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에서 둘째 날. 오늘은 리스본의 유명한 벨렝 지구로 가는 날이다. 어제에 이어 날씨가 참 좋았기에 산뜻하게 숙소를 빠져나와 향한 세뇨라 두 몬테 전망대.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전망대에서 바라본 알파마 지구는 무슨 말이 더 필요하리~ 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간 피로가 풀리고 힐링이 되는 아침 시간을 보낸 후 벨렝 지구로 가기 위해 15번 트램을 타러 갔다.
처음 타본 트램. 지하철 같으면서도 다르게 차도에서 자동차와 나란히 가는 것이 오묘했다. 골목길을 오르내리는 트램을 탔으면 더 좋았을 텐데, 도로에서 타서 약간 아쉽기도 했지만, 색다른 기분을 느끼며 40분을 타고 간 끝에 도착한 벨렘 지구. 트램에서 내리자마자 쫙 펼쳐져 있는 광장에 제로미노스 수도원 외관이 보이고, 반대쪽으로 바다처럼 펼쳐져 있는 타구스 강과 4·25 다리 그리고 따뜻한 태양이 나를 반겨주었기에 굉장히 마음이 평온해지고 기분이 좋아진 순간이었다. 본격 벨렝 지구를 구경하기에 앞서 우선 포르투갈의 또 하나의 명물 에그타르트를 먹으러 갔다.
파스테이스드벨렘 pasteis de belem. 많은 줄이 서 있었기에 멀리서부터 쉽게 찾을 수 있었던 이곳은 에그타르트 3대 맛집 중 하나이자 1837년에 오픈한 세계 최초의 에그타르트 집으로 정말 유명한 곳인데, 에그타르트 탄생 비화는 바로 옆 제로미노스 수도원 때문이라고 한다. 수녀님 옷을 다리기 위해서 계란 흰자가 필요한데 그러다보니 노른자만 남아서 생겼다는 에그타르트. (가격은 한 개에 1.1유로) 6개 묶음 한 상자를 사서 은우랑 사이좋게, 시나몬 가루도 뿌려서 맛있게 먹은 후 본격적인 구경을 위해 제로미노스 수도원에 입장했다.
신항로를 개척하여 많은 부를 창출했던 마누엘 1세가 부를 과시하고 포르투갈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의 세계 일주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1502~1672년까지 지은 수도원이자 그의 이름을 따서 생겨난 마누엘 양식이라는 건축양식이 가장 잘 드러난 건축물 제로미노스 수도원. 같이 간 은우는 굳이 들어가서 볼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여행만 오면 부지런해지고 열정맨으로 변하는 나는 언제 또다시 올지도 모르기에 무조건 들어가서 구경하고 싶었다. 따라서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은우의 양보 덕에 함께 입장할 수 있었던 수도원은 정말 웅장하면서도 화려했다.
날씨도 금상첨화로 상당히 좋았기에 절로 밝은 마음으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만끽할 수 있었던 제로미노스 수도원. 건축물도 건축물이지만 무엇보다 은우랑 함께 들어가서 좋았다. 왜냐하면 혼자 여행을 다닐 때는 늘 주변 사람들에게 “Excuse me” 찍어달라고 부탁하고 맘에 안 들면 다시 다른 사람에게 요청해서 찍고 했었는데, 은우가 편하게 내가 원하는 대로 찍어줬기 때문이다. 상당히 고마웠다. 물론 은우는 상당히 귀찮았겠지만.
아무튼 여유로운 오후 시간을 제로미노스 수도원에서 보낸 후 다음 장소 발견기념비로 걸어가는 길. 선글라스가 없었기에 (타워브릿지에서 백팩 소매치기 당했을 때 함께 사라졌기에) 더욱 눈이 부신 길이었지만 이베리아 반도 태양의 강렬함을 뚫고, 타구스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다가가 바라본 발견기념비는 정말 멋있었다. 대항해시대를 열었던 포르투갈의 용감한 선원들과 후원자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는 발견기념비.
대항해시대 다큐멘터리(바다의 제국)를 인상 깊게 본 필자로서 바다를 바라보는 동서양의 관점 차이가 훗날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내용이 인상적으로 남아있기에, 비록 향신료(후추)를 구하기 위해 시작한 여정이지만 대항해시대의 출발점이자 동서양 관계 역전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역사적 장소에 왔다는 사실이 나를 설레게 했다.
타구스 강과 저 멀리 보이는 4·25 다리를 배경으로 바라본 발견기념비. 인도항로를 개척한 엔리케 왕자, 바스코 다 가마를 비롯한 대항해시대 활동한 인물 조각상을 멍하니 쳐다보는데, 문득 옛날 대항해시대를 휘젓고 다닌 사람들이 엄청 대단하게 느껴졌다. 솔직히 정보가 많이 발달한 오늘날. 휴대폰만 있으면 언제든지 모든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음에도 불구 막상 갈 땐 겁나거나 불안할 때가 많다. 모든 정보를 미리 알고 준비를 해놨더라도 지난 라이언 에어 항공을 탈 때처럼 며칠을 불안해하고 걱정했었는데, 이 당시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미지의 망망대해, 넓은 바다로 나아갈 수 있었을까? 어찌 보면 정말 무모하다고 볼 수 있는 행동을 실천하게 한 그 힘은 무엇이었을까? 나라면 미지의 세계로 무작정 나아갈 수 있었을까? 모험가의 삶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알 수 없는 경외심이 느껴지는 그런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또 역사는 이러한 무모한 모험가, 무모한 행동에 의해 뒤바뀌기 때문에, 나 또한 너무 안정적인 삶이 아닌 도전하는 삶을 살아나가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벨렝탑, 벨렝 지구를 투어를 마무리했다.
다시 트램을 타고 넘어온 알파마 지구. 해물밥, 해산물 요리로 저녁을 든든하게 먹고 이번엔 알파마 지구 야경 뷰를 즐기면서 또 한 번의 새로운 하루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는데, 이틀 만에 리스본이라는 도시가 또 오고 싶을 만큼 너무 좋아졌다. 다만 이때는 알지 못했다. 남은 포르투갈 여정에서 따뜻한 태양을 보지 못할 거란 사실을...
<인문학당 달리 청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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