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인저리타임] 선물 / 최정란

최정란 승인 2019.01.09 16:23 | 최종 수정 2019.01.15 11:38 의견 0

선물 / 최정란

당신이 새 천둥을 주겠다 했어요
천둥을 받을 흰 비단천 미처 준비하지 못했으므로
나는 두 팔 벌려 약속만 받아 안고
당신은 천둥을 하늘에 못 박아두었지요

못을 뽑을 장도리도
하늘로 올라갈 사다리도 내게는 없어
천둥은 헐벗은 채로
여름 가고 가을 가고 겨울 가고
다시 봄이 오기를 몇 번, 다시 또 몇 번

푸른 천둥소리 언제인가 녹슬고
푸른 노래 한 소절에 가슴 졸이는 밤도
한숨 절반 섞인 비 내리는 짧은 밤도 나직나직
가고야 말겠지만

태풍 치는 밤, 번개 속으로 몸을 던져
두려움 없이 천둥을 받아 안을 날도 오겠지요

천둥은 사방백리에 걸쳐 크고
내 손은 느리니
흰 비단 천 하늘가득 펼쳐 올릴 그 머나먼 날
언제일지 알 수 없지만

ㅡ시집 <장미키스>

최정란
최정란

 

 

 

 

 

 

 

 

 

 

최정란 시집 '장미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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