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146) 날다, 황정산

손현숙 승인 2024.11.09 09:31 의견 0

날다

황정산

벚꽃잎이 날고 있다

날아가는 꽃잎이 지워지다
차창에 하나씩 달라붙는다

달라붙어 파닥인다
날았던 자세를 떠올리고
꿈틀대며 날개의 형상을 기억해낸다

나는 것은 가벼운 것이 아니다
젖은 무게가 잠시 몸을 말린다
가벼워 다시 날다 젖어 가라앉는다
가벼워 젖고 무거워 난다

벚꽃잎이 날다 차창에 달라붙는다
달라붙어 날개를 단다
날개만큼 더 무거워지고 다시 젖는다
날다 젖다 가라앉는다
가벼운 것들은 없어진 무게를 가지고 있다

비가 온다
아무것도 날지 않는다

벚꽃잎이 날리고 있다

황정산 시인

황정산의 시집 《거푸집의 국적》을 읽었다. ‘2024. 도서출판 상상인’

‘벚꽃잎이 날고’ ‘차창’은 있다. 나는 벚잎은, 차창에 ‘달라붙’어 ‘젖다’의 유예를 가진 후 ‘몸을 말’리고 ‘파닥’이면서, ‘꿈틀’대며 날개의 형상을 기억해낸다. 그리고 ‘다시’ 난다.

움직임은 ‘존재’의 증명 중 하나이다. 벚꽃잎은 ‘날다 젖다 가라앉는다’. 동사로 시작해 동사로 끝나고, 심지어 능동과 피동을 가리지 않는다. ‘날고’와 ‘날리고’는 능동과 피동의 성질을 반복하고 교차한다. 반복과 교차의 순환은 영원성의 성질로 동화한다. 이제 ‘날고’와 ‘날리고’는 끊임없이 ‘진행’하며 동일성을 획득한다. 날아 ‘가는’ 것은 날려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반복은 강제된 지상명령이 아니다. 그냥 그러한 것이다. 생명이 그러한 것처럼.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모든 말은 원래 동사였다‘라고 말한다. 말은 성기나마 존재와 개념의 테두리를 긋는 데 필수적이다. 또다시, 시인은 ‘아직 굳지 못한 기억/ 동사로 남아 꿈틀댄다’라고 말한다. 이 문장의 주어를 ‘생명’으로 상정해 보자. 생명은 본래 ‘모든 말’처럼 ‘동사’의 생을 살다 ‘동사’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 살아 ‘가다’ 죽어 ‘가는’ 것은 아닐까. 아니, 살아 죽어 혹은 죽어 살아 그냥 동시에 ‘가는’ 것은 아닐까. 동사가 그러한 것처럼.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멀어도 걷는 사람》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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