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244) - 덜어내고 또 덜어내면 누구나 있는 듯이 없는 듯이 살아갈 수 있거늘 …  

허섭 승인 2021.09.01 12:10 | 최종 수정 2021.09.02 09:59 의견 0
244 장택단(張擇端 북송 1085~1145)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 24.8+528.7 부분확대(1) 북경 고궁박물원
장택단(張擇端, 북송, 1085~1145) -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부분)
244 장택단(張擇端 북송 1085~1145)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 24.8+528.7 부분확대(2) 북경 고궁박물원
장택단(張擇端, 북송, 1085~1145) -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부분)

244 - 덜어내고 또 덜어내면 누구나 있는 듯이 없는 듯이 살아갈 수 있거늘 …  

덜어내고 덜어내어 꽃 가꾸고 대 심으니 그야말로 오유선생이 되었네
시비를 잊고 잊어 향 사르고 차 달이니 도대체 백의동자도 필요치 않네.

  • 損之又損(손지우손) : 욕심을 줄이고 또 줄임. 
  • 儘(진) : 다하다, 멋대로, 모두, 조금.  여기서는 盡과 같은 뜻으로 ‘모두’ 의 뜻이다. * 한자에는 이처럼 서로 모순되는 뜻이 함께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 交還(교환) : 반환(返還). 즉 ‘바뀌어 돌아감’.  
  • 烏有先生(선생) :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자허부(子虛賦)」에 나오는 우화적 인물로, 烏有는 ‘어찌 있으리오’ 라는 無의 뜻이다.  * 烏(오) : 까마귀, 어찌, 아(감탄사).    * 烏有(오유) : 어찌 있으리오
  • 忘無可忘(망무가망) : 잊고 잊어 더 잊을 것이 없음. 즉 잊는 것조차 잊어버린 완전한 무아(無我)의 경지를 말한다.
  • 焚香煮茗(분향자명) : 향을 사르고 차를 달임.  茗은 차(茶)의 이명(異名)이다.
  • 總(총) : 모두, 도대체(都大體). 앞에 나온 儘(盡)에 대응하는 부사어이다.
  • 白衣童子(백의동자) : 『태평어람(太平御覽)』에 나오는 도연명(陶淵明)의 고사에서 술을 갖고 나타난 동자를 말함.
244 장택단(張擇端 북송 1085~1145)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 24.8+528.7 右 북경 고궁박물원
장택단(張擇端, 북송, 1085~1145) -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右)

◈ 『노자(老子)』 제48장에

爲學日益(위학일익) 爲道日損(​위도일손). 損之又損(손지우손) 以至無爲(​이지무위) 無爲而無不爲(​무위이무불위). 故取天下(고취천하) 常以無事(​상이무사) 及其有事(​급기유사) 不足以取天下(부족이취천하)

- 학문을 하면 날로 늘어나고 도를 닦으면 날마다 줄어든다. 줄이고 또 줄이면 이윽고 무위(無爲 : 함이 없음)에 이르러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면서도 하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천하를 취함에 있어 언제나 무위로써 해야 하니 유위로써 하면 족히 천하를 얻을 수 없다.

◈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자허부(子虛賦)」

- 중국 전한(前漢)의 문인 사마상여(司馬相如 BC179∼BC117)가 지은 산문부(散文賦)로 한대(漢代) 산문부의 전형적인 작품이다. 

내용은 자허(子虛)가 초(楚)나라 왕을 위해 제(齊)나라 사신으로 가는 것을 가정하여, 초나라 운몽(雲夢)의 거대함과 군신(君臣)의 성대한 수렵의 모습, 초나라 풍물의 아름다움 등을 제나라 왕 앞에서 자랑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오유선생(烏有先生)은 제나라의 바닷가 맹저(孟諸)는 ‘운몽을 8, 9개 삼킨다 해도 마치 가시 하나를 삼킨 것과 같을 것이다’ 라고 하며 제나라 토지의 광활함과 산물의 풍부함을 이야기하여 자허를 반박하였다. 대부분의 내용이 제왕의 넓은 정원과 수렵의 성대함을 묘사하는 데 주력하여, 풍자가 다소 있다 하더라도 결국은 당시 통치자가 좋아하는 향락적인 풍토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규모가 크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기세가 웅장하다. 또한 옛 격식에 구애되지 않는 창조정신이 나타나 있다. 한 무제는 《자허부》를 읽고 매우 기뻐하여, ‘짐은 홀로 이 사람과 함께 할 수 없는가(朕獨不得與此人同時哉)’ 라며 한탄하였다고 한다.

사마상여는 한부(漢賦)의 대표 작가로 자(字)는 장경(長卿)이며 쓰촨성(四川省) 청두(成都) 출신이다. 경제(景帝) 때에 무기상시(武騎常侍)를 지냈고, 후에는 양(梁)나라 효왕(孝王)의 문하에서 문학 청객(淸客)을 하였다. 그가 지은 29편의 부(賦)는 대부분 전해지지 않는데, 현전하는 그의 부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는「자허부」와 「상림부(上林賦)」가 있고 그밖에 「애진이세부(哀秦二世賦)」 「대인부(大人賦)」 「미인부(美人賦)」 「장문부(長門賦)」등이 있다. 

