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 사사로운 욕망이라는 마귀를 비추어 주는 밝은 구슬과 그 마귀를 단칼에 베어버리는 지혜의 검을 함께 지닐 수 있다면 …
(흔히) 사사로운 욕심을 이기고 제거하는 일에 대해서는
빨리 알지 못하면 참아내는 힘을 기르기가 쉽지 않고
비록 깨달았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참아낼 수 없다고들 한다.
대개 알아차림은 마귀의 정체를 비추는 밝은 구슬이며
참아내는 힘은 마귀를 단칼에 베어버리는 지혜의 검이니
이 둘은 (어느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 勝私制欲(승사제욕) : 사사로운 욕심을 누르고 이김.
- 功(공) : 여기서는 ‘공로’ 의 뜻이 아니라 ‘일(직무)’ 의 뜻이다. 물론 ‘하기 어려운 중요한 일’ 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그 일을 해냈을 때에는 대단한 공을 세운 셈이 되는 것이다.
- 有曰(유왈) : ‘이렇게 말하는 이가 있어’ 라고 해석한다. 이 말의 풀이를 뒤에 붙이면 ‘ ~라고 하는 말이 있다’ 가 된다. 有는 마치 영어에서 관계대명사로 연결되는 ‘there is(are) ~ ’ 구문에 해당하는 셈이다.
- 識(식) : 욕심의 실체를 인식하는 지혜. * 불교에서 말하는 ‘알아차림’ 으로 풀이하면 될 것이다.
- 力不易(역불이) : (사욕을 누르는) 힘을 기르기가 쉽지 않음.
- 識得破(식득파) : 알아서 깨우침, 즉 간파(看破)할 수 있음.
- 忍不過(인불과) : 참아낼 수 없음, 참을성이 부족함.
- 蓋(개) : 대개, 대체로.
- 一顆(일과) : 한 알. 수량을 헤아리는 단위로 顆는 ‘낟알’ 을 의미함.
- 照魔的明珠(조마적명주) : 마귀의 실체를 비추는(밝혀내는) 밝은 구슬.
- 一把(일파) : 한 자루.
- 斬魔的慧劍(참마적혜검) : 마귀를 단칼에 베어버리는 지혜의 검.
- 不可少(불가소) : 없어서는 아니 됨. 少는 ‘缺(결)’ 의 뜻이다.
◈ 『유마경(維摩經)』 보살행품(菩薩行品)에
以智慧劍破煩惱賊 - 지혜의 칼로써 번뇌의 적을 깨트린다.
◈ 『벽암록(碧巖錄)』제(第)100칙(則) - 파릉의 푸른 칼(巴陵吹毛劍)
어떤 중이 파릉에게 물었다(僧問巴陵).
“머리털도 잘린다는 금강보검(金剛寶劍)이란 어떤 것입니까(如何是吹毛劍)?”
“아름다운 산호가지에 부드러운 달이 걸려 있구먼(陵云 珊瑚枝枝撐著月).”
* 칼은 언제나 인간의 지혜를 나타내고 모든 사람이 나면서 가지고 있는 이성의 빛을 의미하기도 한다. 누구나 가지고 있어 부족함도 더함도 없이 원만구족(圓滿具足)이라고 한다. 이 보검을 옛날부터 마음이라고 하여 이것은 사람이 날 때 생기는 것도 아니고 죽을 때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본래부터 있는 것이요, 영원히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사랑의 방패가 되어야 한다. 사랑의 달이 되어야 한다. 자비의 달이 되어야 한다. 칼은 다시 방패로 변하여 산호가지에 걸려야 한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칼이 방패가 되는 절대 경험이다. 이 경험을 통해 지혜는 자비가 된다. 자비의 달이 만물을 비춘다.
지혜의 무서운 칼이 번득일 때 사랑의 부드러운 미소가 펼쳐져야 한다. 지혜의 결론은 사랑이 되어야 한다.
- 김흥호 『푸른 바위에 새긴 글』 중에서 재편집함.
◈ 절에 가면 ‘심검당(尋劍堂)’이라는 당호(堂號)를 자주 보게 되는데
‘지혜의 칼을 찾는 집’이라 하여 심검당(尋劍堂)이라고 한다. 심검당의 검은 마지막 무명(無明)의 머리카락을 단절하여 부처의 혜명(慧明)을 증득(證得)하게 하는 취모리검(吹毛利劍)을 상징한다. 취모검(吹毛劍)이란, 칼날 위에 솜털을 올려놓고 입으로 후- 불면 그 털을 잘라버리는 날카로운 명검(名劍)을 말한다.
무릇 칼은 두 종류가 있으니 이른바 살인도(殺人刀)와 활인검(活人劍)이다. 번뇌 망념을 텅 비우는 공(空)의 실천이 살인도이고, 본래 청정한 불성의 지혜로 만법을 여여(如如)하고 여법(如法)하게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는 반야지혜가 활인검이다. 살인도와 활인검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선승의 지혜작용을 살활자재(殺活自在)라고 하는데, 선승은 반야지혜의 예리한 취모검의 두 칼날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어야 문수의 지혜의 칼인 금강보검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찰 내에 적묵당(寂默堂)이 심검당과 함께 위치할 경우에는 적묵당은 선원(禪院)으로, 심검당은 강원(講院)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곳은 순수한 수행처이므로 외인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다.
◈ 이인상(李麟祥)의 검선도(劍僊圖)
조선 후기의 화가 이인상(李麟祥)이 검선(劒僊 : 당나라 신선, 僊은 仙과 같은 글자)을 그린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畫)이다. 종이바탕에 옅은 채색. 세로 96.7㎝, 가로 61.8㎝.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가로로 “화인(華人)의 검선도를 방(倣)해서 취설옹(醉雪翁)에게 바치다. 종강모루(鍾岡毛樓)에서 비오는 가운데 그리다(倣華人劒僊圖奉贈醉雪翁 鍾岡雨中作).” 라는 관지(款識)가 기록되어 있다.
종강모루가 1754년(영조 30)에 축조된 점으로 보아 40대 후반에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화면의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누운 소나무와 위로 곧게 뻗은 소나무를 배경으로 정면을 향한 검선의 반신상이 묘사되어 있다.
검선은 당나라 신선으로 자가 동빈(洞賓)인 여암(呂巖)으로 추정되고 있다. 여동빈은 포주(浦州) 출신으로, 호가 순양자(純陽子)·회도인(回道人)이다. 여산(廬山)에서 화룡진인(火龍眞人)을 만나 천둔검법(天遁劍法)을 얻었다고 한다. 64세 때에는 종리권(鐘離權)을 만나 황백지술(黃白之術)을 배워 신선이 되었다. 여동빈은 칼을 든 모습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이유로 검선을 여동빈으로 추정한 것이다.
소나무 가지 위의 덩굴은 고요하게 드리워져 여유로운데, 검선의 수염과 관모에만 바람이 불어 더욱 서늘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다. 가늘면서도 꼿꼿한 필선으로 전체를 통일시키고 있는데, 날카로운 눈매와 무표정한 얼굴에서는 섬뜻한 느낌이 들 정도로 차거운 분위기가 맴돌고 있다.
한편으로는 온화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차갑고 강한 양면성을 보인 작품이다. 이 그림은 격조 높은 문인화풍으로 그린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畵)라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