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익명(匿名), 그 무명(無名)의 함정에 빠져

포토 에세이 통산 1009호(2020.6.20)

이득수 승인 2020.06.20 01:11 | 최종 수정 2020.06.20 01:34 의견 0
우리 어머니가 겨울철에 홍시를 숨기고 제가 훔쳐 먹었던 거대한 독(사진출처는 고등골에 사는 소설가 고금란)
우리 어머니가 겨울철에 홍시를 숨기고 제가 훔쳐 먹었던 거대한 독[사진 = 고등골에 사는 소설가 고금란 제공]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은 모두들 자기이름을 어디엔가 알리고 오래오래 남기고 싶은 걸까요? 그렇지만 지난번에 작천정 주변 바위에 새겨놓은 수많은 이름과 반대로 자기의 이름을 숨기려는 경우는 없을까요? 아닙니다. 엄청 많습니다.

그럼 왜 이름을 숨기려할까요? 그것은 이름이란 보통 단순한 호칭이지만 경우에 따라 자신의 잘못이나 책임을 감추기 위해서입니다. 말하자면 도둑이나 살인자가 현장에 이름이나 연락처를 남기지 않는 이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굳이 자기이름을 밝히지 않고도 마음대로 자기 의사를 주장하며 남을 무시하거나 핍박할 수 있다면 늘 힘겨운 일상과 사회적 모순, 제도적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대인에게 함부로 팔을 걷어 올리고 고함을 지르고 구호를 외칠 수 있는 시위(示威)야 말로 가장 짜릿한 해방과 일탈이 되며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청년이나 가정주부, 심지어 칠순을 넘긴 노인네까지 촛불시위와 반대시위로 전국이 가마솥처럼 끓어오르면 나름 자기가 지지하는 쪽에서 아무도 이름을 묻거나 답하지 않는 익명의 군중(群衆)이 되어 비통하게 울부짖고 통탄하며 때로 자기주장이 관철되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목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좀 다른 이유로 자신의 이름을 숨기려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눈에 뻔히 보이는 현실적 잘못이나 귀책사유를 자신이 속한 단체나 타인에게 넘기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두루뭉술하게 수습하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면 월드컵국가표팀이 3:0 쾌승을 거두어 본선에 진출하면 우선 골을 넣은 공격수(예를 들어 손흥민)에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견고한 수비진과 순발력 좋은 골키퍼까지 칭찬이 늘어지고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과 축구협회까지 그 공로를 돌리겠지요. 

그러나 그 반대로 대표 팀이 일본 같은 숙적에게 져서 결승진출이 좌절되면 이름값을 못한 손흥민 선수와 공격진은 물론 공중 볼 거리 측정을 못해 만세를 부른 골키퍼 김 아무개에다 한국축구의 오래된 약점 수비불안을 그대로 보여준 스위퍼 김 아무개, 스토퍼 박 아무개가 지탄을 받고 지도력부재의 감독과 무능하고 정보에 어두운 축구협회까지 지탄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릴 적 어머니는 늦가을에 감을 따면 어른주먹보다 더 커서 평리부락에 소문이 난 대봉감 한 30, 40개를 제 키보다 높은 커다란 독에 넣어 갈무리를 했습니다. 그 대봉감은 찬바람이 생생 부는 연말이 지나면 조금씩 물러져 음력설 때 알맞게 익어 제사상에도 올리고 시집간 누님가족들이 오면 한 사람 당 딱 하나 정도씩 맛을 보였습니다. 그러고 남은 여남은 개가 어머니 계산대로라면 음력 2월의 기제사 때 남아있어야 하는데 해마다 잘 하면 한 두 개 아니면 하나도 없을 때가 많았는데 평소에 잔정이 없고 그냥 무섭기만 한 어머니가 저를 보며
“허허 굼벵이도 구부는 재주가 있다고 굶어죽지는 않겠구나.”
하면서 허허 웃고 말곤 했습니다.

이기면 영광, 지면 수모를 피할 수 없이 이름을 너무 팔린 슈퍼스타 손흥민
이기면 영광, 지면 수모를 피할 수 없이 이름을 너무 팔린 슈퍼스타 손흥민

사실 제 키보다 큰 항아리에 배를 바싹 붙이고 조심스레 뚜껑을 약간 밀고 발돋움을 해 머리와 팔 하나를 독 속으로 집어넣어 아슬아슬하게 하나씩 꺼내먹는 소리를 몸이 아파 벽에 기대어 겨울을 나는 아버지가 늘 들으면서도 웃고 말았던 모양이었지요. 그렇지만 그 때 나는 부모님께서 저보다 훨씬 더 팔이 긴 네 살과 일곱 살이 많은 두 누님의 소행으로 짐작할 것으로, 그러니까 단 3남매의 익명성으로  숨겼고 부모님도 그냥 감싸주신 것이었지요.

그처럼 비교적 순수하고 동기의 익명성도 있지만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노동조합과 고용주, 시위대와 정부당국처럼 피할 수 없는 투쟁이 벌어지는데 각자의 이름을 밝힌 협상테이블에선 점잖은 협상대표들이 그 익명성의 광풍(狂風)에 빠져  성난 군중을 선동하면 그들은 마침내 폭도가 되어 방화와 약탈을 일삼기까지 자행하게 됩니다. 아무튼 이름을 숨긴 폭력인 시위 대신 당당히 제 이름 밝히고 제 주장 밝히는 토론이 활성화된 사회, 거짓된 공약이나 선동에 속지 않는 민주적 선거로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보다 건강해져야 될 것입니다.
 
그 익명성의 폭력이 가장 무섭게 자행되는 곳이 바로 악플, 사이버 폭력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하나의 방송국이자 기지국이 되는 휴대폰을 가진 시대를 살며 평소에 선량한 모범시민으로 알려진 사람들이 예사로 악플을 달아 연예인이나 특정인을 집요하게 공격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이득수 시인

제가 공직을 퇴직할 무렵 공무원사회에서도 '직장협의회'라는 노조체제가 출범해 저 같은 간부들은 자주 직협게시판의 먹이가 되었습니다. 그 중에 어떤 아이디 하나가 하도 말도 되지 않게 제 개인에 대해 악플을 달아 한번은 넌지시 알아보니 저와 여러 번 같이 근무한 직원으로서 머리는 좋지만 도무지 일을 않고 남이 승진하고 상을 타는 일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좋은 머리로 아이디어를 내고 일에 재미를 붙이면 모범공무원이 되련만 자신은 어떤 노력도 않고 열심히 하는 동료들을 무자비하게 욕을 하고 깔아뭉개 마침내 자기또래가 아무도 살아남지 못하면 자기가 승진을 한다는 이상한 소신을 가진 사람이었지요. 

그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일은 소홀한 대신 개인건강과 위생에 엄청 신경을 써 오후 두 시경에 사람이 안 보여 찾으면 아직도 세면장에서 이빨을 닦고 있었고 퇴근 한 시간 전이면 또 세면장에 가서 이빨을 닦았는데 제가 그걸 한 번 나무란 일이 있다고 그렇게 포원이 진 모양이었습니다.

지금 이 나라는 자기 이름을 감춘 익명성의 시위와 악플로 점점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내 자신부터 당당하게 이름을 걸고 양지(陽地)에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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