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10) 원한과 재앙은 도리어 은혜 속에서 싹튼다

허섭 승인 2021.01.09 17:20 | 최종 수정 2021.01.11 17:22 의견 0
겸재 정선 - 인왕제색도 조선 1751년, 79.2+138.2cm 종이에 수묵

010 - 원한과 재앙은 도리어 은혜 속에서 싹튼다

은혜 속에서 본디 재앙은 싹트나니
그러므로 흡족할 때(득의했을 때)에 일찌감치 고개를 돌려라.

실패한 뒤에 도리어 성공하나니
그러므로 일이 뜻대로 안 된다 하여 쉽게 포기하지 말라.

  • 裡(리) : ‘속/안 裡’ 로 ‘~하는 중에’ 의 뜻이다. 裡는 裏와 동자(同字).
  • 由來(유래) : 원래, 본시(本是)의 뜻.
  • 快意時(쾌의시) : 일이 뜻대로 잘 되어 의기양양(意氣揚揚) 한 때. 得意時(득의시)
  • 須(수) : 모름지기
  • 早(조) : 빨리
  • 回頭(회두) :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핌. 회(冂+巳)는 回의 본자(本자)이다.
  • 拂心(불심) :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음. 拂은 ‘戾(려) : 어그러지다 거스르다’ 의 뜻
  • 便(변) : 문득, 곧 * ‘쉬울 편’ 으로 새겨 ‘쉽게’ 로 풀이해도 무방할 것이다.
  • 放手(방수) : 손을 놓다. 즉 하던 일을 중도에서 포기함.
  • * <回頭(회두) - 고개를 돌리다> 의 의미를 이렇듯 소극적으로 해석하고들 있는데 나는 이를 조금 더 적극적인 의미로 해석하고자 한다. 어떤 일에 성공했을 때 혹여 소외된 사람이 없는지 주위를 살펴보라는 작은 의미보다는 시쳇말로 ‘박수 칠 때 떠나라’ 는 의미로 보고자 한다. 노자(老子)가 말한 <功成而身退(공성이신퇴) - 공을 이루었으면 몸은 물러난다> 는 의미로 읽고 싶은 것이다. <回頭靑山(회두청산) - 고개를 돌려 청산을 보네> 의 ‘회두(回頭)’ 말이다. * 후집 제10장 참조
010 판교 정섭 - 남산송수 청 1762년 축지 189.6+49.5 남경박물원  탁근난석 청 1762년 축지 189.6+49.5 남경박물원
판교 정섭(板橋 鄭燮, 청, 1693-1765), 남산송수(1762년)(왼쪽)와 탁근난석(176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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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韓非子)』설난편(說難篇)에

彌子之行(미자지행) 未變於初也(미변어초야) 而以前之所以見賢(이이전지소이견현) 以後獲罪者(이후획죄자) 愛憎之變也(애증지변야).
미자의 행위는 처음과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에는 현덕(賢德)하다고 칭찬받고, 후에는 죄를 받은 것은 군주의 애증(愛憎)이 변했기 때문이다.

옛날 미자하(彌子瑕)란 미소년이 위(衛)나라 왕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의 병이 위중하다는 말을 들은 미자하는 임금의 명을 사칭하여 임금의 수레를 타고 집에 다녀왔다. 위나라 법에 따르면 이는 다리를 절단하는 벌에 해당하는 죄였다. 그러나 후에 이 사실을 안 왕은 이렇게 말하였다. “미자하의 효성이 얼마나 지극한가! 그는 자신의 다리보다 어머니를 더 중하게 여겼도다.” 또 어느 날인가는 임금과 함께 과수원에 산책을 갔는데 복숭아 하나를 먹던 미자하가 나머지를 왕에게 바쳤다. 그러자 왕이 말했다. “미자하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구나. 자신이 먹던 것이란 사실조차 잊고 내게 바치다니!”

그 후 세월이 흘러 미자하의 용모가 쇠하고 임금의 사랑 또한 식게 되었다. 그러자 왕은 이렇게 말하였다. “미자하는 내 명령을 사칭하여 내 수레를 훔쳐 탔을 뿐 아니라 제가 먹던 복숭아를 나에게 준 녀석이다. 용서할 수 없다.”

미자하의 행동은 처음과 나중이 다르지 않았으나 처음에는 칭찬을 받았고 후에는 벌을 받았으니 이는 군주의 사랑이 변한 까닭이다. 신하가 군주의 총애를 받을 때는 그의 지혜 또한 군주의 마음에 들 것이지만 총애가 사라지고 나면 뛰어난 지혜마저도 벌을 받게 된다.

왕에게 유세를 하고자 할 때는 우선 왕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 용은 길들이면 타고 다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목에는 역린(逆鱗)이라 해서 거꾸로 난 비늘이 있으니 그것을 만지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죽음에 이르게 된다. 군주에게도 역린이 있으니 그에게 유세하고자 하는 자는 역린을 건드리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그렇게만 한다면 유세는 대체로 성공할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역린(逆鱗)’ 이라는 말과 ‘餘桃之罪(여도지죄) - 먹다 남은 복숭아를 준 죄’ 라는 고사성어가 만들어졌다. 본장에서 이 고사를 언급한 까닭은 ‘은혜 속에서 재앙은 싹튼다’ 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자하가 임금의 하찮은 은혜를 입지 않았더라면 어찌 훗날 죽임을 당하는 재앙이 있으리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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