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수 시인의 '시(詩) 읽는 밤' - 침묵 / 최대남
등 - 고독, 사유의 깊이를 가늠케 하는 참신한 비유
고독과 외로움을 통해 새삼 발견한 열정과 위로
이현수
승인
2021.03.21 00:19 | 최종 수정 2021.03.22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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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수 없는 스물 몇 청춘의 하늘이나 육십갑자를 지난 시인이 맞는 오늘의 하늘이나 별반 다른 것 없는 하늘이다. 겨울 내내 아팠던 기억들을 버리고 봄을 기다리는 날, 문득 뼛속이 시릴 만큼 외로움이 엄습하여 글을 썼다는 시인의 시 한 편이 날아들었다. 다시는 필 수 없는 꽃 같은 사랑을 멀리서 바라보는 그 사람이 시인 자신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시를 썼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찻집에 앉아 시인의 시를 읊조려 보았다.
홀로인 시인의 고독을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이 위로를 한다. 철지난 사랑 잊혀져도 괜찮고 지워져도 괜찮다. 그 어떤 고독이 다시 그를 지배하더라도 고독을 짊어진 그 무엇들은 원래 시인이란 화자가 짊어진 사명이다. 시인은 시를 통해 침묵하며 스스로를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 산다. 커피가 식어갈 무렵 파도를 박차고 오르는 갈매기 한 쌍이 바다의 그림을 더 아름답게 완성했다. 날개를 달고 훠이 날아오르는 갈매기의 비상은 언제 봐도 예사롭지가 않다. 솟아오를 수 있는 힘은 비단 새만이 아니라 세월에 익어가는 시인에게도 차고 오를 수 있는 힘과 사랑을 불태울 수 있는 에너지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행위였다.
침묵 / 최대남
사랑이 돌아섰다고
사랑이 아니었던 것은 아니다
평생 내 몸이지만
한 번도 볼 수 없는
고독한 나의 등처럼
그의 내면은 얼마나 고독했을까
내게서 돌아섰을 때
그 대신 내가 오래 울었다
비가 조용히 내렸다
매달리다 지친
높은 곳의 물방울들이
영롱하게 떨어져 부서졌다
뒤에서 고독한 등이
서서히 굽어지며
사랑은 끝내
외로운 것이라고
혼자 남는 것이라고
아직은 따듯한 내 딱딱한 등뼈를
고요히 어루만졌다
최대남의 시는 석양이 떠난 밤바다의 불빛처럼 밝고 환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좋은 시를 쓰는 조건으로 우선 좋은 작품부터 많이 감상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이런 맥락에서 시인 최대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좋은 작품을 감상하고 낭송하는 경험을 지닌 전문 낭송가라는 점에서 그녀의 작품이 왜 우수한 시로 창작되어지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시는 작가의 경험이기도 하고 무한한 상상력으로 만들어내는 창작물이다. '사랑이 돌아 섰다고 사랑이 아니었던 것은 아니다'라는 말로 첫 연을 열어가며 떠난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그 사랑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고정관념을 벗어난 생각의 대척점에서 시의 전개를 구사했다는 점에서 읽는 독자의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는 사실에 시 〈침묵〉을 주목하고 싶다.
내게서 돌아 섰을 때 그 대신 내가 더 울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슬픔은 고스란히 내 몫이었음을, 내가 안고 가야 할 숙명임을 말하려하는 의도로 읽혀졌다. 무엇보다 고독한 나의 등이라는 매개체를 끌어들여 살아가며 한 번도 내 눈으로 바라볼 수 없는 등을 고독에 비유한 시적 표현 능력은 참신한 사유의 깊이 없이는 나올 수 없는 시인 특유의 화법이 아닌가 싶어 그녀의 첨단 언어 표현 능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세월 따라 고독한 등도 굽어지고 원래인 인간의 생이 아직은 뜨겁게 사랑할 힘이 남은 시인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네는 계절이다.
시인의 시를 감상하다 밤을 맞았다. 아득히 밀려오는 파도와 살 섞으며 한 잎 두 잎 지워지는 뱃고동 소리를 마주하고 어둠 내려앉은 백사장을 밟고선 기자의 구둣발에 차가운 물결이 일었다. 머물러 있는 생각에 대한 변화, 새로움에 대한 인식의 변화, 시를 대하고 낭송을 대하고, 문학을 대하는 시인의 진지한 태도를 바라보며 젊은 후배 작가들의 반성과 자성을 기대해본다. 최대남 시인의 시에는 열정이 있고, 그녀의 낭송에는 늘 그런 꿈을 일렁이게 하는 힘이 존재한다.
최대남 시인은 강북문화대학에서 시 낭송을 강의하며, 포에트리아qk 낭독회 회장을 맏고 있다. 한국낭송문예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시 낭송 콘서트를 70여회를 하며 다수의 방송에도 출연했다.
<시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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