◈ 도연명(陶淵明)의 고사(故事) - 『태평어람(太平御覽)』 속진양추(續晉陽秋)

陶潛嘗九月九日無酒(도잠상구월구일무주), 宅邊東籬菊叢中(택변동리국총중) 摘菊盈把(적국영파) 坐其側久(좌기측구). 望見白衣至(망견백의지) 乃王弘送酒(내왕홍송주). 卽便就酌(즉갱취작) 醉而後歸(취이후귀). 

- 도연명이 일찍이 중양절(重陽節)에 술이 없어, 집 근처 동쪽 울타리 밑 국화 밭에서 국화를 한 아름 따 그 옆에 오래 앉아 있었다. 그는 흰 옷 입은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는데, 강주자사(江州刺史) 왕홍(王弘)이 술을 보내온 것이었다. 곧장 술을 따라 마시고는 취한 다음에야 돌아왔다.

244 장택단(張擇端 북송 1085~1145)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 24.8+528.7 左 북경 고궁박물원
장택단(張擇端, 북송, 1085~1145) -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左)

◈ 이백(李白)이 자신이 흠모(欽慕)하였던 두 인물을 기린 시

제동계공유거 (題東溪公幽居)  동계공의 은자적 삶에 대해

杜陵賢人淸且廉 (두릉현인청차렴)  두릉의 현자는 청렴하고 결백하여 
東谿卜筑歲將淹 (동계복축세장엄)  동계에 터 잡고 산 지 오래 되었네
宅近靑山同謝朓 (택근청산동사조)  사조처럼 집 가까이 청산이 있고
門垂碧柳擬陶潛 (문수벽류의도잠)  도잠처럼 문 밖에는 버드나무 드리웠네
好鳥迎春歌後院 (호조영춘가후원)  봄 맞은 고운 새들 뒤뜰에서 우짖고
飛花送酒舞前檐 (비화송주무전첨)  술 권하듯 처마 앞에서 지는 꽃이 춤추는데
客到但知留一醉 (객도단지유일취)  손님 오면 잡아두고 함께 취하는 것만 알 뿐
盤中只有水晶鹽 (반중지유수정염)  상에 올린 안주라곤 맑은 소금뿐이네

  • 東溪 : 완계(宛溪). 안휘성(安徽省) 선성(宣城)에 있다. 천목산天目山에서 발원하여 흐르다가 성 동북쪽에 이르러 구계(句溪)와 합해지는데 이를 쌍계(雙溪)라고 부른다. 돌이 많은 까닭에 예로부터 변화가 많은 물 흐름을 즐기기 위해 찾는 사람이 많다고 알려진 곳이다. 
  • 杜陵 : 장안(長安) 동남쪽 20리 되는 곳에 있던 지명 
  • 卜築 : 좋은 곳을 골라 짓는 것을 가리킨다. 
  • 歲將淹 : 세월이 오래되다. ‘淹’은 여기서 ‘久’와 같다. 
  • 靑山 : 도현(塗縣)에 있던 산 이름. 제(齊)나라 때 선성(宣城) 태수를 지낸 사조(謝朓)가 산 남쪽에 집을 지었다고 전한다. 천보(天寶) 연간에 산 이름을 사공산(謝公山)으로 바꾸었다.
  • 謝朓 : 남조 때 제(齊)나라 시인으로 5언시에 능했다. 당시(唐詩)에 미친 영향이 크고 이백이 특히 그를 존경했다고 전한다. 
  • 陶潛 : 동진(東晉) 때의 시인이다. 전원시(田園詩)의 선구자라 할 만하다.
  • 送酒 : 술을 올리다. 술을 내리다. 함께 술을 마시다.  
  • 水晶鹽 : 수정처럼 맑고 투명한 소금을 가리킨다. 

※ 이백은 천보(天寶) 2년(743) 봄부터 여름까지 여러 차례 현종(玄宗)이 마련한 연회에 불려나가 「궁중행락사(宮中行樂詞)」, 「청평조사(淸平調詞)」 등 여러 편의 응제시(應製詩)를 지었는데 「題東溪公幽居」도 그 해 봄에 지은 작품이다.

사조謝朓는 남조 제(齊)나라 때 시인이고 도잠(陶潛)은 진(晉)나라 때 시인인데, 이백은 두 사람을 ‘동계공 ․ 두릉현인’ 으로 높여 부르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세속의 흐름을 따르지 않는 맑고 깨끗한 지사적 삶을 살았고 술을 마시고 취하는 정경에서 보듯 순박하고 검약한 사람들이라고 본 까닭이다.

‘送酒’ 란 말이 단순히 ‘술을 보내다’ 로만 읽히지 않고, ‘술을 올리다, 술을 내리다, 함께 술을 마시다’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진 전고(典故)가 된 데에는 아래와 같은 내력이 있다.

《 嘗九月九日無酒(상구월구일무주), 出宅邊菊叢中坐久(출택변국총중좌구), 値弘送酒至(치홍송주지), 卽便就酌(즉변취작), 醉而後歸(취이후귀). - 중양절에 술이 없으면 집 밖에 있는 국화꽃 속에 오랫동안 앉아 있다가 (도잠의 인격을 흠모하는 강주자사) 왕홍이 보내준 술이 이르면 바로 따라 마시고 흠뻑 취한 뒤에야 집으로 들어왔다. 》

- 『宋史송사』「隱逸列傳(은일열전)」 陶潛(도잠) 중에서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