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179) - 한 자락의 자비심은 천지간에 온화한 기운을 빚어내고, 한 조각의 깨끗한 마음은 백대에 걸쳐 아름다운 이름을 전할 것이다 

허섭 승인 2021.06.28 18:37 | 최종 수정 2021.07.25 22:31 의견 0
겸재(謙齋) 정선(鄭敾 조선 1676~1759) -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179 - 한 자락의 자비심은 천지간에 온화한 기운을 빚어내고, 한 조각의 깨끗한 마음은 백대에 걸쳐 아름다운 이름을 전할 것이다. 

한 자락의 자비심은 가히 하늘과 땅 사이에 온화한 기운을 빚어낼 것이요

한 조각 깨끗한 마음은 가히 백대에 걸쳐 아름다운 이름을 전할 것이다.

  • 慈祥(자상) : 자선(慈善), 자비(慈悲).
  • 醞釀(온양) : 본래 ‘술을 빚는다’ 는 뜻이나, 여기서는 ‘양성(養成)하다’ 의 뜻.
  • 兩間(양간) : 천지간(天地間), 하늘과 땅 사이.
  • 寸心(촌심) : 한 조각의 작은 마음.
  • 昭垂(소수) : 밝게 드리움, 후세에 밝게 전함.
  • 淸芬(청분) : 맑은 향기.  芬은 본래 ‘향기’ 이나 전하여 ‘아름다운 이름’ 을 뜻함.
179 이성길(李成吉 조선 1562~미상)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 33.5+398.5 우(右) 국립중앙박물관
이성길(李成吉, 조선, 1562~미상) -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
179 이성길(李成吉 조선 1562~미상)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 33.5+398.5 좌(左) 국립중앙박물관
이성길(李成吉, 조선, 1562~미상) -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左)

◈ 이른바 <사지(四知)> 란? -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리고 니가 알고 내가 아니 ...

후한(後漢)시대에는 환관들이 판치며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들었다. 또 권력을 쥐고 마구 휘두르는 탓에 정치가 어지러웠다. 관리들도 부패해 나라를 살피지 않아 백성들 삶도 늘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이런 세상에도 바른 관리는 없지 않았다. 

양진(楊震)이 바로 그런 인물이다. 그는 해박한 지식과 깨끗한 성품으로 ‘관서 공자(關西公子)’ 라는 칭호를 들었다. 그가 동래(東萊) 태수로 임명받았을 때 일이다. 창읍(昌邑)이라는 곳에서 잠시 묵을 때 창읍 현령 왕밀이 그를 찾아왔다. 

“태수님,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옛날, 태수님께 은혜를 입은 왕밀입니다.”

양진은 그의 얼굴을 보며 기억을 되짚었다.

“오호라, 이제 생각났네. 자네로구먼.”

지난날, 양진이 형주 자사로 있을 때 그를 추천한 일이 있었다. 그 덕분에 왕밀은 벼슬길에 나아갈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밤이 깊었을 즈음, 왕밀이 옷자락에서 황금 열 근을 꺼내 양진에게 내밀었다. 

“이건 지난날에 저를 도와주신 보답입니다. 부디 받아 주십시오.”

그러자 양진은 온화하면서도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허허, 나는 그대 학식과 인품을 보고 추천했는데 이 무슨 짓인가? 그대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잊었단 말인가?”

“아닙니다. 이건 다만 제 성의입니다. 깊은 밤중이라 저와 태수님 외에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으니 그냥 받아 주시지요.” 

그러자 양진이 엄한 표정으로 그를 나무랐다.

“아무도 모른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대가 알고 내가 알고 있는데 어찌 아는 사람이 없다 하는가! (天知 地知 我知 子知 何得無知)” 

이에 왕밀은 매우 부끄러워하며 물러갔다. 양진은 그 후로도 몸가짐을 바르게 해 태위라는 높은 자리까지 올랐다. 하지만 그의 올곧은 성품을 미워한 환관들에게 모함 받아 끝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사지(四知)’ 는 여기에서 비롯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대가 알고 내가 안다고 하여 이 넷을 간추려 ‘사지’ 라 한다. “하늘과 땅과 너와 내가 알고 있으니 세상에 비밀이 없다.” 라는 뜻이다. 또한 누군가 보는 사람이 없다 해도 양심에 어긋나도록 행동하지 않는 청렴함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 地知 대신에 神知, 何得無知에 何謂無知로 된 기록도 있다.

※ 양진이 왕밀에게 한 다음의 말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할 것이다.

震曰(진왈), 故人知君(고인지군) 君不知故人(군부지고인) 何也(하야) 
- 나는 오랜 지인으로서 그대를 잘 알고 있는데, 그대는 나를 잘 모르니 어찌 된 일인가?

이렇게 곡진하게 일렀거늘 아둔한 왕밀은 여전히 아래와 같이 답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密曰(밀왈), 暮夜無知者(모야무지자) - 어두운 밤인지라 아는 자가 없습니다.

* 暮(저물 모) 대신에 莫(없을 막/저물 모)로 되어 있는 곳도 있다.
 이는 莫이 원래 ‘수풀에 해가 잠기는 저녁, 어둡다’ 를 뜻하는 상형자였으나, 나중에 ‘(해가 저물면 일을) ~하지 않는다’ 는 뜻의 ‘없을/말 막’ 자로 쓰이자, 다시 日을 보태여 暮 자를 만든 것이다. 말하자면 暮는 莫의 재출자(再出字)/누증자(累增字)인 셈이다.

179 이인문(李寅文 조선 1745~1824이후)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 43.8+856 국립중앙박물관
이인문(李寅文, 조선, 1745~1824이후) -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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