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250) - 죽음 앞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
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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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6 15:41 | 최종 수정 2021.09.08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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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 죽음 앞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
바쁠 때에도 본성을 어지럽히지 않으려면
모름지기 한가할 때에 정신을 맑게 길러야 하고
죽음 앞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모름지기 살아생전에 사물의 참 모습을 간파해야 한다.
- 忙處(망처) / 閑處(한처) : 바쁠 때 / 한가할 때.
- 不亂性(불란성) : 본성을 어지럽히지 않음.
- 須(수) : 모름지기.
- 心神(심신) : 마음, 정신.
- 兩得淸(양득청) : 맑게 기름, 잘 수련(修鍊)함.
- 不動心(부동심) : 마음이 동요(動搖)하지 않음.
- 看得破(간득파) : 꿰뚫어보다, 간파(看破)하다.
◈ 이른바 절명시(絶命詩)를 남길 수 있는 사람은
선사(禪師)들이 임종게(臨終揭)를 남기는 것이야 그쪽 세계의 법식(法式)이니 대단할 것도 없겠지만, 일반 선비들이 절명시(絶命詩)를 남김은 예사롭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이는 유학의 무리들이 불교의 스님들보다 수양의 정도가 낮아서 그렇다는 폄하(貶下)의 말은 분명 아니다. 누군들 과연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겠는가!
여기 사육신(死六臣) 중의 한 사람인 성삼문(成三問)과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해 자결(自決)한 매천(梅泉) 황현(黃玹)의 절명시 두 편을 소개한다.
◉ 매죽헌(梅竹軒) 성삼문(成三問, 1418~1456)의 절명시
擊鼓催人命 (격고최인명) 북소리 둥둥 울려 목숨을 재촉하는데
回頭日欲斜 (회두일욕사) 고개 돌려 바라보니 해는 막 지는구나.
黃泉無一店 (황천무일점) 저승길엔 주막집도 없다고 하니
今夜宿誰家 (금야숙수가) 오늘밤은 누구네 집에서 쉬었다 갈까
※ 지은이가 刑場(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지은 卽興詩(즉흥시). 본디 시의 제목은 없지만 편의상 ‘絶命詩’라 붙인 것이다. 죽음을 앞둔 절박한 상황에서 지었음에도 작시의 규칙에 어긋남이 없이 읊어 그의 한문이나 한시에 대한 소양이 높음에 감탄할 뿐이다. ‘둥둥 들려오는 북소리는 내 목숨을 재촉하는 저승사자 같은데,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려 하니 내 죽음도 경각이다. 저승에 주막집이 있을 리 없으니, 오늘밤 죽은 넋이라도 어느 곳에서 쉬게 될는고.’ 그의 아까운 재주와 억울한 죽음을 연상하며 이 시를 읽을 때 눈시울이 젖음은 어찌할 수 없다.
◉ 매천(梅泉) 황현(黃玹 1855~1910) 선생의 절명시
鳥獸哀鳴海嶽嚬 (조수애명해악빈) 새와 짐승도 울고 산과 바다도 찌그러지니
槿花世界已沈淪 (근화세계이침륜) 무궁화 우리 땅은 이미 가라앉았구나
秋燈掩卷懷千古 (추등엄권회천고) 가을 등불 아래 책을 덮고 옛 일을 헤아려 보니
難作人間識者人 (난작인간식자인) 글을 아는 사람 노릇 참으로 어렵구나
나는 조정에 벼슬하지 않았으므로 사직을 위해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허나 나라가 오백년간 사대부를 길렀으니, 이제 망국의 날을 맞아 죽는 선비 한 명이 없다면 그 또한 애통한 노릇 아니겠는가? 나는 위로 황천(皇天)에서 받은 올바른 마음씨를 저버린 적이 없고 아래로는 평생 읽던 좋은 글을 저버리지 아니하려 한다. 길이 잠들려 하니 통쾌하지 아니한가. 너희들은 내가 죽는 것을 지나치게 슬퍼하지 말라. - 그가 가족들에게 남긴 유언의 일부분
※ 한 사람은 죽임을 당하는 처지이고 한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이지만 어찌 하늘을 원망하고 세상을 탓하는 마음이 없겠는가? 이 모든 비분(悲憤)과 강개(慷慨)를 뒤로 하고 죽음 앞에 초연(超然)하는 자세는 분명 보통 사람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것이리라.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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