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239) - 지금 바로 행하라, 다시 다른 때는 없나니 …
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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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7 09:21 | 최종 수정 2021.08.2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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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 - 지금 바로 행하라, 다시 다른 때는 없나니 …
사람들이 기꺼이 그 자리에서 그만두면 당장 쉴(깨달을) 수 있으나
만약 그만둘 때를 따로 찾는다면
자식들을 시집장가 보낸 뒤라도 여전히 일이 적지 않으니
승려나 도사가 되는 것도 좋으나
마음이 이와 같으면 마찬가지로 깨치지 못할 것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당장 그만두면 그만둘 수 있지만
만일 마칠 때를 찾는다면 그 때는 영영 없으리라’ 했으니
실로 탁견이로다.
- 肯(긍) : 즐겨, 기꺼이, 굳이.
- 當下(당하) : 곧, 즉시, 당장에.
- 休(휴) : 그치다, 그만두다, 은퇴하다. 세속적인 욕망을 버린다는 뜻임.
- 了(료) : 마치다, 깨닫다. 修了(수료).
- * 了는 뒤에 나오는 去와 마찬가지로 백화문에서 종종 쓰이는 ‘완료상의 조동사’ 로 볼 수 있다.
- 歇處(헐처) : 쉴 곳. 歇은 ‘쉬다, 그치다’ 의 뜻이다. 處는 ‘곳/때’ 어느 것으로도 번역이 가능하다. * 정지상(鄭知常)의「大同江(送人)」은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 비 그친 강둑에는 풀빛이 짙고’ 라는 유명한 첫구로 시작된다.
- 婚嫁(혼가) : 아들을 장가들이고 딸을 시집보냄, 즉 자녀들의 혼사(婚事).
- 完(완) : 마치다, 완료(完了)하다.
- 僧道(승도) : 승려와 도사.
- 前人(전인) : 옛사람. 고인(古人).
- 覓(멱) : 찾다, 구함.
- 卓(탁) : 높다, 탁월(卓越)하다. 탁견(卓見)
* 위 글에서 재미있는 글자는 ‘休(휴)’ 와 ‘了(료)’ 자(字)이다.
休는 일반적으로 휴식(休息)을 의미하는 ‘쉬다’ 가 주된 뜻이다. 그런데 ‘그만두다’ 라는 뜻도 있으니, 위의 문장을 ‘쉬다’ 로 풀이하면 ‘쉴 때 쉬어야지 쉴 때를 찾으면 영영 쉬지 못한다’ 는 의미가 되고, ‘그만두다’ 로 풀이하면 ‘그만두려면 당장 그만두어야지 그만둘 때를 찾으면 영영 그만두지 못한다’ 는 의미가 된다. 어느 쪽으로 풀이해도 말이 되고 그 의미도 일리가 있다.
그런데 위 문장에서 休와 관련된 말로 ‘了(료)’ 와 ‘休去(휴거)’ 도 있으니 아무래도 본문의 진정한 의미는 이 두 글자와 관련지어 이해해야 할 것으로 짐작된다.
了는 일반적으로 완료(完了)를 뜻하는 ‘마치다(끝내다)’ 의 뜻이나 了解(요해)를 뜻하는 ‘이해하다’ 의 뜻도 있으며 이에서 더 나아가 ‘깨닫다’ 의 뜻도 가진다.
休去는 글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그만두고 떠나는 것’ 이다. 그러나 여기서 去는 완료형 어조사로 볼 수 있다.
* 조주(趙州) 선사의 유명한 화두(話頭)인 ‘喫茶去(끽다거)’ 를 두고 흔히 ‘차나 한 잔 마시고 가게’ 라고들 옮기나 여기서 去는 백화문에서 쓰는 종결어미로 우리말로 치자면 ‘~하게’ 에 해당한다. 따라서 ‘喫茶去’ 를 정확히 옮기면 ‘차나 한 잔 드시게나’ 가 될 것이다.
* 기독교 종말론에서 말하는 ‘휴거’ 는 ‘손에 손 잡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 을 뜻하니 ‘携擧(휴거)’ 로 표기한다.
이로 보아 위 문장에서 ‘便當下了’ 와 ‘心亦不了’ 의 了는 ‘깨닫다’ 로 보아야 하며, ‘若覓了時’ 와 ‘無了時’ 의 了는 ‘끝마치다(끝나다/끝내다)’ 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便當下了를 便當下休了에서 休를 생략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첫 문장에서 앞의 ‘그만두다, 쉬다’ 를 뒤에서는 ‘깨닫다’ 로 해석하는 것은 다소 비약이 심한 측면도 있다. 저자 홍자성도 이러한 점을 의식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무릇 깨달음이란 일상의 반복되는 무의미한 행위를 곧장 그만둘 때에 마침내 찾아오는 것이다’ 라는 생각을 강조한 것이 아닐까?)
따라서 위 문장은 ‘세속의 마음을 버리고 도를 구할 뜻이 있으면 속세의 미련을 과감하게 끊고 지금 당장 실행에 옮길 것 - Just do it !’ 을 강조하고 있다. 그 옛날 임제(臨濟) 선사께서 설파(說破)하신 - ‘바로 지금이지 다시 시절은 없다 (卽時現今 更無時節)’ 는 그 말씀 그대로이다.
※ 언젠가 눈에 들어온 책 제목에 심히 놀란 적이 있었다. 그 책 제목은 『바보들은 항상 결심만 한다』였다. 얼마나 뜨끔하였던지,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감히 그 책을 집을 수 없었다. 도망치듯 책방을 서둘러 나온 기억만 남아 있을 뿐이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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