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2일. 오늘은 내가 런던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자 가장 기대하던 뮤지컬 「레미제라블」 관람과 손흥민 축구 경기 직관이 있는 날이다. 따라서 어제의 좋은 기운을 이어받아 산뜻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는데, 특히 「레미제라블」을 런던에서 뮤지컬로 관람한다는 기대가 엄청났다. 왜냐하면 혹시 독자님들께서 기억하실지 모르겠다. 연재 글 제일 첫 서두에 나 자신을 알고 싶다는 욕망, 나를 찾고 싶은 욕망이 유럽과 산티아고 순례길로 이끌었다고 했었는데, 나의 이러한 욕망에 불을 지펴준, 결정적인 영향을 준 영화가 바로 「레미제라블」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역작인 「레미제라블」을 조금 이야기해보자면 「레미제라블」이 뮤지컬 영화로 개봉된 2012년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필자는 이런 류의 교양 영화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즉, 2시간이 넘어가는 이런 영화를 보러간들 잘 자고 돌아올 게 뻔했기에 무수한 패러디를 접하면서도 끝내 보지 않았다. 그러다 영화가 개봉한 지 7년도 더 지난 2019년 와서 우연한 기회에 솔직히 말해서 영화 뭐 볼 거 없나? 생각하다가 딱 마침 떠올라 처음으로 보게 된 「레미제라블」. 처음엔 지금까지도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민중의 노래〉(Do You Hear The People Sing?)가 너무 좋아서 그 부분을 계속 반복해서 보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계속해서 보다 보니 서서히 장 발장의 내면에 흐르는 구구절절한 마음이 너무 와닿기 시작했다. 장 발장의 감정을 공감하고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레미제라블」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나의 마음을 사로잡고 크나큰 감명을 준 장면은 바로 장 발장이 'Who am I?' 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자신이 누구인가를 고민하며 괴로워하지만 끝내 자신의 운명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진실한 자아로 나아갔던 두 번의 장면이었다. 비록 장 발장과 지금 나의 경우는 다를지라도 본인의 운명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인 장 발장의 고뇌와 선택 그리고 용기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본격 사회 진출을 준비하고 있던 나에게 알 수 없는 울림과 감동을 주었다.

이를 계기로 나 또한 Who am I?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알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여러 가면과 사회적 모습을 벗어던졌을 때의 김도훈은 어떤 사람인가? 「레미제라블」을 통해 스스로 던져 본 이러한 질문과 함께 나를 찾는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나를 찾기 위해 떠나온 유럽에서 그것도 뮤지컬 본고장 런던에서 청년 김도훈의 나를 찾는 유럽 순례의 기원인 「레미제라블」을 본다는 사실이 참으로 남다른 의미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렇기에 한껏 들뜬 마음으로 「레미제라블」 뮤지컬 관람 장소인 손다임 극장(SONDHEIM THEATRE로) 향했다. 미리 도착하여 표를 교환하고 근처 세인트제임스 파크 공원에서 뮤지컬 보기 전 남은 시간을 보내었는데, 내가 한국에서 자주 걷던 부산의 대표적인 산책 거리 온천천과는 또 다른 느낌의 더욱 자연 친화적인 길을 산책함으로써 뮤지컬 보기 전 한껏 들떠있던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관람한 대망의 뮤지컬 「레미제라블」. 엄청난 닭살 돋음과 함께 시작된 「레미제라블」은 영화를 하도 많이 봐서 내용과 웬만한 대사를 다 이해하고 알고 있었기에 훨씬 보기가 좋았다. 자리도 나름 저렴했던 난간석으로 예약했었는데, 앞에 아무런 시야 방해도 없고, 엎드린 자세로도 볼 수 있어서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중간 쉬는 시간에 사 먹은 3파운드 하겐다즈 아이스크림도 맛있었고, 내내 너무나 행복하게 몰입하면서 봤다. 무엇보다 장 발장이 죽는 마지막 장면은 진짜 눈물이 맺히도록 나의 마음을 울렸다. 그때 느꼈던 먹먹한 감정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정말 감동적인 뮤지컬을 감상한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뮤지컬이 끝나고 「레미제라블」의 여운과 감동, 먹먹함을 간직한 채 토트넘 vs 노리치 (손흥민 경기)를 보기 위해 토트넘 핫스퍼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그런데 어딜 둘러봐도 한국인이 보일 정도로 한국인이 엄청 많았다. 개인적으론 태극기를 가지고 오는 게 이해가 되진 않았는데, 거기다 손흥민이 공만 잡으면 너무 난리법석이라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경기는 손흥민 선수의 결승 골이 터지면서 2 : 1 토트넘의 승리로 끝이 났다. 개인적으로 원래는 일일 토트넘 팬 체험이었지만 속으론 노리치를 응원하게 되는 골수 콥(리버풀 팬)이라 노리치 동점 골이 터졌을 땐 홀로 남모르게 기뻐하기도 했다. 그래도 흥민이 형의 골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았던 꽃놀이패 경기관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솔직히 경기는 재미가 없었다. 경기장 분위기도 안필드에 비하면 완전 별로여서 아쉬웠지만 꿩 대신 닭이라고 리버풀 경기를 못 본 아쉬움을 달래고 영국에서 축구 경기를 직관한 것에 감사했던 런던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처음엔 큰 시련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겨내고 런던에서의 마지막 날을 의미 있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제 내일이 되면 아일랜드로 떠난다. 아일랜드에서는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인문학당 달리 청년연구원>

인저리타임 김도훈 eoeksqksep1@naver.com 김도훈의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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