대통령처럼 딱 8년만 하고 내려왔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훌륭한 건국 대통령으로 존경받고 있을 텐데. 엄청남 공을 세웠지만 80대 이후 대통령을 억지로 더 해서 그 과(過)과 공(功)에 비해 커진 대통령이 되었지. 그렇게 대통령을 안좋은 쪽으로 가게 하는데 나와 내 남편의 권력욕이 크게 작용했어.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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